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다른 이름 핀두스
그리스의 다른 이름 핀두스
  • 글 임지용 | 사진 임지용 송세진 기자
  • 승인 2015.02.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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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역사 문화 여행 | 지형

시간여행자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세계를 여행하는 모임이다. 다른 많은 여행, 탐험들과 다른 점이라면 하나의 여행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커다란 세계상의 한 조각 퍼즐을 손에 쥐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식적으로 2014년 5월 모임을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함께 세계를 공부하고 함께 세계를 맛보았다. 우리의 첫 여행지로 그리스가 결정되고 2달 반, 그렇게 우린 세계를 이해하고자 세계로 떠났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처럼 갑작스레 회오리바람이 불어 나를 지구의 어딘가로 날려버린다면? 나는 곧 어딘가로 떨어지게 되고 그 장소에서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면 회오리바람 속을 날고 있는 나의 손엔 어떤 책이 쥐어져 있을까? 생명이 보장된다는 전제하에서 ‘잘 정리된 세계사 책’이나 ‘론리플래닛’ 등의 책도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한 권의 책을 골라야 한다면, 세계의 모든 지형과 그 기원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판 구조론’ 책이길 바란다.

1915년 기상학자 알프레드 비그나(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란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판 구조 이론은 우주물리학의 상대성이론, 생명과학의 진화론처럼 지구 지질학의 등뼈다. 또한 세계 대륙의 지형은 물론 식생, 기후, 생물, 인류, 문화를 한방에 설명할 수 있는 막강한 통합 이론이다.

척박한 자연환경이 꽃피운 문화
대서양이 열리는 시점부터의 판의 이동을 이해하는 것은 지금 나와 상관없는 먼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와 맞닿아 있는 현실의 세계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히말라야-티벳 고원의 탄생, 동해의 생성, 키프로스 섬의 무진장한 구리, 크레타와 폼페이의 화산 재앙, 그리스의 폴리스 국가 체제, 한니발의 포에니 전쟁, 투르-뿌아띠에 전투,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 아라비아의 오일 머니 등 여기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대사건들의 토대가 된다.

이 모든 것은 지구 내부의 방사성 동위 원소의 붕괴로 인한 지구의 판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은 최소 손톱 자라는 속도에서 최대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히말라야는 연간 5mm씩 높아지고 있으며,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결국 아프리카에서 분열되어 아프리카는 두 동강이 날 것이다.

그럼 우리의 목적지인 유럽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단, 5천만 년 후 북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 지중해는 사라진다. 그 말은 북아프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은 현재도 계속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란 뜻이고 과거, 지중해가 닫힌 바다가 아닌 열린 바다였단 뜻이다. 유럽의 지도를 잘 살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유럽의 유명한 산맥들인 베티코, 알프스, 피레네, 아펜니노, 핀두스 모두가 유럽의 남쪽에만 위치해 있다는 것. 물론, 북쪽 끄트머리, 스칸디나비아 산맥과 영국의 페나인 산맥이 있지만, 유럽의 중심부는 산맥이 전무하다.

유럽의 주요 산맥들은 모조리 북아프리카 판과의 충돌로 솟아났다. 한마디로 바다가 산이 됐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프스의 정상에서 조개나 암모나이트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럽의 남부 산맥은 모조리 생명체의 사체들이 쌓인 바다 속 석회암 산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리스는 오로지 그런 과정으로 생겨난 산맥 그 자체다. 그리스의 등뼈는 핀두스 산맥이며, 그리스의 정수리는 12신이 거주하는 올림포스 산이다. 이 산맥들이 그리스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거대한 산맥들로 가로막힌 지형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의 전제적 통일 왕권이 아닌 분립된 독특한 폴리스라는 형태의 ‘소국가 조직’을 이루게 되었다.

제대로 된 강줄기가 하나 없는 척박한 석회암질 토양에서 곡물 농사는 어렵다. 그렇게 그들은 맛없고 거친 올리브나 포도 등의 과실류만을 주로 경작하게 됐고, 곡류를 얻기 위해 바다로 떠났다. 그렇게 그리스인들은 해양민족으로 거듭났다. 지금도 세계 바다의 배 중 1/4은 그리스 배다. 세계의 바다를 여행하다 배를 만날 경우, ‘그리스 배다’라고 외치면 4번 중에 1번은 정답이다.

그렇게 시작된 바다 세계로의 진출은 그들에게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게 하였고, 지중해 전반에 걸친 식민지를 건설하게끔 했다. 식민지들 중 특히 이오니아 지역은 우수한 선진 중동과 이집트, 레반트의 문명과 과학, 문자를 받아들여 그리스의 철학, 과학의 기반을 이루고 쉬운 문자 체계 알파벳을 만들게끔 하여 지식과 문학의 확산을 가속화했다. 그렇게 우리가 감탄해 마지않는 그리스의 문화, 예술, 정신이 창조되었다.

신들의 산 올림포스에 오르다
시간여행자는 이번 여행에서 핀두스 산맥, 올림포스 산, 이다 산, 케르키스 산, 킨토스 산을 올랐다. 내륙의 산은 핀두스와 올림포스 둘인데 그 중 우리가 처음으로 찾은 곳은 올림포스 산이었다. 테살리아와 마케도니아 사이에 위치한 2,900m의 올림포스 산은 그리스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리스의 모든 산은 5000만 년 전 시작된 북아프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의 수렴에 의해 융기된 석회암 덩이다. 그리스를 이해하기 위해 당연히 거쳐야 할 곳이기에 짧은 일정 중에서 2일을 할애했다. 신들의 거처 올림포스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그리스 중부의 비좁은 해안도로는 에게 해가 뱉어낸 짙은 해무가 자욱이 내려앉아 운전이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린 일정을 맞추기 위해 야간 운전을 강행했다. 그렇게 늦은 밤이 되어서야 올림포스 산행의 전초기지인 리토초로 마을에 도착했다.

늦은 시각 거리에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도 없었다. 호텔은 물론 게스트하우스도 찾을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야간 산행을 결행한다. 올림포스 산 중간에 설치된 간이 숙박이 가능한 대피소를 찾아 차가 갈 수 있는 데까지 올라가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깜깜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데다 깜깜했고 늙은 렌트카는 힘겨워 보였다. 그렇게 2시간쯤 올라 큰길이 나왔고 곧 대피소를 발견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대피소는 유령처럼 생기가 없어 보였다. ‘제발, 우리 예상이 틀렸기를’ 예상은 맞았다. 건물은 쇠사슬로 잠겨있었고 어디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비박이 결정되었다. 일행은 다들 침낭을 깔았고 산속 추운 온도에 대비해 핫팩을 꺼내 잠을 청했다.

문제는 다음날 새벽 발생했다. 새벽 5시 이른 산행을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출발 채비를 마치고 시동을 켜기 위해 키를 돌리는 순간, “푸푸푸치치치~”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그 소리. 노쇠한 나귀의 깡마른 기침 같은 그 소리가 올림포스 산의 고요 속에서 내 심장을 쑤셨다. “젠장, 현대차!”

겨울철! 등산객이 드문 이때에 그나마 사람이 있는 산의 입구나 정상이 아닌 중턱! 게다가 새벽! 자동차가 퍼졌다. 안 그래도 시간이 빠듯한데 어쩌나?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신세다. 큰일이다. 일단 추위를 달래기 위해 아껴뒀던 핫팩을 몇 개씩 터뜨리고 기다렸다. 먹을 거라곤 어제 씹다 남은 딱딱한 빵이 전부다. 십시일반 나눠 먹었다.

5시간쯤 흘렀을 때,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고 다들 뛰쳐나가 차를 멈춰 세웠다. 두 명의 그리스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보조석의 사내는 사냥을 하기 위해선지 긴 엽총을 안고 있었다. 괜히 무서웠다. 그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겨울철 이쪽은 차가 잘 안 다니는 길인데다 차가 오더라도 요새는 대개 점프선을 안 가지고 다닌다며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라 조언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오전 11시쯤 되자, 차가 20분 간격으로 드문드문 한대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대의 차들을 그냥 보냈다. 그냥 지나치는 차도 있었지만 차를 잡더라도 점프선을 가진 차는 없었다. 빌어먹을 절망감이 들어오는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너무나 친절했던 그리스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우리의 노쇠한 현대 당나귀가 힘겹게 부르릉 코를 풀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소리를 잊지 못한다.

되살아난 자동차 안에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 했다. 지친 자동차로 산을 오를지 내려갈지를. 두 가지 의견이 나왔다. 하나는 ‘그리스에 왔으니 올림포스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의견과 ‘지금 또다시 차가 퍼지면 끝장이다. 다음 목적지로 진행하자’는 의견. 만약 혼자였다면 막무가내 산행을 택했을 수 있지만, 여러 명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서 고민이 됐다.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포기하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산을 내려갈 때까지 차 시동을 끄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일단 차가 갈 수 있는 데까진 가 보기로 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산에 올랐다.

오르고 또 올라 넓었던 길이 좁은 비포장으로 바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과연 이 길이 차가 갈 수 있는 길인가?’ 의구심이 드는 길이 시작됐다. 옆에는 나무가 빽빽한 낭떠러지가 계속됐고 땅바닥에 깔린 석회암이 쇼크업소버를 계속해서 긁어대는 바람에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운전을 해야 했다.

많은 여행을 하며 여러 결정의 순간을 마주한다. 미지수를 앞에 두고 할지말지의 기로에서 항상 실행을 택했고, 그것 때문에 위험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실행은 내게 값진 경험을 선사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렇게 건강히 살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냥 내려갈 걸 그랬어’라는 생각이 좀 들다가도 쏙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이 길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에게 해와 그리스가 펼쳐진 정상이 아니라 앞이 꽉 막혀버린 숲이었다. 또 퍼질지 모르는 자동차의 시동을 켜두고 얼마가 걸릴지 모르는 정상에 오를 순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올림포스 산행은 끝을 맺었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우리가 올림포스 정상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델포이 성소에서 아폴론 신은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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