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산으로 튀어! 경기도 연천군 고대산
고대산으로 튀어! 경기도 연천군 고대산
  • 문길현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10.1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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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R OUTBOUND ①트레킹&캠핑

날씨가 좋은 날 철원평야 너머 북녘까지 바라보이는 곳. 옛 지도엔 ‘높은 별자리와 같다’는 의미로 고태(高台)산이라 쓰였던 산이 있다. 서울에서 원산으로 이어지는 경원선의 현재 종착역인 신탄리역이 이 산 어딘가에 어딘가에 머무른다.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가본 적도 없이, 까닭 모를 그리움이 샘솟아 그곳으로 향했다.

한수이북 최북단을 오르다
고대산 제3코스-고대봉-제2코스

사소한 소품 하나라도 집밖을 떠나서 1박을 할 때엔 존재감이 크기 때문에 패킹리스트를 한 번 더 체크해가며 만반의 준비를 확인했다. 이번 여정에는 캠퍼 이정태 씨와 유재완 씨가 동행했다. 사실 서로 초면인 이들의 서먹함을 걱정했는데 기우에 불과할 뿐이었다. 달변가 재완 씨의 친화력 덕분에 이동하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 내비게이션 음성안내를 놓치는 경우까지 생길 정도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다 국도로 빠져나와 연천에 접어들었다. 군용차량들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우스갯소리로 군용차량이 민간인차량보다 많은 것 같다고 했지만 사실 북한과 마주보고 있는 접경지역이기에 당연한 모습이기도 했다. 이윽고 우린 목적지인 고대산에 도착했다. 등산안내도를 바라보며 토의한 결과 야영장비와 식수, 식량을 가득 넣은 배낭으로는 최단거리로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경치구경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능선을 따라가는 제2코스를 택하게 되었다.

▲ 출발과 동시에 만난 숨 막히는 경사.

등산로 초입에 적혀있는 ‘정상 2.8km’ 이정표를 보고 ‘금방 가겠네!’라고 호기롭게 외치고 선두에 서서 출발을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오르기 시작했을까? 좁은 산길에서 줄줄이 내려오는 모 산악회 회원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다들 지나가며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어휴 큰 배낭으로 만만치 않을 텐데.”, “땀 좀 흘리겠어!” 어리둥절한 채 인사를 마치고 돌아 섰다. 그리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락방 사다리 올라가는 듯 경사가 이어졌다. 모두 말수가 줄어들고 시야는 발아래만 겨우 신경 쓸 정도로 좁아졌다. 부서진 돌 조각들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공허를 메우고 진땀만 흐를 뿐이었다.

꿀 같은 휴식과 눈앞에 펼쳐진 장쾌한 비경
얼마를 더 올라갔을까. 이쯤에서 쉬면 좋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 앞으로 아담한 바위가 눈앞에 들어왔다. 표지판에 말등바위라고 적혀있었다. 가을 햇빛과 시원한 바람에 구슬땀을 식히며 잠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다들 표정을 바라보니 지친 기색은 오간데 없이 싱글생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늦은 시간에 출발한 탓에 일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느리지만 부지런히 다시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 말등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정태 씨와 재완 씨.

나무뿌리와 흙, 계단으로 이뤄진 길을 번갈아가며 통과하자 자그마한 전망대가 나타났다. 그 위에 올라서자 드넓은 철원평야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벌판을 가득 매운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안내판과 실제 풍경을 번갈아가면서 철원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한국전쟁 당시 전략요충지로 수많은 전투가 벌어지며 셀 수 없이 주인이 바뀌었다는 백마고지와 통일신라 말 궁예가 세웠다는 태봉국 도성지를 볼 수 있었다.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연결되는 길목이 몇 군데 되지 않다보니 과연 한 나라의 도읍지는 물론 외부 침입을 막는 요새로 쓰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칼바위 구간을 통과하는 일행.
▲ 칼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철원평야.

짧은 사색을 마치고 다시 능선에 발을 올렸다. 금세 커다란 암릉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폭이 좁고 삐죽 날이 선 모습에 대번에 칼바위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공룡의 등뼈처럼 튀어나와 두 손 두 발을 다 써야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안전하게 펜스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잠시 한눈이라도 팔면 곧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지겠단 생각에 간담이 서늘했다. 칼바위를 통과하자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따라 길이 이어졌다. 저 멀리 주차장에서 보았던 주능선과 그 정수에 해당하는 정상 ‘고대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 가을이 찾아온 고대산.

체감으로는 8부 능선쯤 올라온 듯싶었지만 주능선과 만나는 대광봉은 30분여를 더 오르고 나서야 닿을 수 있었다. 이미 해넘이가 시작된 시각이라 우리는 각자 헤드랜턴을 꺼내 밝히고 서둘러 움직였다. 대광봉에서 정상까진 비교적 짧은 거리였지만 다다를 때쯤엔 해가 넘어가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풍경만이 우릴 반겼다.

고대봉에서 하룻밤
저 아래 먼 계곡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다. 워낙 추위를 타는 체질이기도 하지만 산에서 체온을 빼앗기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어서 재킷을 먼저 꺼내 입었다. 정상인 고대봉 근처엔 비견할만한 높이의 봉우리가 없어서 휑하게 느껴졌고 그런 이유인지 흐르는 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등산객의 동선에 방해되지 않는 데크 모서리에 텐트를 자리 잡기로 했다.
 
잠자리를 마련하고도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를 바라보며 재완 씨가 고이 챙겨온 데킬라를 꺼내 들었다. “몸 데우는 건 이게 최고죠” 잔을 받아든 손이 바로 옮겨갔다. 목으로 넘어가는 술이 온 몸에 번지면서 화끈함이 밀려왔다. 우리는 텐트 밖에서 의자를 펼쳐놓은 채 침낭을 무릎에 덮고 대화를 나눴다. 데크에는 펜스가 없어서 탁 트인 개방감이 좋았다.

▲ 깊어가는 고대봉의 밤.

북녘의 야경을 바라보는 느낌은 칼바위에서 봤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불빛 번지는 곳 너머 칠흑 같은 어둠 뒤에 우리가 닿지 못하는 곳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항상 외할머니께서 그리워하시던 당신의 고향 이야기도 떠올랐다. 외할머니의 말씀을 빌리자면 여기서 100리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그 곳은 빨래를 하면 여름에도 손이 시린 개천이 흐르고 가을철엔 굵고 탐스러운 대추가 그득그득 열리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는 사이에 가득 찼던 구름이 잠깐 개이면서 별들이 쏟아질 듯 총총히 빛났다. 잠시 뿐이었지만 감동의 여운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우리는 그 이후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또래인 정태 씨와는 비슷한 고민과 꿈을 나눴고 재완 씨는 모터바이크로 한 달간 전국을 일주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렇게 정상의 밤은 깊어갔다.

▲ 고대봉의 아침.

이튿날 아침. 빨갛게 떠오르는 일출이나 운해가 짙게 깔린 모습을 예상했지만 텐트를 열고 맞이한 아침 풍경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평범했다. 우리는 아침식사로 발열도시락을 데우는 막간을 이용해 비상시에 사용 할 수 있는 파라코드 팔찌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기본적으로 일행 모두 아웃도어 아이템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간단한 만들기 과정에 비해 활용도도 높아서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 파라코드 팔찌 만들기.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하산할 채비를 갖췄다. 하산은 제3등산로로 결정했는데 잔돌이 많고 미끄러워서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걸어야 했다. 등산화 끈을 동여매고 십 여분 정도 내려오니 군 소초를 따라 연결된 급수파이프와 물탱크가 보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재완 씨가 말했다. “이렇게 가파른 산에서 근무하는 군인들 휴가복귀는 어떻게 할까요?” 순간 저 아래에서 군복을 입은 사내 한명이 날다람쥐처럼 달려와 인사를 하고 지나쳐갔다. 이걸로 재완 씨 호기심에 대답이 된 듯했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고생하는 군인들이 있다는 걸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표범폭포.

▲ 고대산은 해발 832m로 민통선에서 제일 가까운 최북단의 산이다.

표범폭포와 약수로 채워진 갈증

지루한 하산길에서 잠시 갈림길을 마주했다. 이정표의 안내보다 지척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폭포소리가 먼저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쉴 새 없이 내려왔기 때문에 휴식을 취할 겸 등산로를 빠져나와 표범폭포로 향했다. 넘치는 수량은 아니었지만 절벽을 따라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는 어제와 오늘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내어 주는 듯 했다. 하산 막바지엔 약수터를 만났다. 식수 필요량을 잘못 계산한 탓에 일행 모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물을 마셨다. 얼마나 달게 마셨는지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 대광봉을 목전에 두고 잠시 휴식.

▲ 하산 준비.

▲ 다시 출발이다.

▲ 제3등산로를 따라 하산.

하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행복했다. 까닭모를 이끌림으로 배낭을 꾸렸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가을이 깃들은 고대산은 충분히 풍요로웠고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고대봉에서 나눈 이야기와 빛나던 별로 빚은 고대산의 추억은 외조모의 기억처럼 영원할 것 같이 느껴졌다.

연천 구석구석
고대산

높이 832m의 고대산은 등산이 허용된 산 중에서는 민통선에서 제일 가까운 산으로써, 정상에선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백마고지와 철원평야, 그 너머 북한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옛 지도에는 ‘높은 별자리와 같다’는 의미로 고태(高台)산 이라고도 불렸다. 고대산 일대는 임산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목재와 숲을 만드는 촌락이 많아 신탄막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고,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숯 생산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특히 정상 832고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 9사단이 중공군 165사단을 상대로 ‘파일 드라이버(Pile Driver)’ 반격작전이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등산로 초입과 주차장 부근에는 글램핑/카라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캠핑장이 조성돼 있다.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재인폭포는 지장봉(877m)을 원류로 해서 한탄강 서쪽에 깊숙이 자리해 있다. 높이 약 18m의 폭포가 만들어내는 시원한 물줄기와 맑은 냇물, 주변의 울창한 수풀로 경치가 좋다. 서울에서 버스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당일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군사작전 지역에 속해 토, 일요일에만 개방되지만, 5~9월에는 평일에도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다. 특히 여름과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고을 원이 한 재인(才人)의 아내가 절색인 것을 보고, 재인으로 하여금 이 폭포에서 줄을 타게 하여 죽게 하고 아내를 차지하려 하자, 그는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렸다 하여 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렀다고 한다.

교통
서울에서 3번 국도를 이용해 의정부를 거쳐 계속 직진하면 신탄리역에 도착한다. 신탄리역 앞에서 우회전하자마자 곧바로 좌회전하여 골목길을 따라 3분 정도 들어가면 고대산 대형주차장에 도착한다. 소요시간은 서울 기준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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