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숲과 고찰을 둘러볼 수 있는 만추의 캠프장
▲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동피골야영장은 가을이면 한적하고 포근한 캠핑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늦가을은 대지를 따라 뒹글던 낙엽이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기는 계절이다. 1년 내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던 잎이 이제야 안식을 취하며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만추의 시간은 산골 사람들이 그렇듯 숲도 어느 때보다 바쁘고 분주하다. 오대산 입구에서 월정사로 들어서는 길에는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으로 온통 치장을 했다. 월정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생명의 흙길을 밟으며 전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신성한 공간을 지키는 수호신들처럼 우뚝 선 전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어 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오는 맑은 햇살이 그늘진 숲속을 비춰 포근함과 더불어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월정사와 세상을 구분 짖는 숲, 이 전나무들이 있었기에 월정사와 상원사는 5대 보궁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숲이 주는 생명력을 통해 많은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었는가 보다. 건축자재나 펄프용 재료로 쓰이는 전나무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준다고 한다. 또한 전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내 삼림욕에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오대산 전나무 숲은 내소사,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국내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로 일명 ‘천년의 숲’으로 불린다.
▲ 오대산 월정사의 머리로 유명한 전나무 숲. 1km정도의 거리지만 삼림욕과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
월정사 경내 중앙에 자리한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팔각모양의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것으로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국보 48호인 이 탑은 6.25와 각종 환란 때도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한 문화재로 안정된 비례감과 더불어 조각 수법도 뛰어나다. 국내 대표적인 다각다층석탑으로 고려 전기 문화재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경내를 둘러보다 힘을 잃어가는 햇살에 밀려 월정사를 나와 동피골야영장으로 향했다.
아날로그의 세상 속에 놓인 동피골야영장
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야영장에는 평일이라 그런지 기자들만이 유일한 손님이다. 숲 사이로 햇살이 비출 것 같은 마른 땅에 자리를 잡고 코베아의 ‘아웃백’ 텐트를 펼쳤다. ‘오지라는 뜻’의 ‘아웃백(Outback)’은 5개의 메인 폴이 텐트를 받쳐줘 측면의 충격에도 튼튼한데다 안락한 거실 공간을 제공해 지난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동피골야영장의 밤은 문명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이며 깊고 아늑한 시간의 세상이다. |
동피골야영장의 밤은 그 어떤 곳의 야영장보다 깊고 어둡다. 그것은 전자식 문명과 단절된 산자락 밑이라는 지역적 특성 외에도 우리가 전자식 조명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밤을 이기는 것은 빛이다. 랜턴 불빛에 잠자던 주변의 수목과 낙엽들이 눈을 뜬다. 밤이 깊어질수록 야영장의 또 다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하늘을 수놓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아 등이 어느 때보다 밝게 눈웃음을 친다. 더욱이 홀로 떠올라 오롯이 빛을 발하는 달은 가을의 분위기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월정사를 끼고 도는 맑은 계곡이 어둠을 뚫고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가을의 찬바람을 실어 나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25도를 넘나들던 날씨가 이내 뚝 떨어져 버려 성큼 다가온 겨울의 찬바람을 실감나게 한다. 텐트 앞 화로에 불씨가 모두 사그라지기는 것을 확인한 후 잠이 들었다.
▲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떨어진 낙엽이 텐트 지붕에 수북히 쌓였다. |
향기에 취해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리기가 되었다. 작은 바람이 일 때마다 잎들이 ‘팔랑팔랑’ 마지막 비행을 한다. 잎의 비행은 대지의 여신에게 돌아가는 일이며 환생이다.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려 텐트 위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리고 텐트를 접었다. 캠핑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초기에 겪는 부담 중 하나가 장비를 설치하고 회수하는 일이다.
처음이야 텐트를 치고 테이블 등을 세팅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린다지만 몇 차례 경험이 생기다 보면 1시간 안에 모든 일이 가능해진다. 때문에 설치와 회수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누구나 처음에는 힘들고 더디게 마련이다. 늦가을 저녁에 부는 바람에 대비해 펙을 너무 깊게 박다보면 해체 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펙은 설치 시 각도가 크면 클수록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펙을 회수하고 테이블을 접어 트렁크에 차곡차곡 챙겨 넣고 나니 손가락 하나 집어넣을 틈도 없을 정도다. 동피골야영장에서 월정사로 가는 길은 계곡을 뒤덮기 시작한 단풍의 물결로 곳곳이 명경이며 장관이다. 붉게 물든 단풍의 그림자가 맑은 담에 비쳐질 때면 하늘과 물이 빚어낸 두 개의 풍경에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다.
▲ 오대천을 따라 이어진 단풍의 행렬은 화사하면서도 곱고 아름답다.
또다른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갈수록 편한 것만을 찾던 내게 동피골은 또 다른 캠핑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곳 같다. 진정한 아날로그 속에서 듣게 되는 자연의 소리와 생명의 속삭임,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 말이다. 도심에서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되는 산골, 그곳에는 기계라는 문명 속에 가려진 또 다른 것들이 숨어 있었다.
동피골야영장
▶ 문의: 033-332-6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