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과 나무, 물이 들려주는 생명의 대화를 나누는 곳
별과 나무, 물이 들려주는 생명의 대화를 나누는 곳
  • 글 이철규 | 사진 엄재백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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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Night In The Campsite__part1 동피골야영장

전나무 숲과 고찰을 둘러볼 수 있는 만추의 캠프장

▲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동피골야영장은 가을이면 한적하고 포근한 캠핑의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만추의 계절 11월은 찬바람에 의한 추위와 냉기로 인해 캠핑을 즐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경기권을 벗어난 캠프장이나 야영장은 어느 때보다 한산하고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시기다. 또한 평상 시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사물이 겨울을 준비하며 계절을 보내듯 캠핑을 통해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 보자.

늦가을은 대지를 따라 뒹글던 낙엽이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기는 계절이다. 1년 내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던 잎이 이제야 안식을 취하며 새로운 생명의 밑거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만추의 시간은 산골 사람들이 그렇듯 숲도 어느 때보다 바쁘고 분주하다.  오대산 입구에서 월정사로 들어서는 길에는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으로 온통 치장을 했다. 월정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생명의 흙길을 밟으며 전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신성한 공간을 지키는 수호신들처럼 우뚝 선 전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어 세상과 단절된 또 다른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오는 맑은 햇살이 그늘진 숲속을 비춰 포근함과 더불어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월정사와 세상을 구분 짖는 숲, 이 전나무들이 있었기에 월정사와 상원사는 5대 보궁으로 남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숲이 주는 생명력을 통해 많은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었는가 보다. 건축자재나 펄프용 재료로 쓰이는 전나무는 심신을 안정시키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준다고 한다. 또한 전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내 삼림욕에 좋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오대산 전나무 숲은 내소사,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국내 3대 전나무 숲 중 하나로 일명 ‘천년의 숲’으로 불린다. 

▲ 오대산 월정사의 머리로 유명한 전나무 숲. 1km정도의 거리지만 삼림욕과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오대산 전나무 숲을 벗어나면 바로 월정사 일주문에 이른다. 눈을 부릅뜬 사천왕들은 수미산중턱에 기거하며 동서남북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들이다. 양각된 사천왕의 존재는 이 일주문 너머가 곧 불국정토며 수미산이란 의미다. 온갖 잡귀들을 쫓는다는 사천왕상을 지나 월정사 경내로 들어서니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진 월정사 경내가 눈길을 끈다. 마치 산자락 안에 안겨 잇는 듯한 월정사의 모습은 나의 존재를 내세우기보다 그 속에서 하나가 된 자연이다.

월정사 경내 중앙에 자리한 팔각구층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의 양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팔각모양의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린 것으로 화려하고 귀족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국보 48호인 이 탑은 6.25와 각종 환란 때도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한 문화재로 안정된 비례감과 더불어 조각 수법도 뛰어나다. 국내 대표적인 다각다층석탑으로 고려 전기 문화재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경내를 둘러보다 힘을 잃어가는 햇살에 밀려 월정사를 나와 동피골야영장으로 향했다.

아날로그의 세상 속에 놓인 동피골야영장
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야영장에는 평일이라 그런지 기자들만이 유일한 손님이다. 숲 사이로 햇살이 비출 것 같은 마른 땅에 자리를 잡고 코베아의 ‘아웃백’ 텐트를 펼쳤다. ‘오지라는 뜻’의 ‘아웃백(Outback)’은 5개의 메인 폴이 텐트를 받쳐줘 측면의 충격에도 튼튼한데다 안락한 거실 공간을 제공해 지난여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 동피골야영장의 밤은 문명 세상과 동떨어진 공간이며 깊고 아늑한 시간의 세상이다.
찬바람에 자작나무와 참나무 숲에서 하나둘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넓은 캠프장을 혼자 사용하는 것이 즐겁지만 한편으론 가을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외로움이 뒷맛을 남긴다. 누군들 마찬가지겠지만 삶에는 늘 혼자 지고가야 할 짐이 있다. 일부에선 그것이 전생의 업이라고도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은 평생 외로움을 느끼며 사는가보다.

동피골야영장의 밤은 그 어떤 곳의 야영장보다 깊고 어둡다. 그것은 전자식 문명과 단절된 산자락 밑이라는 지역적 특성 외에도 우리가 전자식 조명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밤을 이기는 것은 빛이다. 랜턴 불빛에 잠자던 주변의 수목과 낙엽들이 눈을 뜬다. 밤이 깊어질수록 야영장의 또 다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을 하늘을 수놓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아 등이 어느 때보다 밝게 눈웃음을 친다. 더욱이 홀로 떠올라 오롯이 빛을 발하는 달은 가을의 분위기를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월정사를 끼고 도는 맑은 계곡이 어둠을 뚫고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가을의 찬바람을 실어 나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25도를 넘나들던 날씨가 이내 뚝 떨어져 버려 성큼 다가온 겨울의 찬바람을 실감나게 한다. 텐트 앞 화로에 불씨가 모두 사그라지기는 것을 확인한 후 잠이 들었다.

▲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떨어진 낙엽이 텐트 지붕에 수북히 쌓였다.
지대가 높은 탓인지 동피골의 아침은 온몸이 수축될 만큼 차다. 늦가을의 캠핑은 아침이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화로에 불을 피우는 일이다. 추위에 몸도 녹이고 이른 아침 뜨거운 커피 한잔의 호사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캠프장에서 가을 풍경을 담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일상의 모든 상념들을 모두 씻어주는 느낌이다.

향기에 취해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리기가 되었다. 작은 바람이 일 때마다 잎들이 ‘팔랑팔랑’ 마지막 비행을 한다. 잎의 비행은 대지의 여신에게 돌아가는 일이며 환생이다. 바람이 잦아들길 기다려 텐트 위에 떨어진 낙엽을 쓸어내리고 텐트를 접었다. 캠핑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초기에 겪는 부담 중 하나가 장비를 설치하고 회수하는 일이다.

처음이야 텐트를 치고 테이블 등을 세팅하는데 1시간 이상이 걸린다지만 몇 차례 경험이 생기다 보면 1시간 안에 모든 일이 가능해진다. 때문에 설치와 회수에 대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누구나 처음에는 힘들고 더디게 마련이다. 늦가을 저녁에 부는 바람에 대비해 펙을 너무 깊게 박다보면 해체 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또한 펙은 설치 시 각도가 크면 클수록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펙을 회수하고 테이블을 접어 트렁크에 차곡차곡 챙겨 넣고 나니 손가락 하나 집어넣을 틈도 없을 정도다. 동피골야영장에서 월정사로 가는 길은 계곡을 뒤덮기 시작한 단풍의 물결로 곳곳이 명경이며 장관이다. 붉게 물든 단풍의 그림자가 맑은 담에 비쳐질 때면 하늘과 물이 빚어낸 두 개의 풍경에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다.

▲ 오대천을 따라 이어진 단풍의 행렬은 화사하면서도 곱고 아름답다.

또다른 자연의 소리가 들려온다
월정사를 빠져나와 오대산국립공원 입구에 자리한 한국자생식물원을 찾았다. 국내 토종 식물들의 재배와 육성을 위해 탄생한 이곳은 봄이면 금낭화와 매발톱, 할미꽃 등 다양한 야생화들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가을이면 지천으로 구절초가 피어 장관을 이룬다. 길가에 핀 흰구절초와 조화를 이룬 분홍빛 코스모스는 또 다른 볼거리다. 또한 가을을 대표하는 꽃이라는 산국의 은은한 향기가 나그네를 자극한다. 자생식물원을 나와 서울로 차를 몰았다. 서울로 가는 길은 평일이라 한가롭고 체증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사실 많은 캠퍼들이 전기와 컴퓨터, 샤워시설을 갖춘 캠프장을 원하지만 캠핑은 그런 문명들과 떨어진 자연 속에서 생명의 싱그러움과 그 속에서 하나가 된 나를 찾는 일이다. 때문에 캠핑을 즐기기 위해선 약간의 불편함도 참을 수 있어야 한다.

갈수록 편한 것만을 찾던 내게 동피골은 또 다른 캠핑의 즐거움을 선사해주는 곳 같다. 진정한 아날로그 속에서 듣게 되는 자연의 소리와 생명의 속삭임,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 말이다. 도심에서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되는 산골, 그곳에는 기계라는 문명 속에 가려진 또 다른 것들이 숨어 있었다.

동피골야영장

▲ 동피골야영장은 취수대과 화장실, 벤치 등의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편안하고 포근한 산자락 아래 위치해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오대산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동피골야영장은 오대천 상류에 자리했으며 인근의 상원사와 월정사, 비로봉 등을 이용해 캠핑과 트레킹, 산행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숲속에 자리한 야영장은 사이트가 정확히 나눠져 있는 것은 아니며 나뭇가지에 뒤덮여 햇살이 잘 들지 않는 곳도 있다. 야영장 내에는 취수대와 화장실, 관리소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차는 주차장에 세운 후 야영장으로 짐을 운반해야 하지만 거리가 멀지는 않다. 다만 동피골야영장을 이용하기 위해선 밤을 밝혀줄 랜턴과 전등을 반드시 챙겨야 하며 피서철이 아닌 경우, 10시가 넘으면 전원이 꺼지는 점을 이용해 방한 장비를 충분히 챙겨가는 것이 좋다. 11월은 낙엽이 많아 불시로 인한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화로 사용 시 각별히 주의해야 하며 반드시 불을 끌 수 있는 방화수를 준비한다. 야영장 이용료는 오대산 입장료 1인 2천5백원과 주차비 5천원, 야영장 사용료 1인 1천6백원(성수기 2천원) 등이다.
▶ 문의: 033-332-6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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