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정신 차려보니 쿠바 만인의 ‘호갱’이 되었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쿠바 만인의 ‘호갱’이 되었다
  • 정진하 기자
  • 승인 2014.12.12 15: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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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기자의 쿠바 비아헤 ④

말 없는 곳에 머물렀던 시간이었다. ‘노 아블로 에스파뇰’. 저는 스페인어를 말할 수 없어요라는 뜻이다. 무려 1년 동안이나 교양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 문장을 가장 야무지게 사용했다. 체화되지 않는 타국의 언어가 몸 어딘가에 얹혔나보다. 자꾸 그 시간을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다.

▲ 양산을 쓰고 어딘가를 바라보는 쿠바노.

이름 모를 마을들마다 버스가 멈추고 사람들이 내렸다. 옆자리의 아저씨도 내렸다. 불안한 마음에 두리번거렸지만 사람들은 평온한 표정이다. 역시 나만 초초하다. 콩닥거리는 마음을 안고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지나치는 풍경들을 보며 어디든 내려도 괜찮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냘레스에 도착했다.

창문 밖으로 제일 먼저 보이는 풍경은 빼곡하게 모여든 카사 주인들이다. 버스 도착 시간이 되면 자신의 카사를 소개하는 푯말을 들고 나와 관광객들을 맞는다. 때문에 숙소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나는 가이드북에 소개된 카사에 가려고 책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자신이 아는 곳이라며 데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북적거리는 무리들 속을 빠져나와 걸었다. 그녀는 이내 이곳은 인기가 많아 이미 사람이 꽉 찼다며 말을 바꿨다. 정신을 차려보니 쿠바 만인의 ‘호갱’이 된 내가 그녀의 차를 타고 동네를 누비고 있었다.

▲ 2층 카사 앞에 핀 장미 넝쿨.

▲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연신 가이드 프로그램을 소개하던 아주머니는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테라스가 있는 숙소를 원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데려간 간 곳의 깡마른 카사 아주머니는 고민 중인 나에게 “이건 네 휴가야. 그러니까 네 마음대로 하면 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마음을 정했다. 1층은 주인집과 붙어있지만 큰 방과 침대 두 개가 놓여있어 쾌적했다. 하지만 나는 캐리어를 펼치기도 난감한 작은 2층 독채를 쓰기로 했다. 문 앞에는 시리게 빛나는 장미 넝쿨이 피어있었다.

쨍쨍한 햇빛에 낮잠을 자고 천천히 산책하기로 했다. 쿠바 시골마을의 풍경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둑한 초저녁이 되면 집 앞에 나와 비질을 하고 연인들은 손을 잡고 달빛 속을 걸었다. 그런 풍경을 지켜보는데 한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거의 모든 쿠바노들은 한국인이라 말하면 제일 처음 “북쪽? 남쪽?”이라고 묻는다. 대답과 동시에 아저씨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그리고는 북한 사람들이 산다고 한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집 주위를 서성여 봤지만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 집집마다 놓여있는 흔들의자.

▲ 푸른 하늘과 맞닿은 빨래들이 펄럭인다.

▲ 담배 농장.
다음날 아침,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남은 파인애플 주스는 텀블러에 담았다.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유명 관광지들을 순회하는 셔틀 버스가 있지만 그곳들을 전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망대를 선택했다.

마을 외곽에 있어 걸어서는 1시간 남짓 걸린다. 쭉 뻗은 도로 옆으로는 인가와 담배 농장들이 있었다. 다른 곳으로 접어들까 계속 길을 물으며 전망대에 도착했다. 탁 트인 풍광에 원시시대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교과서에서 본 화석 속 고대 동물들이 어디에선가 관광객들을 주시하고 있을 것 같았다.

비냘레스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실 넓은 초록의 풍광이 아니다. 그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집집마다 놓여있는 의자 두 개다. 비냘레스의 모든 집 앞에는 흔들의자가 놓여있다.

그들은 그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지나는 바람을 가만히 응시할 것이다. 그들이 바람을, 시간을, 계절을 응시하는 방법을 닮고 싶었다. 이제, 그녀를 만나러 간다. 

▲ 쭉 뻗은 대로를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 소를 타고 가는 아빠와 아들.

▲ 해가 지는 고즈넉한 비냘레스 저녁 풍경.

아주 사소한 조언

쿠바도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생활하기 때문에 실내용 슬리퍼를 가져가면 유용하다.

화장실에도 슬리퍼를 놓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젖어도 무방한 재질의 신발을 챙겨 가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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