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와 불에 혼을 담아 두드리고 담금질하고
쇠와 불에 혼을 담아 두드리고 담금질하고
  • 황제현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10.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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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소 | 증평대장간

가을이 시작되면 캠핑장에서의 불놀이도 본격화된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을 멍하니 응시하는 일명 ‘불멍’을 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화로대와 바싹 마른 장작이 필요하다. 숲이 있는 캠핑장에서는 현장에서 바로 장작을 만들 수도 있는데 이때 필요한 장비가 바로 도끼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장을 데워야 하는 시골의 가정에서는 도끼가 필수품이지만 캠핑장에서는 날이 쌀쌀해지는 가을이 되어서야 도끼의 존재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40년 동안 전통 방식 그대로를 고수해오고 있는 증평대장간은 캠핑을 즐기는 이들에게 입소문이 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2종의 도끼 가운데 간단한 벌목이나 장작을 쪼갤 때 유용한 손도끼가 캠핑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닌, 장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거칠고 묵직한 이 손도끼는 강렬한 첫인상만큼이나 놀라운 성능으로 핸드메이드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어떤 이는 한 번 손에 익히면 다른 손도끼는 ‘찍는 맛이 안 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글거리는 화덕 안에서 붉게 충혈된 쇳덩이가 장인의 망치질과 담금질을 견뎌내고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내용이다.

PROCESS
How to Make a Hatchet


1. 통쇠를 준비한다. 증평대장간에서 사용하고 있는 통쇠는 쉽게 녹슬지 않는 특성이 있다.“옛날에는 고물상을 뒤져서 쇠를 구하곤 했지. 이제는 워낙 다양한 종류의 철강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어서 원자재 구하기는 쉬워졌어.”

2. 약 1,500~1,600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화덕에 통쇠를 넣고 달군다. “괴탄도 예전에는 문경 지방에서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중국과 베트남에서 수입하고 있지. 매장량이 줄어들어 탄광촌도 다 폐광하고 이제는 가격이 많이 비싸졌어.”

3. 충분히 달궈진 통쇠를 망치로 두드린다. 온도계도 없는데 오로지 ‘감’으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 온도 조절에 실패할 경우 망치질 한 번에 날이 끊어져버리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강약 조절이야. 서예로 치자면 붓의 놀림을 말하지. 당대 최고의 서예가들이 각자의 서체가 있듯이, 대장장이들도 각자의 기술이 있어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거야.”

4. 날을 만들다가 식은 쇠를 다시 달군 후 손잡이가 들어갈 부분의 넓이를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두드린다.

5. 담금질을 통해 도끼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최용진 대표는 망치질과 담금질을 반복하면서 도끼날의 온도 변화와 쇠의 강도 변화를 예리하게 관찰한다. “대장장이는 열처리를 잘 해야 해. 모든 과정에 열처리 노하우가 담겨 있지.”

6. 충분히 모양이 나오면 그라인더에 날을 간다. “옛날에는 그라인더 대신 줄이나 돌에 갈았어. 이제는 시간 단축을 위해 그라인더를 사용하는데 가끔은 옛날 방식 그대로 날을 갈기도 해.”

 7-8. 나무 손잡이를 고정하면 캠핑용 손도끼가 완성된다.

INTERVIEW
증평대장간 최용진 대표

대장간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언제부터 대장간을 운영하기 시작했나?
50년 전 처음 대장장이의 길을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삶을 살았는데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닥치는 대로 일감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친척의 대장간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밥은 굶지 않겠다 싶어 계속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10년 정도 배우고 자립해서 증평대장간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40년 정도 됐다.

내부를 둘러보니 흔치 않은 물건들도 보인다.
전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 영화·드라마 업계에서 일하시는데 촬영용으로 주문하신 물건들이다. 과거 장군들이 사용했던 칼부터 엿장수 가위까지 못 만드는 게 없다 보니 갖가지 물건들을 요청한다. 다른 곳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들도 모두 여기로 몰려오기 때문에 한창 바쁠 때는 24시간이 모자라다.

입구에 붙어 있는 ‘노동부가 지정한 대장간 기능전승자’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초로 1995년도에 대장장이로서 전통 기능 전승자로 지정됐다(노동부 지정 제1995-05호 대장간, 증평군 향토유적 제9호). 기능장으로 인정받은 후부터는 일감도 늘어나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물건을 사가면서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거나 일부러 견학을 오는 경우도 있다. 지치지 않고 전통을 고수해오면서 얻은 명예여서 더욱 뜻 깊다.

주문 제작 요청이 많은 모양이다. 캠핑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을 의뢰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어떤 물건들을 주로 만드는가?
캠핑용으로는 손도끼, 망치, 정글도, 낫, 칼 등을 많이 사가고 그중 손도끼가 제일 인기다. 정글도는 3만원, 큰 도끼는 2만원, 손도끼는 1만원 정도로 가격도 저렴해 선물용으로 몇 개씩 구입해 가기도 한다. 예전에는 팩을 주문하는 캠퍼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구성품으로 팩이 많이 들어 있어서 주문이 줄었다. 그래도 공장에서 찍어내는 팩과는 성능의 차이가 있어서 꾸준히 찾는 분들이 계신다. 쇠를 깎아서 만든 기계식보다 수백, 수천 번 두드려서 조직을 단단하게 만든 제품이 훨씬 튼튼하다는 것을 사용해본 분들은 아신다. 단가는 비싸지만 품질로 승부하고 있다.

캠핑용 손도끼 관리법이나 취급 주의사항이 궁금하다.
캠핑용 도끼는 일반 도끼와 다르게 크기도 작고 무게가 가볍다. 또한 사계절 내내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보관할 때도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도끼의 날은 재질의 특성상 부식되기 쉽기 때문에 보관할 때에는 날에 기름칠을 하고 신문지 등에 싸서 습기가 없도록 신경 써야 한다. 손잡이 부분은 보통 나무 재질로 되어 있어 습도에 민감하다. 건조해지는 가을이 오면 나무가 수축해 도끼날과의 이음새 부분이 헐거워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안전을 위해 손잡이를 교체하는 것이 좋다. 만약 무뎌진 날을 갈고 싶다면 찾아오라. 2천원이면 된다.

장인으로서 노하우 하나를 공개한다면?
어리둥절한 말일지 모르지만 쇠의 마음, 쇠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읽듯 쇠의 마음도 읽어야 한다. 열처리를 얼마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노하우지만 기술적인 것을 떠나서 혼을 담아 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력도 대장장이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얼마 전 90세가 될 때까지 대장간에서 일을 했다는 대장장이가 계셨는데 그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체력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나이 67세지만 아직도 일터에 나오는 것이 즐겁고 1년에 보름 정도는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유럽은 거의 다 가봤을 정도다. 인터넷도 좋아해서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으로 외국 친구들과 자주 교류하기도 한다. 여기 있는 장비들을 모두 가져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 아직 여건이 되지 않아 해외에서 작업해본 적은 없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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