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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이와 어울리는 한 남자에게 “결혼해!”를 외쳤다
쏘이와 어울리는 한 남자에게 “결혼해!”를 외쳤다
  • 정진하 기자
  • 승인 2014.12.26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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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자의 쿠바 비아헤 ⑥

차라리 전생에 베짱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다. 나는 현생에 사람의 탈을 쓴 베짱이로 태어나 마음이 느리다는 꾸지람을 종종 듣는다. 불행은 현생의 몫이다.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느리게 시간을 흘려보내도 좋을 바다에 앉았다. 사람들이 시선을 떨구는 바다 너머의 어딘가를 향해 나도 시선 하나를 얹었다.

▲ 체 게바라 기념관 가는 길에 만난 쿠바 청년들.

트리니다드에서 가까운 앙꼰 해변에 가기로 했다. 호텔 예약은 트리니다드 시내의 여행사를 통해 할 수 있다. 여행사 주위에서 미국 대학교수로 있다는 한국인을 만났다. 우리를 보고 급하게 뛰어왔다던 그분은 버스표를 손에 꼭 쥐어주고 떠나셨다. 아쉽게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를 타고 예약한 브리사스 호텔로 향했다.

제대로 한 템포 쉬어가기 원한다면 하루쯤은 호텔 숙박을 추천한다. 앙꼰 해변의 호텔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체크인 때 채워주는 ‘절대 팔찌’로 호텔 내 몇 개의 레스토랑을 제외하고 모든 식당과 바 이용이 가능하다. 심지어 무료로 살사 강습도 받을 수 있다. 쿠바에서 쏘이와 나는 모닝롤처럼 생긴 빵 사이에 김을 끼워 먹는 메뉴를 개발할 정도로 항상 허기져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우린 뷔페로 향했다.

▲ 쾌청한 날씨의 앙꼰 해변.

▲ 산타클라라의 어느 골목.

▲ 앙꼰 해변에서 만난 프랑스 자매.
그곳에서 일하는 종업원 두 명이 우리를 보자마자 크게 환대했다. 장난기가 많은 그들은 계속 주위를 맴돌며 말을 걸었고 급기야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목걸이 두 개를 가져와 걸어주었다. 선물이라고 했다. 나는 쿠바에 지인을 만들고 싶어 쏘이와 어울리는 한 남자에게 “결혼해”를 외쳤지만, 나의 수작을 눈치 챈 그녀는 결국 마음을 열지 않았다.

공수해 온 수영복을 입고 바다로 향했다. 수영이라기보다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그리고 그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바다를 봤다. 심지어 보다가 자기도 했다. 가만히 있어도 좋은 카리브해의 앙꼰 해변. 주황빛으로 물드는 석양을 보는 내내 그곳에 머물고 있지만 그 시간이 그리웠다.

산책을 하다 프랑스에서 온 나이 지긋한 자매를 만났다.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녀들은 굉장히 전문가의 느낌을 풍기며 자리를 선정해 셔터를 눌렀다. 사진작가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포즈를 정해주는 순간, 아니구나 했다. 88년도식 우정 강요 포즈를 부추기는 그녀들과 한바탕 웃었다. 아이처럼 웃는 그녀들처럼, 언제나 한결같은 바다처럼 늙어가고 싶었다.

▲ 시원한 옷차림의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다.
그렇게 짧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정리하고 트리니다드에서 3시간 떨어진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숙소가 있는 비달 광장에서 체 게바라 기념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도보로는 30분 정도 걸린다. 사람들은 ‘체’라는 한 글자를 말하면 바로 방향을 일러주었다.

어느 가정집에서 흘러나오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길을 걸으며 때 묻은 옷걸이와 같은 생활 잡화를 파는 사람들, 구두를 닦아주는 아저씨, 훈훈한 외모를 가진 청년들, 손녀와 놀아주는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산타클라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들의 우상 ‘체’ 기념관 보다는 가는 길에서 지금의 쿠바를 만났다.

저 멀리 기념관이 보였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데 한 소년이 다가왔다. 같이 사진도 찍었다. 소년은 이내 얼마의 돈을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천진한 소년은 이 상황이 익숙해 보였다. 얼떨결에 동전 몇 개를 주었다. 우리는 그 소년에게 친구들과 사 먹을 간식값 정도를 준 것일 테지만 건강한 방법으로 돈을 취하는 법을 일러주지는 못했다. 마음이 영 불편했다.

▲ 의자에 앉아 구두를 맡긴 한 쿠바노.

▲ 노상에서 옷걸이, 빨래집게 등 다양한 생활 잡화를 팔고 있다.

▲ 비달 광장 한편에 열린 꽃집.

▲ 브리사스 호텔 공연팀.

▲ 컵케익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파는 아주머니.

▲집 앞을 청소 중인 아주머니.  

▲ 낡은 민소매를 입고 과일과 야채를 파는 아저씨.

▲ 체 게바라 기념관 앞 기념비.

아주 사소한 조언


쿠바 수도 아바나 신시가지에 지난 8월 10일 호세 마르티 한·쿠바 문화클럽이 개원되었다. 이 문화원은 한국문화 전통박물관과 유물전시관, 학글학교 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간이 난다면 이곳에 들러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을 보고 간다면 93년 전 쿠바로 흘러온 한인 이민자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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