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날 밤, 이 나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었다
떠나기 전날 밤, 이 나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싶었다
  • 정진하 기자
  • 승인 2015.01.09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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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자의 쿠바 비아헤 ⑧마지막 회

여행 하수인 나는 배낭 하나 메고 떠나는 여행은 아직 할 줄 모른다. 과감히 일상의 테두리 밖으로 나서는 척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편함에 대비하기 위해 단단히 무장했다. 하지만 거칠거칠한 휴지, 재활용에 재활용을 거듭하는 비닐봉지, 낡은 자전거 등 무엇 하나 번듯한 것 없는 쿠바를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이 나라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다. 그들의 삶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 데에 끼치는 이 정도의 불편함은 충분히 끌어안을 수 있었다. 과도한 준비가 낳은 대참사, 20kg 캐리어가 제일 큰 문제였다.

▲ 바다를 바라보는 쿠바노들.

올긴에서 우리는 관타나모 주의 바라코아라는 바닷가 마을로 이동을 서둘렀다. 올긴에서 바라코아로 향하는 비아술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했다. 아저씨의 설명을 유추해 본 결과 중간 어디쯤에서 택시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는 것 같았다. 얼마를 달려 휴게소에 도착했다. 목이 말라 사이다를 사기로 했다. 휴게소 안에 들어서자 식사를 하던 어떤 쿠바노는 닭다리를 집은 손을 번쩍 들어 이리 와서 앉으라며 생전 처음 본 ‘닭다리 인사’를 건냈다.

그와 기분 좋게 웃고 사이다를 사려는데 그곳은 내국인용 화폐 MN으로 계산을 하는 곳이었다. 나는 이미 길거리 간식을 사먹어 MN을 모두 탕진한 상태였다. 지갑만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아저씨가 다가와 계산을 해주었다. 백마탄 아저씨였다. 이후에도 몇 번이나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작은 군것질들을 사주는 쿠바노들을 만났다. 여행객들에게 베푸는 그들의 정서가 더 없이 따뜻했다.

▲ 기사 아저씨는 캐리어를 묶고 출발 준비가 한창이다.

▲ 방파제에 앉아 쉬어 가는 사람들.

▲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강아지를 만났다.
그렇게 쏘이와 나는 목을 축이고 새로운 기사 아저씨를 만났다. 차를 보니 심란했다. 창문도 없는 이 차를 타고 땡볕을 몇 시간이나 달려야 했다. 일단 탔다. 쿠바 여행 중 가장 고된 시간의 시작이었다.

포장이 잘 되어있지 않은 쿠바의 도로에는 흙먼지가 피어올랐고 고스란히 차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발밑에서는 차가 뿜는 뜨거운 바람이 나왔다. 모자로 발등을 덮어 거의 널브러진 상태로 바라코아에 도착했다.

바다가 들리는 방이었다. 두 개의 나무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쏟아졌다. 상대적으로 연로한 쏘이는 고된 여정에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물갈이도 아닌 ‘흙갈이’ 중이었다. 산책을 나갔지만 그녀는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고 다시 카사로 돌아갔다.

할 수 없이 혼자 바다 전망이 탁 트인 음식점 테라스에서 낮술을 시작했다. 방파제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청년도 훔쳐봤다. 그렇게 홀로 알딸딸하게 붉어진 얼굴을 달고 조용한 바라코아의 한낮의 즐겼다.

바깥과 통하는 부엌문을 열어 놓으면 액자가 떨어질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방파제 위로 큰 파도가 넘쳤다. 바람 소리를 음악 삼아 우리만의 놀이인 시낭송회를 시작했다. 놀이의 방법은 단순하다. 가져간 시집에 실린 시 하나를 읽는 것이다. 노래 선곡은 자유. 한없이 서정적인 구절을 읽으며 8비트 유로 댄스를 틀어도 좋다.

▲ 몇 개의 동전으로 빵을 샀다.

▲ 내려다 본 바라코아의 가정집.

쏘이와 나는 과거 철저히 음지에서 시를 빙자한 잡글 창작 스터디 ‘All that JZ’를 만들었다. JZ는 재즈가 아니라 저질의 약자다. 세상 저질스러운 어떤 것들에게 눈길을 보내는 스터디였다. 창작 뒤엔 언제나 합평을 가장한 조롱이 뒤따랐다.

공항에서 처음 느낀 후텁지근함이 익숙해져 갈 때쯤, 난 또 여행의 마지막에 놓여졌다. 문장 끝에 찍히는 매정한 마침표처럼 이제 쿠바와 안녕,할 시간이다. 혼자가 된 어느 날 밤, 계절과 계절의 경계 속에 끼어 숨죽인 그 순간, 혹은 누군가에게 실없는 고백이라도 내 뱉고 싶은 강가에 다다르면 난 쿠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바쁘게 변하지 말길, 쿠바.

▲ 바라코아의 거리 풍경.

▲ 카사에서 먹은 저녁 식사.

▲ 파도가 세차게 일었던 날.

▲ 나무 창문을 열면 파도 소리가 들린다.

아주 사소한 조언


쿠바를 떠날 때는 출국세를 내야 한다. 일단, 항공사 창구로 가서 짐을 붙이고 표를 받은 뒤 출국세를 내는 창구로 이동한다. 가격은 25CUC.

비자와 함께 돈을 지불하면 비행기 티켓 뒤에 출국세를 냈다는 표시를 해준다. 그 후 출국심사 절차를 밟으면 된다.

또, 아무리 따뜻한 쿠바라지만 새벽 공기는 쌀쌀하다. 이른 시간에 비행기를 타는 경우에는 단단히 챙겨 입고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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