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
우리 삶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
  •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4.10.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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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Marmot | ② MINE

새까만 석탄 가루가 날리고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공기를 가득 메우던 광업소. 처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고단한 막장 인생이 기다리는 지옥 같은 곳이기도 했다. 빚에 쫓기던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난날 암흑으로 뒤덮였던 공간이 최근에 그 어떤 미술관보다도 예술혼이 가득한 매력적인 공간으로 탄생했다. 기계를 버리고 건물을 부수지 않고도 말이다. 삶이 예술이 되는 곳, 삼탄아트마인이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가 모이는 해발 853m
솔직히 좀 감동했다. 정선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과거의 한 단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공간 말이다.

정선 문화예술 단지인 삼탄아트마인은 1964년부터 38년간 운영해온 삼척탄좌 정암광업소가 2001년 폐광하면서 만들어졌다. 탄광뿐만 아니라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기차 레일, 탄광 안으로 공기를 공급해주던 공기압축기실 등을 그대로 전시하고 있다. 탄광과 관련된 시설만 전시된 건 아니다. 150여 개국에서 수집한 10만 여 점이 넘는 예술품이 소장돼 있고, 전도유망한 작가가 내부 숙소에 머물면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벽화에서 당시의 현장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

▲ 예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기억의 정원.

숙소인 아트레지던시는 여느 고급 호텔 못지않은 시설이다. 해발 853m라는 고도의 특성을 살려 방 이름도 853으로 시작한다. 방마다 테마가 있고 예술 작품도 함께 전시되고 있어 예술가의 감성을 충족하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이 공간은 상주하는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예약하면 머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기자도 하룻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전통 아프리카 부족의 것으로 보이는 조형물이 곳곳에 눈에 띈다. 캐리어를 올려놓을 수 있는 거치대와 수납장, 거울까지도 빈티지한 감성을 자극한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빗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감성에 젖었다. 포근한 침대에 종일 뒹굴 거리며 글을 쓴다든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예술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기자 같은 사람도 금세 예술가가 될 것 같았다. 여기에 와인 한 잔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레지던시 복도 중간에는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으니 와인 잔 기울이며 삶과 인생에 대해 노래하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

▲ 탄광 갤러리로 이용될 예정인 수평 갱도. 현재는 출입이 불가하다.

죽은 유물이 있는 박물관이 아니다, 삶이다

하룻밤을 묵고 난 후 삼탄아트마인 곳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세련된 감성이 흐르던 로비와 카페를 지나 광원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 보았다. 삼탄뮤지움 자료실에는 40년의 역사가 담긴 월급명세서와 회의록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고, 광원이 직접 사용했던 장비와 도구도 전시돼 있다.

검은 고무장화가 전시된 곳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좀 전에 누군가 벗어놓은 것만 같은 생동감이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검은 탄이 여전히 남아있는 헬멧과 손 때 묻은 산소마스크, 분진 마스크도 곳곳에 놓여 있다. 일반 사람은 살면서 평생 한 번 만져볼까 말까 한 생명 장비를 광원들은 목숨처럼 지니고 다녔다.

▲ 기억의 정원에 있는 ‘석탄을 캐는 광원’ 조형물. 1974년 900 갱에서 갱도 내 출수 사고로 26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사고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운 추모탑이다.
▲ 검은색 레일 위에서 붉은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당시의 광원들이 지금 삼탄아트마인을 찾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옛날 생각이 나서 한숨짓고 눈물 닦는 이도 있을 테고, 색채가 없었던 이 공간이 환상적인 곳으로 탈바꿈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격세지감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 같다.

2층에서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마인갤러리 4다. 이곳은 지난날 3000명이 넘는 광원들이 1000여 명씩 3교대로 나누어 퇴근 시 사용하던 샤워실이다. 위험한 갱도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던 광원들이 시커먼 석탄가루를 씻어내고 하루의 안녕을 감사해 하던 곳이기도 하다. 이 시설이 갖춰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근로자는 석탄 가루로 범벅되어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퇴근했다.

▲ 월급명세서와 회의록 등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지금은 샤워 꼭지 위로 광원들의 당시 X레이 촬영 필름과 차용증명서 등을 둥글게 붙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 공간을 꾸민 전동화 작가는 작품 제목을 ‘치유의 공간’이라 이름 붙였다. 광원들은 샤워실에서 몸에 묻은 석탄 가루는 씻어냈지만, 하루하루 폐에 쌓여가는 석탄가루는 씻어낼 수 없었고, 진폐증으로 늘 잔기침을 달고 다녔다. 돈 때문에 막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서러움 많은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다.

엑스레이 필름을 볼 줄은 모르지만, 석탄가루가 지우개가루처럼 쌓여있을 생각을 하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만 같다. 작가는 이 공간에서 마치 독일군이 유대인을 집단학살하던 가스실을 연상했다고 이야기했다. 작가의 표현이 어찌나 적절한지 밖에 비바람까지 불어주니 어디선가 귀신이라도 나올 거 같다.

▲ 샤워기 아래 차용 증명서와 엑스레이 필름이 걸려 있다. 물로 씻을 수 없었던 광원의 폐 속 먼지를 씻어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다.

어려웠지만 따뜻했던 우리 어릴 적 이야기
1층의 장화를 닦던 세화장은 진짜로 귀신이 있는 줄 알았다.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하얀색 천이 늘어뜨러져 있다. 자세히 보니 웨딩드레스다. 그 당시 어려운 사정으로 결혼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채 생활하는 부부가 많았다고 한다. 그들을 위해서 광업소에서는 드레스를 대여해 약식 결혼식을 올려주었나 보다. 당시 신부가 실제로 입었던 드레스를 전시했다고 하니 더 처연하다. 온통 검은 세상에서 지내던 광원이 신부의 새하얀 드레스를 볼 때는 아름답고 한편으로는 슬픈 생각이 들어 울컥했을 것만 같다. 이명환 작가 작품이다.

▲ 장화를 씻던 세화장에 당시 신부들이 직접 입었던 드레스를 걸어놓았다.

여기까지는 사무공간에 광원들이 쓰던 기구와 그들을 기리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광업소의 민낯을 보는 시간이다. 계단을 따라 레일바이뮤지엄으로 향했다. 이곳은 삼척탄좌에서 캐 올렸던 모든 석탄을 집합하던 시설이다. 그 중심에 직경 6m, 깊이 600m의 거대한 수직갱도가 있다. 케이지로는 1회에 400명씩의 갱내 작업자들이 현장에 투입할 수 있었던 시설이다. 연간 50만 톤의 굴진 암석을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로써는 국내 최대 시설이었다.

▲ 레일바이뮤지엄 내부.

▲ 동굴 와이너리 뱅. 포도주를 저장하는 저장고. 기온이 서늘해 잠시만 안에 들어가 있어도 춥다.

▲ 와인바와 기계의 만남이 절묘하다.

시설은 사용하지 않은 지 10년도 더 지났건만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 같았다. 탄광이나 광업소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비바람에 얇은 창문 유리는 곳곳이 깨졌지만 스산하기보다는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위치를 누르면 지금이라도 ‘덜컹’하며 기계가 움직일 것 같다.

거대한 기계와 레일, 온통 검은색인 이곳 광경이 왜인지 낯설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연탄불 갈러 갔다가 손등에 검은 재를 묻혀 오시던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사는 건 어려웠지만 사람들은 다정했고 아랫목은 따뜻했던 옛 기억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갔다. 마치 레일 위를 장식한 붉은색 꽃이 검은 재위에서 더 빛나듯 어려웠던 시간이 있어 삶의 작은 추억이 더 빛나는지도 모른다.

▲ 레스토랑 곳곳에 기계가 전시돼 있어 독특한 운치를 제공한다.
밖으로 빠져나오니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이 흐른다. 레스토랑 832L다. 해발 832m에 위치해 이름 지어진 레스토랑 832L는 탄광의 기계를 제작, 수리하던 공장 동이었다. 지금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공장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벽에는 분필로 쓰인 날짜와 메모가 남아있고, 기계도 작품처럼 남아 공간을 채우고 있다. 2차 산업이 중심이던 시대의 투박한 기계가 샹들리에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는 공간에 들어오니 예술이 됐다. 손때 묻은 기계들이 와인바의 카운터와 어울릴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시설은 고급이지만 음식 가격은 의외로 저렴하다. ‘광원의 도시락’이라는 이색적인 메뉴도 판매하고 있어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주문해 보자. 기대한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원한다면 스테이크 코스 요리도 맛볼 수 있지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수준 높은 음식을 만나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주방장이 직접 함백산 기슭에서 공수해 온 야생화로 만들어진 야생화 비빔밥, 닭 가슴살과 단호박을 함께 튀겨내 고소하면서 든든한 단호박 닭가슴살 커틀렛 등을 1만 원 대에 맛볼 수 있다. 프로포즈를 앞둔 애인이나 신세 많이 지고 산 부모님께 특별한 하루를 선사할 계획을 하고 있다면 삼탄아트마인에 들르자. 살면서 두고두고 추억할 여행지가 될 것이다.

▲ 레스토랑 832L 내부.

▲ 광원 도시락을 맛볼 수 있다.

▲ 함백산 야생화 비빔밥. 달콤쌉싸름한 비빔밥이 꽃밥이나 나물 비빔밥과는 다른 새로운 식감을 제공한다. 가을까지만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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