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PINIST’S BACKPACK | 을지대학교 스포츠아웃도어학과 박경이 교수
ALPINIST’S BACKPACK | 을지대학교 스포츠아웃도어학과 박경이 교수
  •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4.12.1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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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START THE MOUNTAIN SKI

겨울 아웃도어의 정수는 눈밭 위에서 펼쳐진다. 허리까지 쌓인 눈을 뚫고 정상을 향해 걷는 설 산행, 눈 덮인 슬로프를 타고 질주하는 스키와 스노보드. 눈이 주는 즐거움은 많다. 슬로프에 익숙해진 스키어는 슬로프 밖 세상이 궁금하다. 등산가는 하산할 때 빠르고 즐겁게 내려가고 싶은 생각에 스키를 떠올린다. 이 두 가지를 충족하는 지점이 산악스키다. 설 산행과 스키가 만나니 산악스키라는 강력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①레키 산악스키용 스틱 - 등반용과 다르게 바스켓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경사를 오를 때는 바스켓이 지면과 같은 각도로 젖혀진다. ②네파 재킷, 바지, 장갑 - 산악스키는 두꺼운 스키복 대신에 가볍고 얇은 등산복을 입는다. 두꺼우면 절대 안 된다는 게 박 교수의 말. 바지 밑단이나 재킷 겨드랑이 부분에 벤틸레이션 지퍼가 달린 게 특징. 장갑도 마찬가지로 두껍지 않은 것으로 착용한다. ③비콘(beacon) - 비콘은 근거리 위치를 인식하는 장치다. 동료 간에 신호를 보내 위치를 확인할 때 사용한다. ④GPS - 새하얗게 눈으로 덮인 곳에서 목적지를 찾아갈 때 꼭 필요한 기기. ⑤서바이벌 담요 - 산속에서 체온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재킷 위에 쓰거나 방석으로 쓰기도 한다. ⑥다이나피트 산악스키 전용 배낭 - 배낭 아래쪽에 플레이트를 걸 수 있게 돼 있다. 산악스키는 계속 스키를 타고 산을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빙벽이나 바위가 나오면 스키를 배낭에 걸고 오르기도 해야 하는데 그때 플레이트를 거는 배낭이 필요하다.

⑦스카르파 산악스키 부츠. ⑧스키 고글과 선글라스 - 고글은 항상 두 개를 갖고 다닌다. 눈바람이 몰아칠 때는 스키고글을 쓰고, 평소에는 설맹을 막기 위해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⑨바라크라바 겸용 모자 - 눈보라가 일면 볼살이 에이는 기분이다. 따뜻하고 안전하게 산악스키를 즐기고 싶다면 준비하자. ⑩탐침봉 - 눈 속에 파묻힌 동료를 찾을 때 사용한다. 2m가 넘는 길이. ⑪산악스키용 플레이트 - 산을 오를 때는 노르딕 스키처럼 가볍게, 내려올 때는 알파인 스키처럼 무겁게 작용한다. ⑫씰 - 눈 위에서 마찰력이 생겨 앞으로는 나아가고 뒤로는 미끄러지지 않는다.

“산악스키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아무도 못 가본 길을 가는 거예요.”

스키 타는 모습을 보고 한 선배가 산악스키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산악스키라는 종목은 알고 있었지만 아직 국내에서 생소한 분야였다. 장비를 대여할 수 있는 곳도, 함께 탈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도전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 아시안컵 산악스키대회에 출전해 3위에 입상했다.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평소 230mm의 신발을 신는데 그때는 남자 선배의 260mm 부츠를 신고 나갔죠. 복사뼈 쪽에 물집이 잡혀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했습니다.”

운이 좋았거나 재능이 아주 뛰어났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걸어온 길을 보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을지대학교 스포츠아웃도어학과 박경이 교수는 1991년 아마다블람(6856m)을 등정하며 한국 최초 여성 동계 히말라야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62m), 남극 최고봉 빈슨매시프(4897) 등반도 빠지지 않는 그녀의 이력 중 하나다. 평소 등반뿐만 아니라 스키도 즐겨 탔던 박경이 교수. 남의 부츠를 빌려 신고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아웃도어 ‘굳은 살’ 덕이다.

“산악스키는 매력이 넘쳐요. 스키는 리프트타고 올라갔다가 슬로프를 따라 내려오면 그만이에요. 익스트림한 재미가 없죠. 하지만 산악스키는 터질 듯한 심장의 울림을 느낄 수 있어요. 정설이 안 된 계곡과 나무 사이 눈밭 위를 달리다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슬로프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공간을 백컨츄리라고 한다. 슬로프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상급 스키어가 되면 백컨츄리로 나가고 싶어 하는 열망이 강해진다고. “산악스키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거든요. 아무도 못 가본 길을 가는 거에요.”

▲ ⓒ박경이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는 한라산과 울릉도가 산악스키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그래도 알프스나 일본과 비교하면 여건이 그리 잘 갖춰진 건 아니다.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곳이 많지 않고 산에 빽빽한 나무가 가득 차 있기 때문. “어쩔 수 없이 겨울에는 임도에서 산악스키를 연습해요. 하지만 경사가 없어서 제대로 된 산악스키를 즐기기 어렵죠.”

국내도 산악스키에 대한 관심이 의외로 많다. 산악스키 장비만 2000대 가량 팔렸다고. 하지만 박경이 교수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다보니 지금은 어디선가 잠자고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국내에서 산악스키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인프라가 구축돼야 해요. 청태산에 산악스키 코스를 개척하러 간 때였어요. 함께 갔던 일행 중 한 명이 넘어져 십자인대가 파열됐지만 구조할 인력이나 장비가 없어 가까스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장비 보관 장소가 마련되고, 구조 시스템까지 갖춰져야 산악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떳떳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습니다.”

▲ ⓒ박경이

여건은 좋지 않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아시안컵 산악스키대회에 한·중·일 세 국가가 참여하곤 했는데, 올해는 이란과 러시아에서도 참여해 규모가 커졌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만반의 준비도 갖췄다. 네파의 아웃도어 스쿨에서 산악스키를 배운 일반 참가자가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국내 단 두 명뿐인 국제 산악스키 심판 중 한 명이 박경이 교수라는 것. “이전에는 국내에서 대회가 열릴 때 프랑스 사람을 모셔 와야 했어요. 지금은 경비도 줄고 간섭을 안 받아서 대회를 진행하기가 수월하죠. 제가 하면 되니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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