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노스페이스 텐트(하)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 노스페이스 텐트(하)
  • 글 사진 조민석 기자
  • 승인 2014.11.19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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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사랑한다는 것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인생역전에 성공한 만능인과 진보적인 자본가,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리얼리티 산꾼. 이 세 남자가 만나서 아웃도어 업계에 새로운 꽃을 피웠으니, 이제 그 꽃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죠.

▲ 1980년대 중반 토크쇼에서 디자인에 대한 철학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버크민스터 풀러의 모습입니다. 이후 한동안 종적을 감췄었지요.

버크민스터, 자연으로 회귀하다

버크민스터 풀러가 핵심 인사로 포함되어 있던 노스페이스의 텐트 개발진이 이른바 1세대 텐트 라인업을 완성시킨 것은 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라인업’이란 오늘날처럼 소비자의 다양한 필요에 맞게 여러 모델을 개발해 그룹화했다는 뜻이 아니고 지오데식 돔 구조를 활용한 파생 텐트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지오데식 돔 라인업들은 그 자체로서 지니는 불완전함 때문에 유저들로부터 각광을 받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상업성과 예술성의 결합에 관한 것인데, 당시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텐트메이커 모스가 아웃도어 시장에 일으켰던 신드롬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신드롬이 상업성을 기반으로 하여 구조적 예술성을 가미한 텐트에 의해 일어난 것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구조적 강성이나 완성도, 성능 역시 여타의 경쟁사에 열세인 것이 없었으니, 그것이 소비자들이 노스페이스의 지오데식 돔 스타일 텐트에 열광할 명분을 만든 셈이지요.

▲ 1990년대 노스페이스의 CEO 직을 사임하고 전 세계를 돌며 경영 분야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케네스 합 클롭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예견되었던 시나리오 하나가 결국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노스페이스의 지오데식 돔 텐트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버크민스터 풀러의 건강 악화설이 나돌았습니다.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행보는 1983년 4월 3일에 있었던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였는데, 그 뒤로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다는 것입니다. 그후 반 년이 채 되지 않아 매스컴에서 제기한 건강 악화설은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1983년 7월 1일,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통하던 버크민스터 풀러는 60여 년 전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던 집 안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 비보는 여러 외신들을 통해 전 세계로 전달되었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그의 죽음을 ‘자연으로의 완전한 회귀’라고 묘사하여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지요.

▲ 뿌말린 공원의 진출입로입니다. 자연을 보존하는 기조의 범위 안에서만 도로의 개발을 허용한다고 했던 그 답게 도로 또한 비포장으로 건설되어 있습니다.

높이 평가된 그의 업적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넘어서 십수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미술 등의 여러 분야에서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음과 동시에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때는 그가 생전에 디자인했던 지오데식 돔과 그의 얼굴을 합성한 기념우표까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그가 사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지요.

3인에 의해 시작된 일련의 광풍은 버크민스터 풀러가 세상을 떠나면서 주춤하는 듯했습니다. 그 사이 더글라스 톰킨스는 미국 전역의 명산을 떠돌며 노스페이스 사의 창업주가 되기 이전의 삶을 즐겼고, 그러던 중 의류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를 설립했습니다. 이 브랜드 역시 환경보호에 대한 현실적인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오늘날까지 노스페이스와는 다른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며 수많은 마니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요.

자연을 사랑하다
일찌감치 노스페이스를 떠난 그였지만, 그 이후 전혀 연관이 없을 것처럼만 보였던 케네스 합 클롭과 더글라스 톰킨스는 버크민스터 풀러가 세상을 떠난 지 6년 만에 뜻을 같이 하게 됩니다. 또 다른 아웃도어 메이커를 차렸냐고요? 아닙니다. 그 대신 각자 몸담고 있던 회사를 떠났습니다.

▲ 80년대 초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재현에 들어간 지오데식 돔 구조의 모습입니다. 원형과 교차점은 서로 다르지만 스킨과 폴로 온전한 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유저들에게는 꽤나 센세이션이 되었다는군요.

두 사람이 뜻을 같이 한 희대의 해프닝은 더글라스 톰킨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해프닝이 일어나기 1년 전, 그는 당시 아내였던 수지 톰킨스와 파경을 맞이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경영효율성과 환경친화성이라는 두 개의 화두를 두고 설전을 벌인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이후 1989년이 되어서 그는 당시 본인이 가지고 있던, 파타고니아와 비슷한 시기에 본인이 설립한 2개의 의류 브랜드 지분을 모두 매각해 버립니다. 예상대로 그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힌 지분 매각 사유는 환경 파괴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고 하죠.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자연을 사랑하는 리얼리티 산꾼이 바로 더글라스 톰킨스입니다.

▲ 기술력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사례 중 하나인 노스페이스 아포지 텐트의 모습입니다. 토드텍스 계열의 원단으로 제작된 싱글월 텐트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때까지 노스페이스의 경영과 마케팅을 주도하던 실세인 케네스 합 클롭 역시 같은 이유로 노스페이스에서 완전히 물러났다는 것입니다. 이후 케네스 합 클롭은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이 일생동안 몸담았던 경영이라는 분야에 대해 열띤 강의를 펼치는 것으로 그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뿌말린 공원의 탄생
참, 케네스 합 클롭의 결말보다 더 흥미로운 결말이 바로 더글라스 톰킨스의 결말입니다. 케네스 합 클롭이 경영 실무에서 손을 떼는 것에 일조한, 환경에 대한 진심어린 그의 걱정은 당시 파타고니아 사의 공동창업주였던 크리스틴 톰킨스와의 재혼을 성사시켰고, 마침내 그녀와 함께 본인을 그의 활동 무대였던 북미를 넘어 남미로 옮겨놓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생동안 벌어 온 돈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칠레 국토의 중남부지방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32만 5천 헥타르에 달하는 면적의 뿌말린 공원(Pumalin park)을 조성했지요. 바로 생태학자가 된 것입니다.

▲ 뿌말린 공원 내에 있는 자연환경의 모습입니다. 이 정경 역시 더글라스 톰킨스의 고집이 만들어낸 작품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생태학자 더글라스 톰킨스가 지금까지 고수해 오고 있는 자연 보호에 대한 기조는 생각 이상으로 단순무식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그의 기조가 자연 보호라는 키워드를 고려하였을 때에는 가장 이상적인 방도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게 뭐냐구요? 자신이 산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해당 지역 외로 쫓아내어 그 지역을 본래 있던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가 생태계의 보고로 남을 수 있는 이유와도 같습니다.

물론, 그가 고수하는 기조에도 맹점은 있습니다. 단기적인 시선에서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나아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실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에 있겠지요. 가장 대표적인 예로, 7년 전 뿌말린 공원 재단 측과 현지 주민들을 포함한 정부 사이에서 뿌말린 공원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두고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가뜩이나 폭이 좁은 칠레의 국토 중앙을 떡하니 막고 있는 부지의 위치 특성상 공원 조성할 때 도로 건설에 협조한다는 조건을 붙였으니 당연히 후자의 의견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지만, 더글라스 톰킨스는 자신의 의견을 고수합니다.

때문에 공원의 가장자리를 구불구불하게 관통하는 다소 비효율적인 고속도로가 탄생했지요. 더 중요한 사실은, 뿌말린 공원 외에도 아르헨티나 북동부에 있는 이베라 습지를 공원화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두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그가 지대 매입에 투자한 돈을 합치면 3억 달러를 넘는다고 하니, 그의 자연 사랑이 얼마나 애틋한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 위와 유사한 사례로 들 수 있는 실리콘 원단 버전의 히말라얀 35 텐트입니다. 당시 실리콘 코팅 원단을 사용한 텐트는 많았지만 노스페이스는 뛰어난 자본력으로 기술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렸지요.

노스페이스라는 한 아웃도어 메이커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그들이 지오데식 돔 라인업 이후에 만들어낸 텐트들의 경향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겠네요. 텐트 라인업을 개발해 나가는 방향성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케네스 합 클롭의 합리주의적인 사고에 있었고, 합리적인 그 사고가 낳은 결과물은 디자인뿐 아니라 기술력의 차원에서도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실리콘 코팅 원단을 사용한 텐트가 한참 유행을 탈 때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자본력을 투입하여 당대의 시장에 나와 있던 동종의 기성품보다 한층 더 높은 수준의 실리콘 원단을 사용한 텐트를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지요.

물론 이 방식은 뚜렷한 대표성을 지니고 있는 텐트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반면 시장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탄력성은 뛰어났습니다. 우세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다른 소형 텐트메이커들과는 달리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전략을 펼쳐 노스페이스를 굳건한 텐트메이커로 만들어나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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