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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꿈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나는 내 꿈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 글 사진 길바울 기자
  • 승인 2015.01.30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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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울의 걷고 타는 유럽 횡단 ‘오늘을 산다’

나는 예술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전공은 ‘연기’와 ‘노래’다. 이것들을 재료 삼아 사람들에게 생명을 전달해야 하는 책임 한가운데 서있다. 내가 가진 작은 재능과 인생의 이야기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말하고 전달하며, 예술을 통해 건강하고 올바른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소망이다.

▲ 이스탄불에 도착하다.

어느 날,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졌다. “나는 내 꿈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전에는 “나는 무슨 꿈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만 잘해도 초라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말만 해서는 안 될 시기가 온 것이 분명하다. 몸으로 대답하고, 삶으로 그 어려운 질문에 대답할 책임을 느끼기 시작한다.

행동이 필요했다. 내 이야기가 필요했다. 증거가 필요했다. 생각대로 행동하는 힘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겐 그 요구들을 감당할 삶의 실력이 없었다.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필요한 재료는 ‘건강한 내 자신’이었다. 그래서 내가 늘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꿈 하나를 현실로 옮기기 위한 ‘도전’을 하기로 한다.

▲ 출국 직전 포스트를 들고 공항에서. 아직은 천진난만하다.

청춘의 여행은 배고파도 괜찮다

나의 청춘, 그 가슴 깊은 곳에는 늘 품어온 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모험의 여행’이었다. 배낭 하나 등에 지고 호기심과 자유로움, 그리고 젊음의 패기로 무장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여행. 여행이라는 의미보다는 모험의 의미가 더 짙은 그런 여행을 말이다.

나는 성숙을 위해 이 꿈을 현실로 옮겨보기로 한다. 나 자신을 반성하고 변화시켜 예술가로서 낭만과 꿈을 실제로 표현해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삶을 인내하는 태도, 환경을 탓하지 않는 태도, 견뎌내고 버텨내는 청년다운 태도, 큰 성과 이전에 이루어지는 한걸음 한걸음의 의미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을 몸으로 체험하며 터득하고자 한 것이다.

▲ 첫 야영의 다음날. 밝은 태양이 감사하다.

꿈을 가질 수 있는 것,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것, 실패를 배움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청춘의 특권이자 작은 명예다. 아니 의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청춘’이 여행하는 데 필요한 것은 ‘청춘’이지 않을까?

이전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돈’에 대한 것이었다. 부러워하는 친구들에게 직접 여행을 해보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고민하다가 포기하곤 했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믿는 시대에 유일하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배우는 것이 여행 아닐까? 나는 이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소유한 청춘이니까 말이다.

▲ 터키 사람들은 친절하다. 해안도로를 걷고 있는 내게 블랙 티를 주며 쉬어가라 했던 친구들.

나는 조금 많이 무모해져보기로 한다. 여행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청춘의 여행은 달라야 한다. 청춘의 여행은 배고파도 괜찮은 것이다. 좋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을 발견하는, 그 이상의 세계를 만나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난 후부터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온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여행에 필요한 제품은 아웃도어 업체에 제안서를 넣었다. 도보로 유럽을 횡단한 김희범(기부 이펙트 대표) 씨와의 만남으로 무모한 청년 여행을 다짐했고,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인 ‘피엘라벤’ 김진섭 차장님께서 청년의 무모함을 응원해주시며 준비를 도와주셨다.

▲ 이스탄불에서 문득 나와 같은 또래가 보고 싶어 이스탄불 대학교를 방문했는데 친구들이 축구하자고 제안해 같이 축구하고 단체사진을 남겼다.

나는 횡단하기로 한다. 끝을 약속할 수 없는 여정이기에 편도티켓 한 장과 180만원을 손에 쥐었다. 이동은 도보와 히치하이킹으로, 숙박은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여행하고자 하는 곳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 숙박 및 운이 좋다면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과 캠핑으로 계획했다.

이제 여행에 뛰어들기만 하면 된다. 용기를 내어 다른 문화 속으로 내 몸을 던져 넣기로. 내게 필요한 것은 대부분 내가 이미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청년의 하루하루의 치열함 속 낭만을 표현해보고 싶어 ‘오늘을 산다’로 결정했다. 이제 간다.

▲ 한 친구를 만나 걷는데 그의 친구들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자고 한다.

꿈의 여정의 첫 걸음, 유럽 동쪽의 끝 이스탄불로
유럽 동쪽으로 끝,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젊은이의 도전이 기특해 보였는지, 이스탄불 중심의 동양호텔 사장님께서 4박을 후원해주셨다. 무식할 정도로 큰 배낭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나도 당신들이 궁금하다! 이제 여기를 시작으로 걸어서 유럽 서쪽 끝 스페인의 피스테라까지 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진짜 혼자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걷고 타며, 만나게 될 모든 일이 즐겁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제 인생수업이 시작된다.

천진난만하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홀로 이래저래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 느끼하게 생긴 청년이 다가오더니 자신도 찍어달라고 한다. 사진을 몇 장 찍어주니 자신은 그리스에서 왔다고 말을 걸어온다. 여행자가 여행자를 만나면 격한 공감을 하게 된다. 그렇게 음료수 한잔 하자며 비즈니스(?)를 시작! 음료도 사주는 친절함에 마음의 모든 경계심과 긴장은 사라져만 간다. 그렇게 우린 3시간을 떠들었다.

▲ 우리 팀이 이겼다.

“폴(길바울의 바울(Paul)=폴), 내가 너에게 이스탄불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줄게!”
그렇게 택시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야경은 어디에도 없는 어두컴컴한 한 펍으로 인도를 받는다. 목자를 따르는 양같이 순진하고 순수했던 나.
“폴, 첫 음료는 내가 샀으니 두 번째는 네가 사.”

음료 두 잔이라고 해봐야 오천 원도 안 나올 테고, 여행 첫날부터 좋은 인연을 만난 기념으로 한턱 쏘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지 10분이나 됐을까?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한다. 시각은 오후 5시 정도. 그 당시 터키에 광산 폭발로 대국민이 애도하는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 애도의 의미로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첫 야영, 사람 없는 곳으로 들어가 별똥별을 보며 잠들고 푸르른 아침에 텐트에 누워.

그런데 이럴 수가. 음료 두 잔에 660리라, 우리나라 돈으로 30만 원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먹잇감이 되었음을. 바보 같은 놈! 우선 이곳을 벗어나자.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컴컴한 구석에 덩치 큰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자 온몸의 감각 세포와 털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침착하자, 침착해!

“내가 가진 돈이 250리라뿐이니 우선 이거 먼저 내고 나가서 ATM으로 가자.”
그렇게 사기꾼에게 사기를 치는 임기응변을 발휘했다.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소리치며 물었다.
“저기 있는 사람들 네 친구들이지? 난 널 못 믿겠어.”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우리를 주목했다. 그 사기꾼은 얼굴을 가리며 당황한 기색을 감췄다.

▲ 유유히 떠다니는 이스탄불의 유람선들.

계속 목소리 높여 투쟁했더니 사기꾼 녀석은 자꾸만 조용한 곳으로 가자며 어두운 곳을 향해 손가락질 한다. 눈빛은 ‘이리와 봐. 넌 죽었어’다. 순간 나는 뒤도 안보고 전력 질주해 5분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 비지땀을 흘리며 뒤를 보고 뛰는 나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선량한 사람들이 나를 경찰서로 안내해주었다.

경찰들은 워낙 많이 벌어지는 사건이라 미지근한 반응이다. 호스텔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그 사기꾼 사진을 보여주니, 한국인을 상대로 이런 일을 저지르는 나쁜 놈이라고 한다. 그런데 250리라를 빼앗긴 나에게 감사하라고 한다.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어떤 사람은 1000리라도 당한 적이 있다면서.

▲ 공항에서의 노숙. 작은 소파를 얻었다. 이보다 더 좋은 잠자리가 또 있을까?

그들의 말을 듣고 보니 다행이다 싶었지만 조금 슬프기도 했다. 해외에서 만난 첫 친구가 사기꾼이고, 그의 호의로 인해 내가 큰 피해를 입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그런 호의를 베푸는 친구를 만나더라도 그를 100% 믿을 수 있을까? 자유가 얼마나 큰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내 꿈을 향한 여행은 꿈에서도 만나기 싫은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로 향하는 국도 D100을 걷기 시작하면서 악몽 같았던 전력질주 사건도 희미해져갔다.

▲ 내 큰 배낭을 보더니 오토바이를 세운다. 자신이 가는 만큼 같이 가자던 친절했던 친구.

▲ 도착한 첫날의 기분. 벤치에 앉아 이스탄불의 시원한 아침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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