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전통 그대로…코리안 메이드
영국 전통 그대로…코리안 메이드
  • 황제현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9.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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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소 | 베이퍼룩스(Vapalux)

캠핑장의 밤을 은은하게 밝히는 노오란 불빛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아름답고 차분한 불빛에 이끌려 ‘베이퍼룩스’라는 랜턴을 알게 되고, 어느새 마니아가 되어 버린 이가 여럿 있다. 그들은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불빛보다 고즈넉한 밤 풍경을 즐길 수 있는 베이퍼룩스의 온기를 사랑한다.

베이퍼룩스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석유랜턴 브랜드로 WILLIS&BATES 사에서 개발됐으며 대표 모델인 M320은 지금까지도 랜턴 마니아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2009년 원재정 대표가 마음이 맞는 3인의 투자자와 함께 영국 본사에 찾아가 베이퍼룩스의 인수를 추진, 2010년부터 본격적인 제조에 돌입했다.

베이퍼룩스가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마니아들은 환호했다. 원재정 대표는 베이퍼룩스의 모든 제조 과정을 본사에서 직접 숙지하고 돌아와 영국에서 생산했던 방식 그대로를 재현, 영국에서 만들어진 제품보다 더욱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랜턴을 만드는 그에게 만약 한국인 특유의 ‘장인 정신’이 없었다면 베이퍼룩스의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PROCESS
How to Make a Vapalux

1. 연료통의 상단부와 펌프, 필러 캡 부분을 조립하고 납땜한다.

2. 연료통의 바닥은 납땜을 못하므로 바닥 부분을 납물에 담가 봉한다. 봉합 후에는 연료통에 기름을 넣고 하루 정도 두고 기름이 새는지 테스트한다. 사진은 기름을 넣고 테스트 중.

3. 베이퍼라이저를 조립하고 니들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4. 글라스 파이버(유리섬유)로 된 알코올 심지 부분을 조립한다.

5. 상단부 버너에 베이퍼룩스 전용 맨틀을 끼우고 손잡이를 조립한다.

6. 황동은 쉽게 상처가 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특히 황동에 광택을 낼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7. 전용 프레스로 ‘코리안 메이드’ 베이퍼룩스 로고를 새긴다.

INTERVIEW
베이퍼룩스 원재정 대표

베이퍼룩스를 한국인이 인수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그토록 오랜 역사를 지닌 랜턴을 우리나라에서 제조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영국의 오랜 전통을 한국인이 그대로 이어간다는 것이 처음에는 불가능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퍼룩스의 모든 것이 지금 내 머릿속에 있다. 영국 본사에서 도면을 받아 오고 제조 방법과 원리를 차근차근 익혔다. 지금도 문제가 발생하면 영국 본사에서 근무했던 기술 고문 피터 순더랜드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는 50년 가까이 베이퍼룩스에 몸담았던 분으로 노하우가 많아 놀라곤 한다.

처음 시작할 당시 어려움은 없었는가?
사실 처음 베이퍼룩스를 인수할 당시에는 대부분의 부품 제조를 외주에 맡기면 끝인 줄 알았다. 그냥 부품을 받아와서 조립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인생 최대의 계산 착오였다. 생산부터 납품까지 모든 과정을 ‘관리’해야 하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게다가 모든 작업을 수공업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과 정성이 필요했다. 24시간을 투자하고 인생을 바쳐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다 보니 처음 함께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다. 그들의 선택을 질책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떤 한 가지 일에 인생을 100% 던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베이퍼룩스’ 하면 ‘황동 랜턴’이 떠오른다.
황동은 다루기가 매우 까다로운 재료다. 그리고 단가가 비싼 국내산보다 영국산을 수입해 사용할 수밖에 없다. 황동 중에서 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불에 닿으면 양파처럼 껍질이 벗겨지기도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황동, 펌핑기 내부의 가죽, 스프링, 맨틀, 베이퍼라이저 등 대부분의 부품을 영국에서 수입한다. 베이퍼룩스의 품질을 지켜가기 위한 선택이다.

베이퍼룩스는 전용 맨틀이 있는데.
사실 모델마다 적합한 맨틀이 따로 있으며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석면이 들어간 맨틀은 좋지 않다. 방사능에 오염된 맨틀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베이퍼룩스는 방사능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오스트리아 정품 맨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만약 맨틀이 부서져 새로 맨틀을 구입해야 할 때에도 이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것이 제품과 사용자 모두에게 좋다.

한편에서는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만들어진 베이퍼룩스가 오리지널’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들은 일명 ‘제치’, ‘오리지널’을 따지는데 모두 부질없는 것이다. 아무리 빈티지가 좋고 멋있어도 제품은 일단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용하지 못하는 제품은 고물이나 마찬가지다. 소위 ‘오리지널’이라고 말하는 옛날 랜턴들은 손으로 도면을 그렸기 때문에 정밀하지 않았고, 모두 수작업이었기 때문에 작업자의 기분이나 상태에 따라 형태나 모양새도 조금씩 달라졌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랜턴은 영국에서 만들어졌던 방식 그대로이고 심지어 주물 금형도 영국에서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가져와 사용하고 있다. 그저 지금은 도면을 3D로 작업해 정밀하게 만들고 있고, 모든 랜턴에 한국인의 ‘장인 정신’이 배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랜턴의 생산과 수요 패턴은 어떠한가?
랜턴 전 모델을 스테인리스, 황동, 티타늄 3가지로만 생산하고 있다. 일본은 특히 티타늄에 관심이 많아 주문이 많은 상황이다. 국내에서 30%, 미국과 영국 등 해외로 20%, 일본으로 50% 정도 수출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내와 둘이 하루 종일 매달려 최대 10~15개 정도의 제품을 만들고 있다. 전통적인 수준의 가내수공업인 것이다. 몸과 마음은 힘들지만 쉽게 바꿀 생각은 없다. 앞으로도 고집스럽게 기존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할 계획이다. 더 나은 제품이라고 모두가 인정할 때까지 더 많이 익히고 공부할 것이다. 한국의 베이퍼룩스에 자부심을 갖고 사랑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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