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이는 나에게 ‘로시난테’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쏘이는 나에게 ‘로시난테’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 정진하 기자
  • 승인 2014.12.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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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자의 쿠바 비아헤 ⑤

혼자 떠나는 여행에 익숙하다. 길을 잃어도 조금 늦게 걸어도 그 몫은 나 혼자 감당하면 그만이었다. 여행 끝에 남는 건 그곳에서 보았던 어느 유명한 조각상이 아니라 내 방식대로 누볐던 시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알았다. 헐렁한 자유를 느끼기엔 혼자가 편했다. 엄마에게 등가죽을 하사할 만한 나태함도 눈감아주는 여행은, 언제나 ‘옳다’.

▲ 쿠바 종교 산테리아를 믿는 할머니.

▲ 물을 받고 있는 사람들.
그런 철칙을 잠시 접어두고 그녀를 만났다. 대학 동기인 그녀와 나는 농담과 진담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사이다. 다섯 살 많은 내 친구 ‘쏘이’. 그녀는 나에게 ‘로시난테’라는 쿠바 이름을 지어주었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쓸모없고 힘까지 없는 늙은 말의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분명, 진담이었다.

나 또한 콧수염이 연상되는 ‘곤잘레스’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거절당했다. 우리는 여행지에서 흔히 발생하는 사고인 절교를 하게 되면 너와 내가 아닌, 쏘이와 로시난테라는 이름만 쿠바에 두고 오기로 했다.

비냘레스에서 다시 아바나로 돌아와 공항으로 그녀를 마중 나갔다. 다음 행선지인 트리니다드에서 만날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녀와 첫 번째 카사를 다시 찾았다. 하룻밤을 묵고 아저씨의 권유로 버스와 비슷한 가격의 합승택시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는 중년의 이탈리아 커플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이동 시간이 길어 카리브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새우 요리를 시켰지만 너무 짜서 먹기 힘든 정도였다. 어둑한 밤이 찾아오고 우리는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 트리니다드의 파스텔 톤 집.

▲ 삼삼오오 모여 노는 동네 아이들.

쏘이는 고급 정보를 입수해 왔다. 주인이 전직 요리사였던 카사 주소를 알아온 것이다. 이미 한국 사람이 다녀간 적이 있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짐을 풀고 아주머니의 귀여운 첫째 아들의 안내를 받으며 광장 쪽으로 향했다. 모히또 한 잔씩을 샀다. 계단에 걸터앉아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강아지가 다가와 홀짝이며 나 대신 목을 축였다.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쏘이와 곁을 떠나지 않는 강아지와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를 함께 나눴다.

트리니다드에서는 보기에는 좋지만 걷기에는 힘든 돌길로 도보여행을 할 수 있다. 파스텔 톤의 집들은 칠이 벗겨져 세월의 기억을 곱씹고 있었지만 아늑한 풍경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 청년 두 명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 낡은 교회 앞을 지나는 쿠바노.
그녀가 나처럼 ‘쿠바 ATM’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괜한 걱정이었다. 쏘이는 눈치 백단에 엄청난 근성을 가진 친구였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렀다. 제대로 된 가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부르는 만큼 값을 지불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형편없는 비주얼의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고 보니 심증은 커져만 갔다.

가게를 나와 사람들에게 이런 아이스크림을 보통 얼마 정도에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역시나 였다. 쏘이는 가게에 있던 젊은 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는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한 아주머니를 잡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마침 그 분은 카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었다. 우리는 다시 가게를 찾았다. 격양된 아주머니의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가게 종업원은 얼마의 돈을 다시 돌려주었다. 감사한 마음에 사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한사코 거절했다.

낭만 가득한 트리니다드에서 치열했던 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고대했던 저녁 시간이 되었다. 생선, 고기 등 몇 개의 메뉴 중에 랍스타를 선택했다. 쿠바에서는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랍스타를 맛볼 수 있다. 카사 아주머니는 신선한 샐러드부터 메인 요리까지 푸짐하게 차려주었다. 오랜만에 나의 촌스러운 식습관, 볶음고추장을 꺼내지 않고 밥다운 밥을 먹었다.

▲ 카사 아주머니가 차려준 저녁.

▲ 창밖을 내다보는 할아버지의 시선과 마주쳤다.

▲ 트리니다드의 과일가게.

▲ 야채 수레를 미는 쿠바노.

▲ 계단에 앉아 바라본 트리니다드의 중심 광장.

아주 사소한 조언


쿠바 음식은 대체로 간이 세다. 따라서 음식을 주문할 때 미리 소금을 조금만 넣어 달라고 말하면 적당한 간으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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