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 위 걸으며 마음 힐링 약수 물 마시고 몸도 힐링
수로 위 걸으며 마음 힐링 약수 물 마시고 몸도 힐링
  •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4.09.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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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Marmot | ② HIKING

남에서 북까지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우리네 삶의 모습은 바다를 사이에 둔 것처럼 판이하게 달랐다. 가을이면 남쪽에선 지평선 위로 끝도 없이 황금물결이 일렁이며 벼 익어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북쪽 두메산골에서는 깎아지른 땅이 아닌 평평한 땅을 구경하는 건 왕의 행차를 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내 손으로 길러낸 벼로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맛보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 내린천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는 약수숲길.

쌀에 대한 열망이 수로를 만들었네

인제는 벼 한포기 길러낼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다. 여느 산간 지방처럼 옥수수나 감자와 같은 구황작물이 밥 대신 상에 오르는 날이 많았고 쌀 한번 배불리 먹어보는 건 인제 주민의 기나긴 바람이자 한이었다.

1968년, 인제에도 경제 부흥의 새바람을 타고 시멘트가 공급됐고, 인제 주민은 쌀농사를 지어보자는 일념으로 수로를 만들었다. 인제군이 고향인 전정금 숲해설가는 “어릴 때는 감자, 옥수수, 납작보리가 주식이었어요. 그러다 이 수로가 만들어지자 수로 하나로 마을 전체가 농사를 짓게 됐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가면 망가진 수로를 수없이 복구해야 했지만 주민은 바위를 깨서 수로를 만들만큼 수로는 없어서는 안될 재산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옛날을 회상했다.

▲ 3구간은 온전히 보전된 수로를 따라 걷는다.
▲ 수로였던 곳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자.

수로가 생기자 먼 데서 물을 끌어와 논에 물을 댈 수 있게 됐다. 인제에 쌀농사가 시작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수로의 영향으로 인제에는 지금도 다른 강원도 산간 지역에서 보기 드문 논이 꽤 넓게 펼쳐져 있다. 인제 군민의 젖줄이었던 수로는 90년대 후반 펌프가 보급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춘다. 현재도 이 펌프에서 길러낸 물을 통해 논농사를 짓고 있다. 너른 논에서 익어가는 벼는 지난 날 인제 주민의 쌀농사에 대한 열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알곡을 살찌우고 있었다.

▲ 내린천을 내려다보며 걷는 묘미가 있다.

한동안 잊혔던 수로는 인제군의 4대 약수를 거점으로 다시 빛을 발한다. 약수숲길이 조성된 것이다. 이 길은 인제군, 홍천군, 양양군을 잇는 구간으로 총 45km에 달한다. 이른바 둔가리 약수숲길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에는 강원도의 이름난 약수와 3둔 4가리를 잇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연로한 부모님과 함께 걷기 좋은 길
인제는 어느 곳에 있는 계곡물이든 그냥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다고 한다. 계곡에는 1급수에만 산다는 열목어가 산다. 도룡뇽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인제 전역의 계곡물이 이렇게 깨끗한데 약수는 말 그대로 약이 되는 물이리라.

▲ 지난 날 물길이 흘렀던 곳이다.

2011년 1월13일 천연기념물 제 531호로 지정된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의 개인약수는 해발 1080m로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약수다. 이 약수는 1891년 함경북도 포수 출신인 지덕삼이란 사람이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사냥 나왔던 그는 강원도 산골 깊숙한 곳까지 노루나 멧돼지를 따라서 들어왔다 약수를 발견했던 것 같다. 톡 쏘는 탄산에 철 맛이 곁들여진 약수가 오늘날까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을 그때 그는 짐작이나 했을까.

▲ 상류에서 떠밀려온 돌이 닳아서 둥글해졌다.

약수는 철 성분이 섞여 있어 물맛이 독특하다. 비릿한 맛과 톡 쏘는 탄산이 합쳐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벌컥벌컥 마시기에 수월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효능을 듣는 순간 물맛이 달게 느껴지기도 한다. 개인약수는 위장병과 당뇨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 당뇨로 고생하시는 아버님과 나이가 들어서 소화 능력이 약해진 어머님이 있다면 이 길을 함께 걷는 게 좋겠다. 숲길을 걸으면 다리에 힘도 생기고 위장 기능도 강화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개인약수에 도착해 물 한 모금 마시면 숨어있던 병도 사라지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밑져야 본전이니 속는 셈치고 약수 마시러 가보자.

인제의 살아있는 역사, 서바수길
인제군 현리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하는 서바수길은 하남리 미기교까지 연결되는 약 16km 거리다. 여기에서 주민 삶의 굴곡이 오롯이 담겨있는 옛 수로를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은 수로의 대부분이 유실돼 물이 지났던 흔적만 간직하고 있다. 내린천을 내려다보며 걸으면 길 왼쪽으로 초록색 이끼와 덤불 사이에 옛 수로가 보인다. 약수숲길은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주민의 삶의 궤적을 따라 만들었다. 아직 많은 사람에게 소문이 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폭이 좁은 오솔길을 걷는 구간도 있다.
▲ 어릴 적 추억을 생각하며 팔 벌리고 수로 위를 걷는다.

전정금 숲해설가는 “이 길은 단풍이 노랑, 빨강으로 물들어 가을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단풍터널이 만들어지는데 나무를 과도하게 자르지 않고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만 최소한으로 다듬었어요”라며 숲의 보존 상태를 설명했다.

곳곳에는 야생 호두나무인 가래나무가 보인다. 인제 주민은 예부터 이 가래나무 열매를 이용해 기름을 짰다. 열매에서 나온 기름이 위장에 좋다고 알려져 있어 지역 주민에게 귀한 나무다. 가래나무에서 수액을 얻기도 하고, 껍질을 말려서 약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 지금은 전기 펌프가 수로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

연인과 아름다운 수로 위를 걷는 특별한 코스, 3구간 미산동길

인제 사람들은 강변을 휘둘러 나가는 길은 안 좋은 길이라 여겼다. 약수숲길 건너편의 도로 자리다. 반대로 산을 감싸고 있는 흙길은 명당이었다. 그러고 보니 약수숲길은 흙길 위주로 나있다. 3구간은 미기교에서 개인약수교까지 이어지는 12km 길이다. 왕성교에서부터는 숲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한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좁은 길이지만 붉은 칡꽃과 만나고 인제 특산물인 돌배도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돌배는 야산에 자생하는 자연산으로 거칠고 신맛이 강해 신배라고도 불린다. 걷는 걸음걸음 마다 돌배가 놓여있어 한 움큼 주웠다. 맛이 좋다는 숲 해설가의 말에 마침 목이 타던 참인데 잘됐다 싶었다.

▲ 시큼하고 떫은 돌배.

코에 갖다 대니 냄새가 향긋하다. 배처럼 달달하고 시원한 과즙이 흘러내릴 상상을 하며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지만 상상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떫고 신맛이 강해 씹을 수조차 없다. 단단하고 못생긴 외관을 보고 눈치 챘어야 했는데 향기에 눈이 멀었었나 보다. 그래도 과일주를 담가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란다. 태풍이 지나가 돌배가 우수수 떨어진 자리에 앉아 돌배를 주워왔다.

급류가 휘몰아치는 내린천을 내려다보며 송계교에 다다랐다. 송계교부터 후평교까지는 온전하게 보전된 수로 위를 걸을 수도 있고 차 소리가 아닌 새와 물,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구간이다.

▲ 왕성교에서 송계교가는 구간은 차 소리 대신 바람 소리,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수로 옆으로 걷기도 하고 수로 위로 균형을 잡으며 걷기도 하면서 친구와 장난치며 걷던 어릴 적 추억을 되살려 보았다. 길이 없는 일부 구간은 수로 위로 나무 데크가 놓여 있다. 전체 수로를 나무판자로 덮어놓으면 햇볕이 닿지 않아 물이 차가워진다고 한다. 차가운 물은 농작물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여기에도 최소한의 나무판자를 사용했다. 때로는 물 위로 뱀이나 고슴도치가 떠다니는 구경(?)을 할 수 있다고. 온전하게 보존된 수로를 걷는 경험은 흔치 않으니 수로 길을 걷고 싶다면 3구간 미산동길을 다녀가는 건 어떨까.

▲ 서바수숲길은 옛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 수로 길을 따라 주민은 읍내를 간다.

INFO
3둔 4가리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에 의하면 조선에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물, 불, 바람 또는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서지 못하는 좋은 땅이 있었다. 그 중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부근의 3둔 4가리가 난리는 피하고 숨어 살만한 곳으로 언급하고 있다. 3둔이란 산골짜기의 농사짓기 좋은 펑퍼짐하고 넓은 산기슭을 말하며, 방태산 남쪽의 내린천 상류지역인 홍천군 내면의 살둔(생둔), 월둔, 달둔을 일컫는다.
가리란 계곡의 산비탈에 붙은 받뙈기로 농사라도 지을만한 땅을 말하며, 방태산의 북쪽인 인제군 기린면의 적가리(곁가리), 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명지가리를 일컬어 4가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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