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수업 | “불 만들기”
생존수업 | “불 만들기”
  • 글 사진 김종도(닉네임 ‘카우보이비박’) 기자
  • 승인 2015.01.3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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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크래프트와 생존의 기술

장비와 물자가 부족한 자연 속에서 생활했던 과거, 외국의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경험과 기술과 장비를 오늘날 캠핑에 적용한 것이 지금의 부시크래프트입니다. 외국에서 최근 유입된 또 하나의 캠핑. 좀 더 고전적이고 감성적인 요소가 강한 캠핑. 사서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을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캠핑이자 놀이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도입된 부시크래프트는 ‘오지에서의 생존’이라는 거창한 개념보다는 자연 속에서 생활화된 외국의 전통적인 기술을 배워보고 숙달해보는데 그 의미를 부여해야할 것입니다. 장소나 재현방식보다는 그 기술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현대의 하이테크 장비에 의존하기보다는 과거에 사용되었던 기술과 장비를 사용하여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보고 그 기술의 유용성을 즐겨보는 데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토캠핑이 완제품이라면 부시크래프트는 DIY라고나 할까요.

혹한의 날씨 속에서 국도를 운전해서 가던 중 갑작스런 폭설과 연료 부족으로 인해 고립이 되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조요청이겠지요. 그리고 구조대원들이 올 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체온을 유지하고 버텨내는 생존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만약 혹한의 날씨 속에서 고립되었다면 차량을 떠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차량 자체가 훌륭한 방풍과 방수 쉘터의 역할을 해줄 뿐만 아니라 불을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 놀라운 도구는 바로 시거잭입니다. 요즘은 시거잭을 분리해서 전기용품들을 연결하는 콘센트로 사용하고 있지만, 일상에서의 비상상황을 고려한다면 시거잭을 보관함속에 잘 챙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시거잭으로 발열된 코일에 휴지나 마른 풀잎을 비벼서 가져다대고 후 불어주면 불이 붙습니다. 그러면 구조될 때까지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열원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조차 없다면, 우리는 원초적인 생존의 기술을 끄집어내야겠지요. 그때 필요한 것이 부시크래프트 기술 중 하나인 마찰을 이용한 불 만들기입니다.

1. 강가나 저수지 인근에는 어묵꼬치 모양의 부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부들의 꽃은 훌륭한 부싯깃이 되어주고, 부들의 줄기는 불 피우기의 핵심 재료가 됩니다. 특히 불 피우기에 사용할 부들은 이미 꺾여 부러진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올곧게 서있는 부들은 여전히 땅속의 습기를 머금고 있어서 불 피우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우리나라에서 가장 구하기 쉬운 소나무. 맨손으로 불 피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 및 연료입니다.

3. 눈이 오는 환경에서 가장 불이 잘 붙고 잘 건조된 부싯깃은 갈대꽃이나 억새꽃입니다.

4. 축이 되어줄 부들 줄기를 준비합니다. 이렇게 겉껍질을 벗기면 내부의 단단한 줄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줄기의 표면을 칼로 매끈하게 다듬어줍니다.

5. 축의 길이는 성인 남성 기준으로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정도가 적당합니다.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을 경우 손바닥에 물집이 잡힐 수 있으니 충분히 매끄럽게 다듬어주세요.

6. 다음은 밑판이 되어줄 소나무를 위아래가 평평하도록 깎아줍니다. 너비는 축이 되어줄 줄기보다 2배 정도 넓이, 두께는 2cm 정도가 적당합니다.

7. 소나무 밑판에 칼을 이용해 홈을 만들어 줍니다. 이때 손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칼끝을 나무에 꽂은 후 좌우로 돌려줍니다. 홈의 크기는 부들축이 쉽게 회전될 정도면 됩니다.

8. 다듬어진 부들의 줄기, 소나무 받침, 훌륭한 부싯깃(갈대와 부들의 꽃).

9. 드릴링(축을 비비는 행동)으로 축과 밑판이 자리를 잡게 되면 불씨가 빠질 V홈을 만들어줍니다. 이때 홈의 깊이는 원의 중심 가까이까지, 홈의 너비는 피자 한 조각 정도 빠진 모양새면 됩니다.

10. 불씨가 빠져나갈 홈이 완성되었다면 본격적으로 불씨를 만들어야겠죠. 불씨를 받아줄 나뭇잎을 깔아줍니다. 나무에 습기가 있는 경우는 바로 옆에다 계속 시도하면 열에 의해 건조가 되어갑니다. 연기가 생기고 불씨가 만들어졌습니다.

11. 불씨를 갈대꽃과 부들꽃으로 애지중지 싸안고 손가락 다친 아들 호~호~ 불어주듯이 달래줍니다.

12. 라이터에서 엄지손가락이 한번 움직이면 끝날 일이지만 스스로 일을 크게 벌려놓고 그 과정과 결과를 즐기는 것이 부시크래프트의 묘미.

13. 차량은 훌륭한 방풍벽과 포트 거치대가 되어줍니다.

14. 쌓인 눈을 식수로 활용할 때는 가장 최근에 내린 눈, 즉 표면에 쌓인 눈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불순물이 적기 때문이죠. 눈은 대기중 먼지나 찌꺼기와 결합되기 때문에 처음보다 나중에 내린 눈이 이런 오염물이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진에서처럼 표면의 눈을 긁어 식수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깨끗해 보이는 눈이라도 불순물이 있기 때문에 면옷이나 손수건 등으로 걸러주면 좋고, 여의치 않을 경우는 10분 정도 기다려서 찌꺼기나 불순물을 침전시켜 조심스레 위쪽부터 마시면 됩니다.만약, 눈이 없을 경우는 응달진 곳에 뭉쳐있는 얼음을 사용하면 됩니다. 순수 얼음덩어리가 없다면 얼어붙은 흙도 부셔서 녹이면 됩니다. 제 경험상 같은 부피의 얼음의 양보다 2~3배 정도 더 많은 눈을 녹여야 비슷한 물의 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눈을 담을 때는 꾹꾹 눌러 압축해야 한 번에 좀 더 많은 양의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얼음을 녹인 물에 있는 찌꺼기를 거른 후 마시도록 합니다.


연재를 시작하며

부시크래프트 BUSHCRAFT란?
부시크래프트는 현대에 이르러 그저 고전적인 장비와 방식을 재현해보는 캠핑,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닙니다.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뿐이지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만 얻는 캠핑이 절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캠핑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개인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 즐기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오토캠핑을 한다고 캠핑의 기술등급이 낮은 것도 아니고 내가 부시크래프트를 한다고 해서 근거 없는 자부심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다만, 부시크래프트의 기술들의 근간이 바로 오지에서의 생존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캠핑에 비해 고립상황이나 생존상황에서 상당한 도움이 되는 기술인 것은 분명합니다.

부시크래프트는 캠핑이 아니라 미지에서 비밀스럽게 흘러내려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생존기술이고, 이런 기술은 자연 속에서 누구의 제재도 필요 없이 마음대로 행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안전과 자연보호를 무시한 어떤 아웃도어도 관심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지 못합니다. 취향의 차이와 사용 도구, 그리고 활동범주가 다를 뿐이지 모두 캠핑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법적·환경적·문화적 테두리 내에서 캠핑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과 윤리는 반드시 부시크래프트도 지켜야 합니다. 아래와 같은 룰은 부시크래프트를 보호하고 정착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입니다. 저부터 주의하며 솔선수범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시크래프트 기본 원칙과 윤리*
1. 불을 피울 때는 스토브를 사용한다. 바닥에 불 지피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2. 캠핑장이나 허가된 장소 외에서는 불장난을 자랑하지 않는다. 올리고 싶다면 비공개로 할 것. 캠핑장에서 부시크래프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 것. 캠핑장은 부시크래프트 하기에 가장 안전하고 부담 없는 장소다.
3. 생존상황이 아니라면 생나무를 베거나 자르지 않는다. 자기만족과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내가 심지도 않은 나무를 희생시키는 것만큼 이기적인 행동은 없다.
4. 타프나 텐트 사용을 부끄러워하지 말라. 나무로 쉘터를 만드는 것만이 부시크래프트가 아니다. 실제 외국에서는 현대의 텐트와 같은 천막을 사용했고, 죽은 나무나 나뭇잎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5. 자기가 머문 자리는 최대한 원형으로 복구하고 떠난다. 보편적 아웃도어 트렌드인 LNT(Leave No Trace)를 솔선수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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