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방어기지인 돈대와 보를 둘러보며 역사를 흩어본다
서울-->강화대교-->갑곶돈대-->선원사지-->광성보-->덕진진-->함허동천야영장(1박)-->전등사-->동막해변-->서울
▲ 비가 오는 가운데 거실형 텐트에 화로를 피우고 고기를 구웠다. 다정한 연인의 모습 속에 밤이 포근하기만 하다. |
의류협찬 트렉스타 | 모델 협조 나로엔터테인먼트
하루 종일 맑던 날씨는 김포를 지나 강화도로 접근하자 꾸물꾸물 변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동안 이곳저곳을 취재하며 너무 좋은 날씨만을 접했던가 보다. 강화대교를 넘어 첫 번째 목적지인 갑곶돈대로 향했다. 캠핑에 참가한 윤선희 씨와 정에녹 씨는 추운 날씨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기 시작한다.
갑곶돈대는 사실 고려 고종부터 원종 때까지 몽고와 격전을 치룰 때의 외성으로 조선 숙종 때에 축조됐으며 한때는 프랑스군이 상륙해 진을 치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돈대라는 지명이 말하듯이 갑곶돈대는 바다에서 침투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포나 총을 설치한 곳이다. 조선시대 해안 경비 시스템은 돈대와 보, 진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중 가장 규모가 작은 것이 돈대며 여러 개의 돈대를 보나 진이 통제하고 있었다.
▲ 광성보의 성문이라 할 수 있는 안회루. 성문의 천정에 살아있는 듯한 용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
갑곶돈대의 몽고 항쟁 역사는 인근에 자리한 선원사지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 해인사에 있는 고려팔만대장경 목판을 만들어 보관했던 선원사지는 지금은 옛 흔적만 남았지만 고려 때에는 송광사와 더불어 가장 큰 선사였다.
윤선희 씨와 정에녹 씨가 연꽃무늬의 탑을 따라 탑돌이를 하듯 한 바퀴 돌기 시작한다. 선원사 지를 대표하는 풍경인 연꽃 탑과 연꽃 문양은 흙탕물 속에서도 한 점 더럽힘이 없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연꽃의 모습을 통해 불교의 교리를 깨닫으라는 의미다.
선원사에는 매년 8월 이면 사찰 앞 논두렁을 이용해 연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문화재 복원 공사로 혼잡한 선원사를 나와 강화도의 보 중에서 가장 복원이 잘됐다고 하는 광성보로 향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의 격전지인 광성보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59명의 군사가 순국한 곳이기도 하다. 주차장에서 성문의 안회루로 들어서니 성문 천정의 용 그림이 눈길을 끈다.
벽사진경의 의미겠지만 이곳의 지키던 순국선열들의 마음가짐을 대변하는 상상 속의 동물이 아닐까 싶다. 시대의 격변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했으니 말이다.
역사적인 사건의 장소라는 이야기에 선희 씨와 에녹 씨는 광성보의 유적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대충 흩어보던 모습에서 점점 진지한 눈길로 대포와 포, 돈대 안을 살피기 시작한다. 강화도 해안을 수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와 돈대는 상하좌우로 방향이 나 있어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쉽고 한쪽 방향으로 집중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진지의 중앙에 놓인 포와 무기들을 살펴본 후, 안회루 옆으로 난 산책로를 올랐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숲 사이로 이어진 탐방로는 어재연 장군과 동생의 업적을 기린 쌍충비와 비각으로 이어진다. 비각과 59명의 혼을 모신 신미순의총을 둘러본 후, 돈대를 따라 내려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 덕진진의 성곽. 강화도는 쇄국정책으로 인해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등의 전투를 벌였던 역사의 땅이다. |
이제는 그만 캠프장으로 가 자리를 잡으라는 하늘의 계시일까?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굵어진다. 덕진진에서 마니산 아래 함허동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범 운영 중인 함허동천야영장에 이르자 빗방울은 폭우로 변하기 시작한다. 늦가을 비바람은 가뜩이나 몇 잎 남아있지 않던 나무의 나뭇잎을 모두 떨어뜨려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로 만들어 버렸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서서히 어둠이 짙어지면서 겨울 추위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 광성보에서 돈대로 이어진 산책로. 어재현 장군과 그의 동생의 업적을 기린 쌍충비 등을 만날 수 있다. |
텐트 내부에 이너텐트를 치고 환기창을 연 후, 화로와 테이블을 펼친 다음 숯을 올리고 불을 붙였다. 숯의 열기 탓에 텐트 안은 밤의 냉기를 물리칠 만큼 이내 후덥지근해졌다. 굵은 버드나무 아래 자리한 텐트가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데는 화로의 불빛과 더불어 친근한 사람들 간의 따듯한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화롯불 위에 얹은 굵은 돼지 목살이 지글지글 익기 시작한다. 늘 먹는 고기지만, 캠프장에서 먹는 고기가 맛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집에서 익힌 고기는 대부분이 가스 불에 프라이팬을 사용하지만 캠프장의 경우 장작이나 숯을 사용한다. 숯은 지난 수천 년간 우리의 선조들이 사용하던 연료다. 숯불에 구운 고기가 맛있는 것은 가스 불은 대류방식, 숯불은 복사방식으로 열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텐트 안에서 불을 피운다는 것에 놀라 화롯불의 존재에 신비감을 느꼈던 윤선희 씨가 잘 익은 목살의 맛을 보더니 화롯불의 칭찬이 계속된다.
잘 익은 고기와 국 하나로 저녁을 해결하고 나니 비에 젖어 떤 탓인지 피곤이 몰려온다. 불은 여전히 밤을 쫓는 유일한 존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인위적인 불 이외에도 사람의 마음을 비춰주는 밝은 불이 존재한다.
가족이란 작은 등불은 모든 사람들의 기본이며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가장 따뜻하게 감싸줄 등불이다.
하룻밤의 캠핑이지만 사람들은 자연의 화음 속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교향곡과 같은 계곡의 물소리와 기병대 서곡 같은 빗소리, 그리고 토닥토닥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의 손길 같은 눈 내리는 소리까지 이 모든 소리들이 진정 세상의 소리며 생명의 소리들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룻밤을 보낸다.
▲ 윤선희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뮤직컬과 연극, 영화배우로 활동 중이다. 중요 작품으로는 영화 ‘이웃집 좀비’, ‘싸움’ 외에 뮤직컬 ‘웰컴 투 마이 월드’, ‘한 여름밤의 꿈’, ‘남한산성’ 등이 있다. |
정족산성의 작은 관문을 지나자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을 타고 멋진 비행을 한다. 욕심을 버린 탓일까? 가볍게 날리는 낙엽이 새삼 부럽다. 전등사 계단을 올라 대웅전에 서자, 낮은 산자락 안에 안긴 대웅전이 이채롭다. 전설로 전해지는 도편수와 여인의 이야기를 따라 대웅전 처마를 받치고 있는 나체상을 찾았다.
연인이라기보다 작은 원숭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상당히 이국적인 모습이다. 대웅전과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범종을 둘러보고 어제 일몰을 감상하고자 했던 동막해변으로 나섰다.
해변은 여름철과 달리 갯벌로 나가는 사람만 없을 뿐 겨울 바다를 즐기려는 연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이들에게 겨울 찬바람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함께 한다는 것이 즐거울 뿐, 캠퍼 역시 함께하는 가족이 있어야 어디를 가더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해변 뒤로 아이들의 해맑은 눈동자가 떠오른다.
함허동천시범야영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