울어도 괜찮아요…우린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울어도 괜찮아요…우린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5.02.27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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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씨의 캠핑이야기

“갑자기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면 누구에게 말해야 하나?”
이틀 동안 몸이 아파서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집에 누워 있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라는 시골마을에 혼자 살면서 사실 외롭다고 생각한 적도 별로 없고, 사는 게 심심하지도 않은 편이다. 시시때때로 지인들이 제주도로 여행 와서 자연을 즐기고, 함께 캠핑이나 트레킹을 다닌다. 거기다 날씨가 좋으면 드라마틱한 풍경들을 볼 수도 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겠는가.

이번처럼 한 번씩 아플 때 외롭고 쓸쓸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잠시 불었다가 사라지는 바람처럼 짧게 느끼는 시간이지만 지난날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지만 기억조차 희미한 이가 있는 반면 마음에 오래 남아있는 추억의 시간들도 꽤 있다.

마음이 힘들 때 비행기를 타고 떠나와서 오름 위에서 캠핑으로 맘을 힐링하고 싶다는 친구들의 연락을 받으면 급한 일이 없는 이상 되도록 시간을 내려고 한다. 같이 캠핑을 떠나보면 어두운 밤과 자연이 주는 분위기 때문인지 서로의 내밀한 곳까지 얘기하면서 마음을 터놓게 되기 때문. 서로가 막역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해도 고요한 자연 속에서 술이 한잔 들어가고 취기가 오르면 마음에 걸었던 빗장을 조금씩 푼다.

밤의 풍경들도 분위기를 더하고 도시의 삶에서 가까운 이들에게도 털어놓기 힘들었던 얘기들을 나에게 전해주곤 한다. 술을 한잔 기울이다 보면 달과 별이 비추는 오름 위로 음악이 흐른다. 캠핑을 갈 때 꼭 빼놓지 않고 챙겨가는 것이 스피커다. 영화 ‘비긴어게인’에 나오는 대사처럼 “음악은 모든 풍경들에 의미를 더하니까.” 오름 위에서 듣는 음악은 같은 노래라도 더 가슴에 콕 박힌다. 얼음장 같이 닫혀서 상처받았던 가슴을 보듬어 주는 데 이만한 치료제도 없다.

어떤 날 나와 함께 했던 친구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는지 조용히 울었다. 친구의 흐느낌이 적막한 공기를 가르며 전해져 오는 걸 알았지만 한참동안 우린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 괜찮아’ 내 마음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 마음에 쌓였던 독을 덜어낸 거 같다는 얘길 해준 친구가 지금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 먹먹한 얼굴과 조용한 흐느낌에서 공유할 수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얼핏 느낀다. 누구나 이런 마음의 쉼을 위해 언제든 여행을 떠나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이면 오는 곳이 제주도라지만 다들 밥벌이의 쳇바퀴 속에서 쉽사리 떠나오지 못한다.

늦은 밤, 수화기 너머로 외롭고 쓸쓸함에 대해 말하던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친구들은 하나 둘 멀어지고 이제는 밤에 마음 편하게 전화 한 통 할 곳 없는 공허하고 허전한 그 기분, 퇴근길에 불쑥 예고도 없이 밀려오는 낯선 외로움을 받아들여야 하고 외로움을 달래려 밤에 집에서 혼자 마시는 김빠진 소주의 쓸쓸함을 느껴야 하는 기분을 느끼며 핸드폰을 뒤져도 전화 한 통 걸 곳이 마땅치 않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어디 이 친구뿐이랴! 살아가면서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이가 어리다고, 인생을 조금 더 살았다고, 결혼을 했다고, 조금 더 외롭고 조금 덜 외로울 뿐,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사실 사람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는 그런 감정들에 익숙해 무덤덤한 이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감정의 결이 섬세하고 여려서 외롭고 쓸쓸한 그 감정이 낯선 사람도 있다. 외로움도 쓸쓸함도 쌓아놓으면 적금통장처럼 이자가 불어나듯 크고 깊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 외로우면 외롭다 하고 울고 싶을 땐 울자.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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