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램프처럼 외길 비추며 걸어온 소신있는 삶
헤드램프처럼 외길 비추며 걸어온 소신있는 삶
  • 김정화 기자 | 글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4.10.16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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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토크 | 안나푸르나 전병구 회장

“돈을 많이 못 번 건 억울하지 않은데, 산에 못 간 건 억울합니다.”
안나푸르나 전병구 회장은 국내에 등산용품을 수입·전개하기 시작한 1세대 산악인이다. 1983년도에 개인 사업자로 프랑스 브랜드 페츨을 수입하기 시작해 1993년도에는 법인으로 전환했다. 지금은 웨스트콤, 마인들, 옵티머스, 그랑저, 줄보, 에버하드괴벨 등 총 12개 명품 아웃도어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 공급한다.

▲ 손때 묻은 그의 장비가 산악인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을 대변한다.

“처음에는 좋은 장비를 보고, 저도 품질이 뛰어난 장비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제작은 못 했지만 자연스럽게 최고의 상품을 수입하게 되더군요. 지금도 많은 제품을 수입할 욕심은 없습니다.”

전 회장의 원칙은 명확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가라면 수입하는 물건의 기준이 유행을 타서 ‘대박’을 칠 수 있거나, 소위 ‘돈이 될 것’ 같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전 회장의 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품질이다. 그가 30여 년 이상 사업을 하면서 산악인 사이에서 신뢰를 잃지 않고, 믿음직한 큰 형님으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등산로에 물이 고이면 밟고 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건 반칙이에요. 사업도 똑같아요. 하나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욕심이 난다고 남의 것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른 데서 잘하고 있으면 밀어줘야죠. 캠핑이 잘된다고 무작정 캠핑 장비를 수입해서 팔고 싶지 않아요.”

▲ 안나푸르나 전병구 회장.
편법을 쓰지 않고 정석을 걷는 그의 사업 철학은 산악인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업체와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번 전개하기 시작한 브랜드를 수십 년째 이어가고 있는 비결이다. “사업은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신용으로 하는 겁니다. 약속을 어기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어려울 땐 서로 봐주기도 하면서요. 그런 정이 있어야지 계속 거래할 수 있어요. 정이 없었으면 벌써 뺏겼을 거예요.”

그는 올해 초 기존에 수입하던 브랜드 <베알>을 새로 사업을 시작한 전 직원에게 넘겨줬다. 페츨에서 로프를 생산하게 되면서 품목이 겹친 게 계기가 됐다. 베알은 다이내믹 로프를 최초로 개발하고, 현재 전 세계 로프 시장 점유율 1위인 브랜드다. “욕심낼 필요 없어요. 자기 몫이 있는 거고, 어떻게 성장시키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그가 전개하는 물품만 보아도 그의 철학이 빈 수레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안나푸르나에서 전개하는 대표적인 브랜드 페츨은 설립자 페르낭 페츨이 동굴 탐험에 필요한 장비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등산용 헤드램프를 최초로 제작한데 이어 헬멧과 하네스, 확보물, 하강기 등 클라이밍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페츨 제품은 안정성과 견고함을 인정받아 산업영역에서도 널리 사용하고 있다.

클라이밍 장비가 산업 영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보니 그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산업 영역으로도 확장됐다. 올해 초에는 고소작업과 구조 전문 기술을 교육하는 페츨트레이닝센터(APTC)를 설립했다. “산업현장에서 사고사가 많습니다. 모두 어느 한 집의 가장인 사람들이죠. 이들은 자신을 위해 산업 현장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는 겁니다. 그런 가장이 사망하면 여러 명이 힘들어져요. 특히 가족이 그렇죠.”

▲ 카리모어의 초창기 프레임 배낭.
산업 현장에서 끊이지 않는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는 매우 마음이 아팠다. 모두 안전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한 사고였다. 기본적인 훈련만 되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트레이닝 센터를 건립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원들에게 교육을 받도록 했다.

“산업장비 취급을 10년째 해왔는데 트레이닝 센터를 열고나니 오히려 더 관심을 많이 갖는 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작업자가 본인의 안전을 위해 제품을 직접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페츨트레이닝센터를 운영하다보니 달라진 안전에 대한 인식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사실 페츨트레이닝센터는 큰 수익이 되는 사업이 아니에요. 사회 환원의 성격이 강하죠. 해외에는 이런 교육기관이 있는데 국내엔 대표적인 기관이 없습니다. 페츨트레이닝센터는 국내 전문가가 자체 훈련을 하고 자격증을 발급합니다. 우리가 발급하는 수료증이 해외에서는 인정받는데 국내에선 아직 효력이 없습니다. 안전공단과 협의해 국내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공인 자격증을 만들 계획입니다.”

안주하지 않고 계속 한 발씩 내딛는 등산과 닮은 그의 인생. 지칠 줄 모르는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뭘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지 과거의 영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는 게 의미가 있어요. 계속 같은 것만 하면 재미도 없고 실력도 안 늘죠. 변화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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