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딸은 “언니”를 서툴게 발음하며 잘 따랐다
옆집 딸은 “언니”를 서툴게 발음하며 잘 따랐다
  • 정진하 기자
  • 승인 2015.01.02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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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자의 쿠바 비아헤 ⑦

오감으로 무장한 추억은 예상치 않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내 둔중한 그림자에서, 혹은 누군가가 무심코 건네는 인사에서. 쿠바에서 만난 어떤 모습이 미래에 안착해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그래도 쿠바, 그때의 나에게 상투적이지 않은 위로를 부탁해!

▲ 올긴 계단에서 만난 아이들.

가이드북에 소개된 음식점에서 퇴직 후 남미를 여행 중인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우리가 먼저 음식 맛을 보았기에 맛있는 메뉴를 추천했다. 부드러운 돼지고기 요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옮긴다는 부부와 함께 방을 보러 다녔다. 한국 아줌마 특유의 유쾌한 깎기 신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긴 여행에 얼굴은 까칠했지만 서로를 살뜰히 챙기는 부부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서로에게 무탈한 여행을 빌어주며 우린 야식으로 로브스터를 먹으러 갔다.

이제 구름 아래 닿을 시간이었다. 비아술 버스를 타고 올긴으로 향했다. 터미널에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쏘이가 알아온 카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만실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옆집도 카사를 운영하고 있다며 지금 주인이 잠시 집을 비웠으니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짧은 통화가 끝나고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 올긴 시내를 누비는 버스.

▲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와 딸들은 방으로 잠시만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특히 첫째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한국어에도 관심이 많아 옆집에 묵는 내내 “언니”를 서툴게 발음하며 잘 따랐다.

그렇게 친해져 쏘이와 나는 밤이면 그 집으로 마실을 나갔다. 정이 많은 옆집 아저씨는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쏘이와 나를 잘 챙겨주었다.

계단을 찾으러 나섰다. 그곳의 정확한 명칭을 모르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계단’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단번에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리 멀지는 않았다. 걷다 보니 끝없이 펼쳐진 계단이 보였다. 아찔했다.

물 들이키기로 준비운동을 마쳤다.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꼭대기에 서서 평화로워 보이는 올긴의 풍경을 바라봤다. 맥주도 한 캔 샀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엔 작은 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 내부에 들어서자 수 십장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 위에서 내려다 본 올긴 시내.

▲ 교복을 입은 소녀들.
미술관을 지키는 아저씨는 그림을 그린 분이었다. 밤을 헤엄치는 듯한 돌고래 그림을 샀다. 물놀이와 돌고래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구에게 사다 줄 작정이었다. 아저씨는 특별히 우리에게 미술관 옥상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미술관의 높이만큼 더 높은 곳에서 다시 올긴을 내려다보았다.

미술관을 나오니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할아버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객인 우리에게 기타를 건넸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쏘이와 나는 학창시절 ‘눈빛공주’를 결성한 과거가 있었다.

혼성 4인조로 구성된 밴드는 잦은 음이탈의 나, 제자리걸음 기타 실력의 쏘이, 타이어만 치다 학원을 나온 드러머 철, 수준이 안 맞는다고 확인시켜주지 않은 실력으로 잘난 척이 심했던 키보드 배씨의 조합이었다.

쏘이와 나는 타과의 발성법 수업까지 들으며 눈빛공주를 위해 열정을 불태웠지만 결국, 교수님과 학생들에게 큰 웃음만을 안기고 한 학기를 마쳤다. 그리고 해체 수순을 밟았다.

▲ 길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

▲ 멋진 폼으로 야구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 계단을 오르면 작은 미술관이 있다.

▲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들.

▲ 기타 치며 노래하는 할아버지.

아주 사소한 조언

출국시 캐나다 달러나 유로 혹은 다른 지폐로 환전할 때 영수증 금액과 받은 금액이 일치하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한국에 도착해 돈을 세어 본 나는 고성을 질렀다. 십 만원에 가까운 돈이 덜 들어 있었기에. 나의 억울함이 쿠바에 가 닿았길 바라며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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