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입고 여행하면 행복해요”
“한복입고 여행하면 행복해요”
  • 임효진 기자 | 사진제공 권미루
  • 승인 2014.10.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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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여행가 권미루

명절이나 생일이 다가오면 주위의 공기가 바뀌는 거 같았다. 음식 장만하느라 집안은 즐거운 소란으로 가득했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담장을 타고 넘어오면 가슴이 뛰었다. 분주한 어른들 사이를 헤치고 그녀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장롱 한 편에 고이 잠자고 있는 한복을 꺼내 들었다. 그녀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마법의 옷이었다.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 긴 커튼을 몸에 두르고 드레스 흉내를 내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그러다 생일이나 명절이 다가오면 한복을 꺼내 입었죠. 특별한 날 입는 한복은 저를 더 예쁘고 돋보이게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녀는 어릴 때부터 괜스레 한복이 좋았다. 우아한 곡선을 띠면서 발끝까지 내려오는 빨강 치마에 알록달록한 노랑 색동저고리 차려입고 댕기 머리까지 땋으면 동화 속 공주가 부럽지 않았다. 어릴 때는 공주가 돼서 왕자님과 아름다운 사랑도 하고, 왕자가 돼서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는 꿈을 꾼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복을 입고 군복도 입고 양복을 입는다. 그렇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는 삶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 기억을 불러낸 것은 우연히 참석한 한복 행사였다. “한복을 즐겨 입는 마니아 카페가 있어요. 한복을 입고 모여서 게임도 하고 궁궐도 방문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는 거죠. 그 행사에 저마다 아름답게 한복을 차려입고 오신 분들을 봤어요. 한복이 얼마나 아름다운 옷인지 여실히 느꼈지요.”

그때부터 그녀도 한복 마니아의 길로 들어섰다. 종로 한복점을 돌아다니며 한복을 사 모으고, 얼마 뒤에는 직접 디자인을 해 만들어 입기도 했다. “살면서 색상이 이렇게 화려하고 예쁜 옷을 입을 일이 많지 않아요. 하지만 한복을 입으면 특별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자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비쳐지는 일, 한복을 입으면 어렵지 않답니다.”

예쁜 한복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가고 싶은 곳도 많아졌다. 그녀는 직접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예쁜 옷을 사고 가방을 꾸리면 마음이 설레죠. 여행 가서는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싶으니까요. 저한테 가장 예쁜 옷은 한복이었어요. 그래서 한복을 입고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여행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제주도를 좋아해서 4년 내내 기회만 생기면 제주도만 가기도 했다. 한복을 입은 뒤로는 전통적인 고전미가 남아있는 곳에 가고 싶어졌다. 전주는 물론이고 아산 외암마을 등 한복을 입고 가도 어색하지 않은 장소를 주로 찾아다녔다. 얼마 전에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도 한복을 입고 다녀왔다. 한복을 본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국인 중에는 간혹 이상하게 보는 분이 있어요. 외국인은 오히려 멋있다고 해주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하며 좋아합니다. 처음에는 조금 놀라는 거 같긴 해요.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 가면 순간 정적이 감돌아요.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의 행렬이 좌우로 갈라지기도 하고요. (웃음) 그래도 ‘어디서 왔느냐, 한복을 왜 입었느냐’고 묻지 않아요. 멋있어하고 부러워하는 눈치에요.”

아무리 한복이 좋아도 긴 치마와 밑이 짧은 저고리, 거기에 고무신까지, 불편할 법도 한데…. “불편하지 않아요. 속치마가 종류가 많은데 치마 모양을 부풀려주는 힘 있는 속치마를 입으면 오히려 움직임이 자유로워 더 편해요. 화학 섬유나 면, 리넨으로 만들어진 걸 주로 입다 보니 더러워져도 물빨래하면 되니 관리도 편해요. 스페인에 갈 때는 면으로 만든 한복을 입고 갔어요. 일반 옷처럼 편안했어요.”

블로그에 올린 여행 사진을 보고 한복을 사고 싶다고 문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은 한복을 파는 사업을 할 계획이 없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은 순수하게 좋아해야 계속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복을 돈벌이로 생각하면 좋아하지 못할 거 같아요. 지금은 스스로 디자인한 한복을 입고 여행 다니는 게 더 좋아요.”

미루 씨가 특별히 사명감이 있거나 애국심으로 한복을 입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복을 입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진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낀다고나 할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여행 다녀온 사진을 보니 한복은 도시의 역사가 오래된 곳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동유럽도 고전적인 유럽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곳이니 꼭 한 번 가보려고요. 국내에서는 한옥마을 순회여행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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