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잇는 길, 실크로드
세상을 잇는 길, 실크로드
  • 글 사진 전영광 기자
  • 승인 2014.12.18 17: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BROAD | 이니그마가 담는 세상

여행이란 길을 걷는 것이다. 굽이진 길을 돌아 가파른 산을 넘고 메마른 땅을 지난다. 그러다 가끔은 달콤한 오아시스를 만나기도 한다. 길을 걷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리의 삶 그 자체일지 모른다. 수천 년 전,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었던 용감한 선인들은 새로운 길을 열었고 그 길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길이 되었다. 바로 동서양의 교역로 실크로드다.

▲ 성문 밖에 서있는 낙타가 사막의 시작을 말해주는 듯하다.

실크로드의 시작, 장안

실크로드는 장안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시작된 실크로드는 서역이라 불리던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 인도에까지 이른다. 비단길이라 불렸지만 이 길을 통해 오간 것이 단지 비단만은 아니었다. 오이, 수박, 마늘, 참깨 등이 서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고 비단, 도자기, 화약, 제지기술 등이 서역으로 건너갔다.

실크로드를 따라온 온갖 진귀한 문물은 이곳 장안에서 다시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장안의 화제’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새로운 문물을 접하기 위해 각국의 상인과 승려, 그리고 유학생들이 장안으로 몰려들었다. 황금기를 맞은 당(唐)대 장안은 인구 100만이 넘는 세계 최대 도시였다.

실크로드를 통해 종교와 문화도 전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불교의 전래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삼장법사는 불경을 구하기 위해 실크로드를 따라 장안에서 인도까지 왕복하였다. 2만5000km를 걷는 동안 16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이천 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그곳에 잘 닦인 아스팔트가 놓이고 철도가 개설되었다. 장안에서 출발한 기차는 사흘 만에 카슈가르에 도착한다. 이마저도 얼마 뒤면 고속철도로 대체된다고 하니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다.

▲ 회족거리에서 옛 국제도시 장안의 북적거림을 느낄 수 있다.

오늘날 시안으로 불리고 있는 도시는 과거 찬란했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시를 휘감은 웅장한 장안 성벽에서부터 과거 국제도시의 위상을 느낄 수 있다. 장안 성벽은 중국의 성벽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을 통해 성벽 위에 오를 수 있다. 시원하게 뻗은 성벽 위를 걷다 보면 장안이 간직한 유구한 역사와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진다.

고루 뒤편에 자리한 회족거리에서는 옛 국제도시 장안의 북적거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회족은 중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중 하나로, 7세기경부터 아랍지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이주한 이슬람교도들이다. 동그랗고 하얀 모자를 쓴 회족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국적인 음식을 차려놓고 행인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국적인 맛과 정취를 찾아온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거리는 늦은 저녁까지 활기가 넘친다. 천 여 년 전 거리의 모습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욕관
장안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 서쪽으로 달렸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철의 실크로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기차는 생각보다 쾌적했다. 다소 무료한 시간이 문제였지만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횡단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면 불평할 것은 못되었다. 기차는 란저우(蘭州)에서 황하강을 건너 장예를 지나 가욕관에 다다른다.

▲ 하서회랑의 중간에 위치한 가욕관. 파란 하늘아래 홀로 솟은 흙빛 토성에선 비장함 마저 감돈다.

▲ 하서회랑은 서역에서 몰려오는 이민족을 막아내는 전략 요충지였다.

가욕관은 란저우에서 둔황에 이르는 좁은 협곡인 하서회랑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하서회랑은 중국 중원을 지배하는 왕조가 서역에서 몰려오는 이민족을 막아내는 전략 요충지였다. 중국대륙을 내달려온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 바로 가욕관이다. 말하자면 유목문화권과 농경문화권의 경계였던 셈이다.

현재의 가욕관은 14세기 명대에 지어진 것이다. 파란 하늘아래 홀로 솟은 흙빛 토성에선 비장함 마저 감돈다. 서문에 올라서면 눈앞으로 메마른 땅이 끝없이 펼쳐진다. 성문 밖에 서있는 낙타가 이곳에서부터 사막이 시작된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둔황
둔황은 예나 지금이나 실크로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시다. 실크로드는 죽음의 사막이라 불리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만나면서 몇 갈래의 길로 갈라지는데 둔황이 바로 그 교차로다. 서역에서 목숨을 걸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넌 상인들은 둔황에 이르러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고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만나면서 둔황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룰 수 있었다.

▲ 타클라마칸 사막의 교차로가 되는 둔황.

▲ 동서양의 문물이 교차되고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던 도시, 둔황.

둔황이 다시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1900년 막고굴이 발견되면서다. 명사산 동쪽 절벽에서 자리한 천여 개 석굴에는 고문헌과 불교벽화가 가득했다. 4세기에서부터 천 여 년 동안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각 시대에 따른 불교의 모습, 그리고 실크로드를 오간 다양한 민족의 생활상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덕분에 실크로드의 역사가 오늘날에 생생히 전해질 수 있었던 것. 그러니까 막고굴은 실크로드 최대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투루판
서쪽으로 달리던 기차가 멈춰선 곳은 신장 위구르자치구 투루판에 이르러서다. 신장 땅으로 들어서니 기존에 떠올리던 중국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민족 구성도 위구르 족이 70%에 이른다. 투루판은 위구르어로 ‘움푹 들어간 땅’을 의미한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8~105 정도인데 가장 낮은 곳은 해수면보다 낮은 -154m일 정도로 이스라엘의 사해 다음으로 낮은 지형을 나타낸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지역이기도 한데 불타오르는 듯 붉은 화염산은 섭씨 70도가 넘는다. 바로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곳이다.

▲ 투루판은 위구르 어로 ‘움푹 들어간 땅’을 의미한다.

▲ 투루판은 흉노, 위구르, 몽골 등 여러 이민족이 교차하는 문명의 교차로였다.

▲ 붉은 화염산은 섭씨 70도가 넘는다.

투루판은 기원전부터 흉노, 위구르, 몽골 등 여러 이민족이 교차하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전쟁터였다. 시내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는 고창국의 흔적인 고창고성의 폐허가 남아있다. 삼장법사가 인도로 향하던 길, 고창 왕의 간청으로 이곳에서 한 달간 설법했다고 한다. 흙먼지가 가득한 폐허에는 아직도 삼장법사가 머물던 사원의 자리가 선명히 남아있다.

카슈가르
천산산맥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난 실크로드는 카슈가르에 이른다. 카슈가르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같은 스탄 국가들이 마주한 국경의 도시다. 그리고 이번 여정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발걸음은 자연스레 카슈가르의 중심에 자리한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널찍한 시장 내에는 비단, 카펫에서부터 견과류, 향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실크로드를 따라 걸어왔기 때문일까. 어느 물건 하나 예사로 보이는 것이 없다. ‘저 물건은 어디에서 만들어져 어떤 길을 따라왔을까’ 떠올려본다. 오늘날 시장에서 각지의 다양한 물건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것. 나아가 더 편리한 세상을 살게 된 데에는 험한 길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상인들의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이 단순히 이윤추구였을지 모르지만 덕분에 문명은 교차하고 인류는 새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 카슈가르의 국제시장. 비단, 카펫에서부터 견과류, 향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건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실크로드는 거친 길이다. 북쪽으로는 천산 산맥이, 남쪽으로는 곤륜 산맥이 버티고 있고 그 사이에는 죽음의 사막이란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이 자리하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거친 길 위에서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실크로드를 걷는다는 것은 오늘날 어떤 의미일까?

오래 전 동서양을 연결하고 또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던 길. 그 흔적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중계무역으로 번성하였던 오아시스 국가들의 흔적도 폐허가 된 토성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유실된 벽화는 그 시대와 함께 잃어버린 흔적을 상상하게 한다.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 속에선 용감한 선인들의 무용담이 들려온다. 실크로드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길이다. 세상을 잇는 그 길은 또 다른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다.

▲ 카슈가르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같은 스탄 국가들이 마주한 국경의 도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