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말야, 가끔 다른 세상에 있지
너 말야, 가끔 다른 세상에 있지
  • 글 문나래 수습기자 | 사진 이두용 편집장
  • 승인 2014.12.3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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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IN NATURE

Claude Debussy | Reverie
겨울하면 드뷔시, 드뷔시하면 겨울이 아닐까 싶은데 이것은 필시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차갑게 내려앉은 겨울 공기에 따사롭게 내려오는 햇빛. 온갖 표면에 부딪혀 흩어지는 먼지. 듣기만 해도 몸이 느려지고 눈이 부시는 듯한 기분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드뷔시의 많은 곡이 영화 속 OST로 쓰였다. 텅 빈 교실에서 불어오는 나른한 공기, 일요일의 평범한 아침 식사, 뜨거운 물로 샤워 후 개운해진 손끝과도 같은 그의 곡들. 핀란드의 깊은 침엽수림 속에서 길을 잃고선 오래오래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Kent | Columbus [Tillbaka till samtiden]
스톡홀름의 차가운 밤거리가 생각난다. 그곳의 겨울은 너무나도 길어 늘 지붕위에 눈이 쌓여 비가 오듯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런 축축하고 지독한 계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오렌지 빛 가로등 아래로 멋들어지게 걸어가는 스웨덴 사람들. 두꺼운 워커를 신고 커다란 야상점퍼를 걸쳤다. 이 곡을 들으면 그 장면이 하나둘씩 살아난다. 너무나도 섹시한 요아킴의 스웨디시 발음. 켄트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신디사이저와 기타 선율. 고독하고 멋지다. 어느새 몸이 차가워진 기분이다.

Antennas to Heaven | The True Tale of Felix Mankins [Hermeneutics]
Felix Mankins라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어주듯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앨범이름부터 해석학(Hermeneutics). 편안하게 잠들고 싶을 때나 걷고 싶을 때 들으면 좋은 앨범이다. 이곡은 천천히, 천천히 하산할 때 듣는다. 하산을 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땅거미가 질 무렵. 하늘은 서서히 보랏빛으로 물들어가고 등 뒤로는 저물어가는 햇살이 땀으로 젖은 셔츠를 따스하게 비춰준다. 처지는 기타의 리프와 톤, 보컬의 나른한 영국식 억양에 고단하게 집으로 귀가하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뒤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when the sun went down’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따스하고 편안한 건 분명하다. 영어가사는 알아들으려고 노력하지말자. 안 그래도 피곤한 세상에.

Roy Hargrove | Strasbourg / St. Denis [Earfood]
눈이 많이 내리는 어느 연말의 밤, 친구 집에 모두 모여 즐겁고, 따뜻하고, 행복이 넘쳐흐르는 저녁식사를 하자. 나는 와인을, 너는 달콤한 팬케이크를 모두모두 손에 들고 포근한 카펫 위에서 춤을 추자. 생강쿠키를 만드는 친구, 트리장식에 여념이 없는 친구, 모두 여기로 모여 봐, 로이 하그로브의 음악이 있잖아. 현존하는 최고의 재즈 트럼페터.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는 멜로디에 절정의 테크닉을 보여줘 최고의 흡입력을 선사한다. 듣고 있으면 몸이 절로 들썩인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특정 냄새가 난다는 그의 재밌는 말처럼, 이곡을 듣고 있으면 넉넉하고 푸근한 12월의 깊은 밤 냄새가 나는 듯하다.

Glen Check | Vivid [Haute Couture]
러닝할 때는 꼭 글렌체크를 추천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초인적인 에너지가 폭발한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나이키 위런 서울 행사에서 앨범 모든 트랙을 전체 재생으로 들었다. 그만큼 앨범의 모든 곡이 신나고 좋다는 말. 몸에 힘이 절로 나고 기쁘고 좋은 것만 떠올리게 하는 신디사이저의 사운드 덕분이다. 그 와중에 드럼과 베이스가 단단하게 곡의 무게를 잡아주니 웅장함 또한 놓치지 않는다. 백문이 불여일견! 누가 춤추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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