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나도 걸어보고 싶어서’였다. 낯선 스웨덴, 게다가 스톡홀름도 아닌 생소한 북부 지방인 키루나라니. 가고픈 마음이 커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그럴 때마다 떠올렸다. 맑은 하늘, 청명한 시야, 옥빛 호수와 그냥 떠먹어도 되는 계곡 물. 그렇게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처럼 내 상상 역시 현실이 됐다. 완주에 대한 불안감은 눈앞에 펼쳐진 동화 속 풍광에 무뎌져갔다.
PART 1. 출발선에 서다
비행기는 설렘을 싣고
8월 7일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의 키루나행 15시 05분 비행기. 피엘라벤 클래식 2014에 참가하기 위한 사람으로 가득 찼다. 공통점이 있다면 설렘과 기대로 상기된 표정이었고 피엘라벤의 상징인 북극여우가 그려진 옷이나 모자 등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것.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독일에서 왔다는 마이클, 아웃도어 매장을 운영한다며 이번 대회에 20명이 함께 왔다고 했다. “장거리 트레킹은 처음이에요. 건강하게 무사히 끝내는 게 목표지요. 헬기가 매일 다닌다고 하니까 사실 크게 걱정은 안합니다. (웃음)”
스웨덴 본사에서 준비한 기자 그룹에 합류했다. 가이드와 미디어, 피엘라벤 관계자와 유통업자 등 영국, 스웨덴, 헝가리, 네덜란드, 홍콩 등에서 온 15명의 글로벌 팀이 짜여졌다. 먼 동아시아에서 북유럽까지 아우르는 듬직한 길동무가 생긴 것이다.
헤이, 쿵스레덴 Hej, Kungsleden!
8월 8일 아침. 들머리인 니칼루옥타. 날씨도 쾌청하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어왔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처럼. 세계 각지에서 모인 트레커는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곳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분주하게 출발 전 마무리 준비를 했다. 스태프, 참가자 모두 스웨덴 인사말인 헤이(Hej)를 나눴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으며 ‘헤이’라고 인사를 나눈다. 한번 혹은 두 번 말한다. 만약 쿵스레덴에 간다면 수줍어말고 웃으며 인사하자. 상대방도 반갑게 ‘헤이 헤이’라고 해줄 것이다.
가족·친구는 물론 애견과 함께한 트레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재밌는 건 덩치가 큰 개는 등에 자기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른처럼 큰 배낭은 아니어도 본인 소지품을 담은 배낭을 메고 엄마 아빠를 따라다녔다.
어느 덧 첫 출발이 가까워졌다. 가이드 대장인 맥스가 하이킹패스를 나눠주며 “이제 출발할 시간”이라고 알려준다. 들뜬 마음으로 출발점으로 향했고 곧 모두의 환호 속에서 쿵스레덴에 첫 발을 디뎠다. 6km정도 걸으면 라드쇼야우레 호수가 나타난다. 대부분 이곳에서 한 숨 돌리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쉬는 동안 모두들 자연스럽게 트레킹화와 양말을 다 벗는다. 발이 뽀송뽀송해야 물집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가는 트레커도 꽤 많다. 이제부터 각자 원하는 시간에 이동하면 된다.
피엘라벤 클래식 사진과 홍보영상으로만 봤던 풍경이 눈앞에 계속 펼쳐졌다. 한사람이 지나갈 만한 나무 데크 길에 트레킹 폴 부딪는 소리가 흥겹다. 작은 것 하나까지 만끽하고 싶어 일행과 약간 거리를 두고 걸었다. 사방에 널려 있는 야생 블루베리와 클라우드 베리 등을 맘껏 따먹었다. 곳곳에서 황금색을 띄는 버섯을 봤는데 어릴 때 봤던 만화처럼 구워먹어 보고 싶었다. 가이드 요한나에게 물어보니 식용 버섯도 있지만 확실히 아는 것 아니면 먹지 말라고 했다.
낮에는 땀이 삐질, 밤에는 입김이 폴폴
키루나는 북극권에 속하는 지역이다. 선선하거나 추울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한국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더웠다. 피엘라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예년에 비해 온도가 높기도 하고 행사 시작 몇 주 전부터 이상하게 더웠다고 했다. 다행인건 한국처럼 푹푹 찌는 더위가 아니라 바람이 불면 쌀쌀한 기운이 돌 정도다. 또 아비스코를 향해갈수록 쉴 때마다 재킷을 입어야 할 정도로 온도가 내려갔다.
배낭에서 얇은 다운재킷부터 꺼내 입고 텐트를 쳤다. 잠자리를 마련해 둔 뒤에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뭘 먹을까 고민하는데 으슬으슬 몸이 떨려왔다. 꼭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다. 리액터를 켜고 몸을 녹였다. 참고 참은 뒤에 먹어야지 했던 라면을 첫날부터 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맛이 어찌나 짜릿하던지,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또 감기 예방을 위해 물을 끓인 뒤 물병에 넣어 침낭에 먼저 넣어 놨다. 따뜻한 기운이 도는 침낭에 들어가 눕는 순간, 바로 기절했다.
10리도 못가서 발병 났다
걷고 뛰는데는 ‘발’이 가장 중요하다. 발이 아프면 움직이기도 힘들고 고통의 시간이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염좌와 물집을 꼽을 수 있겠다. 트레킹에 앞서 만난 피엘라벤의 기술 고문 요한 스컬맨은 발 건강의 중요성을 딱 한 마디로 정의했다. “해피 풋, 해피 트레킹” 발이 행복해야 트레킹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쿵스레덴은 곳곳에 바위와 돌이 흩어져 있는 지형이다. 어느 한 길도 오롯이 흙이나 풀로만 되어있지 않다. 절대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덤불이 자라는 곳에도 바위와 돌이 콕콕 박혀있다. 때문에 중등산화를 신는 것이 발목 보호에 좋다. 목 낮은 등산화를 신은 트레커도 심심치 않게 봤지만 종종 계곡물을 건너야 할 때도 있어 방수기능을 갖추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등산화가 유리했다.
물집이 마를 날이 없었다. 저녁 때 자려고 누우면 발바닥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쿵쾅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도 심해지고 발의 붓기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물집도 여기저기 생기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다리를 절고, 쉬면서 물집을 어르고 달래는 트레커를 종종 볼 수 있었다.
PART 2. 고통의 시작
힘들어도 웃음은 잃지 말 것
피엘라벤 클래식 기간 중 가장 힘든 구간은 2일차와 3일차. 걸어야하는 구간도 길고 또 길 역시 순탄치 않았다. 나보다도 훨씬 잘 걷던 팀원들도 지쳤다. 첫날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모습과 달리 다들 말수가 점점 줄었다. 게다가 쉴 때마다 대장 맥스에게 몇 시간 남았는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질문이 늘었다. 그럴 때마다 “거의 다 왔어” 혹은 “1~2시간만 더 가면 돼”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산에서 하산하는 분에게 ‘얼마나 걸려요?’라고 물으면 ‘5분이면 가요’ 혹은 ‘거의 다 왔어요’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곧 희망고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은 글로벌 거짓말인 듯하다.
오전에는 발이 붓지 않아 비교적 잘 걸었는데 오후가 되면서 걷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발이 땅에 닿는 것조차 고통스러우니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힘든 것, 아픈 것 티내기 싫어 묵묵히 걷는데 나도 모르게 “여기서 뭐하는 거지?”라고 신경질 적으로 내뱉어 버렸다. 내 말을 들은 소나가 “우리 여기서 모험하고 있잖아!”라고 즐겁게 말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을 다잡았다.
배를 타다
3일차 저녁, 가장 힘든 날을 보낸 만큼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르는 위스키를 나눠 마시며 일행들은 나와 마크의 짐을 나눠 들자는 이야길 했다. 그 때 대장 맥스가 “킴, 행복한 소식을 갖고 왔어!”라며 나타났다. 우리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자 그는 “너네 말고 킴이랑 마크 얘기야. 둘은 내일 아침 8시 45분에 배를 타고 이동할거야. 좋지?”라고 말했다.
4일차 아침. 일어나 텐트를 정리하며 먼저 떠나는 일행들에게 인사를 나눴다. 그들은 “이따 보자”며 캠프 사이트를 빠져나갔다. 그 후에 선착장으로 향했다. 마중 나온 가이드에게 “여기 완주하려고 왔는데 배를 타면 한국 돌아가서 후회할 것 같아. 그러니까 나는 혼자서라도 걸어가고 싶어”라고 했다. 가이드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 하지만 너의 목표는 집에 건강히 돌아가는 거야. 그런 생각은 마”라며 나의 배낭을 배에 실었다. 사실 피엘라벤 클래식 참가자는 규정상 배를 이용해 이동해서는 안 된다. 나와 마크를 비롯해 몇몇 관계자만 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1 일차 니칼루옥타~케브네카이세 19km 2 일차 케브네카이세~싱기~샐카 27.5km 3 일차 샐카~셰크티아~알레스하우레 26.5km 4 일차 알레스야우레~케론 18km 5 일차 케론~아비스코~결승점 17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