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를 함께 타는 동료, 또는 스승과 제자,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스노보드를 함께 타는 동료, 또는 스승과 제자,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
  •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5.01.0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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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 스님과 류회대 선수

국내에서 스노보드를 이야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스노보드 타는 스님으로 유명한 수국사 호산스님과 하프파이프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류회대 프로다.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을 가진 사이이기도 하다. 류 프로를 처음 스노보드 세계로 안내한 스승과 제자이면서 불교 용어로 속가 상자 지간, 즉 양아버지와 아들 사이기도 한 것. 두 사람을 만나 스노보드 인생과 추억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함박눈이 쏟아지던 12월 15일, 수국사에서 진행했다.

기자 두 분이 얼마 만에 보는 건가요?
호산스님 (이하 호산) 오랜만에 봅니다. 작년 겨울에 보고 이번에 처음 보는 거예요.
류회대 선수 (이하 회대) 제가 전화 한 통 걸기 보다는 직접 찾아 봬야지 생각만 하다가 전화도 자주 못 드리고, 찾아뵙지도 못해 송구하네요.
호산 저도 회대한테 미안해요. 올해 수국사로 이동해 오면서 바쁘기도 했고, 가면 갈수록 일이 많아서 보드 선수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기자 지난 달에 월간 아웃도어에서 류회대 선수를 인터뷰 했습니다.
호산 아, 그래요? (잡지를 보며)실물은 시커먼 데, 잘 나왔네. 얼굴에는 뭐 좀 발랐나.
회대 포토샵으로 보정한 거예요.(웃음)

수줍음 많던 꼬마 아이와 스님의 첫 만남
기자 스님께서 류회대 선수를 처음에 지도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두 분의 인연이 시작된 건가요?
회대 어머니가 불교 신자여서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다 스님을 처음 뵀죠. 스노보드를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셔서 따라 나섰습니다.
호산 꼭 선수를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르쳐 보니 곧 잘 하더라고요. 기량이 뛰어났습니다. 회대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캐나다로 전지훈련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탔어요. 그 전에는 누나와 같이 스님을 따라서 스키장 가서 노는 식이었어요. 재미로 탔죠. 선수가 된 후로는 코치한테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기자 류회대 선수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지금 보면 굉장히 개구쟁이였을 것 같은데.
호산 수줍음 많은 꼬마였어요. 말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어요.
기자 그러면 언제부터 말을 안 들었나요? (웃음)
호산 말 안 들었다고 이야기했나?
회대 네, 이야기 했어요. 말썽 많이 피웠어요. 머리를 탈색하고 초록색으로 염색해서 출입국 관리소에서 잡혀서 오도 가도 못했던 적도 있고요. 그러면 안 되지만 비행기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어요. 스님과 함께 타고 가는 비행기에서. 기장이 와서 근처 아무 공항에 내려줄테니 당장 내리라고 했습니다. 스님께서 죄송하다고 하셔서 겨우 무마가 됐습니다.

기자 스님께서 마음 고생 많으셨죠?
호산 그 나이는 그런 거 같아요. 머리도 노랗게 하고 싶고. 근데 그때는 노란 게 아니라 머리를 파랗게 하고 왔어요. 이미 머리를 파랗게 하고 왔다는 건 반항부터 하겠다는 이야기거든.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바로 잡을까 고민했죠. 그래도 보드는 열심히 탔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사춘기도 오고, 반항하고 싶은 때도 오잖아요.

사실 제가 회대에게 보드만 가르쳐준 사이가 아니라 부모 같은 관계예요. 불교에서 상자지간이라고 하는 양아버지와 양아들의 관계입니다. 청소년기에는 부모님이 적이잖아요. 그래도 제가 이야기하면 말을 잘 듣는 편이었어요. 본인은 혼도 많이 났다고 하지만, 혼을 낼 때는 내야지 할 수 없죠. 그래도 반듯하게 잘 컸어요. 학교 갈 때는 가고.

새로운 세상, 캐나다 원정
기자 류회대 선수는 처음에 스님께서 스노보드를 가르쳐준다고 할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회대 신기했죠. 스님이 스노보드를 타신다는 게. 그런데 스키장 가보니까 스님은 스노보더 사이에서 매우 유명하셨어요.
호산 그때는 제가 잘 탔어요. 모든 선수 중에서도 잘 타는 편이었어요.

기자 선수는 스님의 실력만큼 따라잡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호산 뭐 얼마 안 걸렸지. 2~3년 걸렸나? 코치한테 코칭을 받고부터는 내가 따라가기가 어렵지.
두 시즌만 코칭을 받아도 실력이 좋아집니다. 저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실력이 그대로고, 오히려 줄었으면 줄었지. 회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캐나다 블랙콤으로 원정 훈련을 다녀온 뒤로 열심히 탔죠.
회대 그때가 2000년 6월 6일이었어요. 처음 캐나다로 원정 훈련 간 날이. 그 전까지는 재미로 탔다면 이제부터는 제대로 타보겠다는 생각으로 따라 나선 거였죠. 8살 이상 차이 나는 프로 선수 형들과 가서 형들이 어렵기도 했어요.

기자
처음 원정 훈련 간 소감은 어땠나요?
회대 완전 다른 세상이었죠. 그 전까지 알던 스키장은 리프트타고 올라가서 내려오는 거였는데, 캐나다는 티바라고 T자로 생긴 기구를 허벅지에 걸면 와이어로 끌어올려주는 식이었어요. 내려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기도 했죠. 가는 데 1시간 이상 걸렸어요. 어색하고 엉덩이가 아파서 혼났습니다. 그래도 비디오에서 보던 멋진 선수들이 캠프(강습)를 열고 있는 걸 눈앞에서 보니 신기했어요. 그 당시 정말 유명했던 라이오 타하라 일본 선수가 캠프를 하고 있더라고요.

기자 한 달 동안 캐나다에서 보드를 타고 오니 실력이 일취월장 했나요?
회대 눈만 높아졌죠. (웃음)
호산 그 뒤로 고등학교 3학년 때 달마배 스노보드대회에서 처음 우승 했지?
회대 네, 처음으로 1등을 해본 대회였어요. 얼떨결에 됐죠.

미래에 대한 고민, 고민, 고민
기자
스님은 기분이 어떠셨어요? 스님이 주최한 대회에서 제자가 우승을 했어요.
호산 좋았죠. 회대는 1등 후보도 아니었는데 운이 좋았죠. 선배들이 실수를 많이 했어요. 파이프에 적응을 잘 했던 게 1등 할 수 있었던 요인이라고 봅니다.

기자 스님이 보시기에 류회대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노력형인가요, 천재형인가요?
호산 요즘은 많이 노력하는 거 같아요. 대학 가기 전에는 보드를 열심히 탔는데, 대학 가서는 공부한다고 많이 타지 않은 거 같아요. 직장 다니다가 보드를 다시 탔지?
회대 네.
호산 선수들이 대학을 가면 미래를 걱정하게 되니까. 회대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열심히 탔는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시작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스키장에 오는 날이 줄어들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은행에 취업 하더라고요. 과장까지 승진했어요. 2년 정도 근무했나?
회대 3년 근무했어요.
호산 과장까지 했는데 그거 내버리고 나왔잖아.

기자 은행에 다니셨어요? 보드 타고 싶어서 어떻게 다니셨어요?
회대 힘들었죠. 보드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죠. 보드로만은 계속 먹고 살기 힘드니까 직장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들어간 거예요. 돈을 좀 모아 놓고 보드를 탈 생각이었어요. 그러면 마음이 좀 편안해 질 줄 알았죠.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도 않고 힘들더라고요.
호산 한 동안 스키장에 안보이다가 다시 스키장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 다시 제 2의 보드 인생을 살고 있는 거죠. 회대는 고등학생 때는 선수 생활하다가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는 사회 생활하다가 다시 프로 선수로 돌아온 케이스죠.

기자
선수는 그 당시에 보드가 타고 싶지 않아서 다른 진로를 결정하셨던 건가요? 아니면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안정적인 직장을 찾은 건가요?
회대 보드를 계속 타고는 싶었죠. 그런데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조금 벌어서 타볼까 했는데, 안되겠더라고요. 돈을 못 모으겠어요.

기자 스님은 류회대 선수가 선수 생활을 그만 두고 사회 생활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호산 자기가 좋아서 취미로 타는 거면 몰라도 아무래도 스노보드만 타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직업을 가지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 마음을 이해합니다. 코치를 해도 연봉이나 월급이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불안하죠. 그래도 역시 보드가 좋기는 좋은지 그 좋은 직업도 버리고 다시 프로 생활을 하기 위해 스키장으로 돌아왔어요. 회대의 마음속에 보드가 있는 거 같아요. (류회대 선수에게) 그런가?
회대 그렇죠.(웃음)

“바라는 거 없어요. 보드만 타면 돼요”
기자 그때가 참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래도 사회 생활했던 게 인생을 길게 놓고 보자면 좋은 경험이 됐을 거 같아요. 은행을 그만두고 다시 스키장으로 돌아올 때는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회대 제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이제 시작하는 아이들이 편하게 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길을 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곧 열릴 동계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팀이 생길 텐데 미리 팀을 만들어서 기반을 잡아 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노보드를 타는 친구들이 처음에는 즐겁게 타다가 성인이 되면 생각을 많이 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스노보드를 계속 탄다는 가정 하에서는 답이 안 나오죠.

스노보드에 대한 안 좋은 편견도 성장을 가로막는 한 가지 장애물인 거 같아요. 어른들은 스노보드 타는 애들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죠. 옷도 크게 입고, 껄렁껄렁해 보이기도 하고. 말도 거칠게 하는 편이니까요. 세상 막사는 아이들처럼 보는 거 같아요. 평소 생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하지만 안 그래요. 다들 얼마나 착한데요. 스님은 스노보드 타는 애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봐준 분이죠.

기자 선수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갈 예정이세요.
회대 지도자의 길을 걸어야죠. 하지만 아직도 가르치는 거 보다는 타는 게 좋아요. 아이들 가르치고 프로 선수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한 데 타는 게 더 좋아요. 가르치면 그 시간만큼 보드 탈 시간이 줄어들고 그러면 실력이 점점 줄어들거든요. 무엇보다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아요.
호산 저도 타는 게 더 좋아요. 대회열고 이런 거 보다 타는 게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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