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백두대간 오솔길
무수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백두대간 오솔길
  • 이두용 차장 임효진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4.09.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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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with Marmot | 인제 ①TREKKING

인제는 반전의 고장이다. 첩첩 산으로 에둘러 숨통이라곤 백두대간 줄기를 타고 넘나드는 능선과 소양강에서 가지내려 뻗은 물줄기뿐이었던 땅.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인제에 속한 군부대로 발령이라도 받으면 ‘인제 가면 언제오나’라는 속절없는 말로 안타까움을 쏟아냈다.

그런 인제가 승부수를 던졌다. 타지와 교류가 적어 시대가 흘러도 더딘 것이 많았던 고장이 천혜의 자연을 자원삼아 청정 관광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 발걸음이 적었던 숲길과 물길을 엮어 걷는 코스를 만들고 접근조차 힘들었던 암벽에 체험시설을 마련했다. 이미 래프팅 명소가 된 내린천에는 리버버깅을 띄어 시원함과 짜릿함의 격을 높였다.

말복과 입추가 겹치며 조급히 찾아온 가을, 첫 단추를 인제에서 끼워보자. 여름의 끄트머리에 남아있는 더위를 쫓으며 가을의 정취까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인제의 숲길과 물길. 어느 곳을 찾아도 부족함 없는 즐거움을 추억으로 남길 것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해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산줄기를 가리킨다. 거친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백두대간 길 위에 걷기 좋은 트레일이 조성됐다. 2020년까지 총 길이 2165km의 5대 트레일을 조성될 예정이다. 그 중 인제에는 방동약수부터 홍천까지 연결되는 백두대간 트레일을 올해부터 정식으로 운영 중이다. 주민에게는 오래된 길이지만 여행객에게는 새로운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꼬리치레도롱뇽이 살고 있는 1급수 계곡
백두대간 트레일은 둔가리 약수숲길 구간인 방동약수터에서 시작된다. 제갈형수 숲해설가는 “도롱뇽이 방동약수 계곡 근처에도 서식하고 있다”며 자세히 관찰해 보라고 했다. 몇 해 전 지율스님이란 분이 천성산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종을 지키기 위해 단식을 했는데, 그 중 가장 대표로 거론됐던 게 이 꼬리치레도룡뇽이다. 1급수에만 살기 때문에 요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녀석이다.

도롱뇽은 옛날 우리 조상들의 ‘기상청’ 역할을 톡톡히 했다. 물가에 알을 낳는데 그 해 가뭄이 들 것 같으면 물 속 깊숙이 알을 숨겼고 반대로 장마가 질 것 같으면 알을 돌이나 수초에 단단히 붙여놓았다. 농부는 도롱뇽 알을 보고 농사를 준비했다.

▲ 방동약수터에서 시작되는 백두대간 트레일.

▲ 약수터 위쪽의 길을 포장한 시기를 알리는 비석을 보고 있다.

방동약수가 효엄이 뛰어나다고 알려졌고 차로 접근이 쉬운 편이라 근처 계곡은 사람의 때가 많이 탔을 줄 알았다. 그런데 떠들썩한 사람의 발길이 늘상 끊이지 않는 곳에서 도롱뇽이 발견됐다고 하니 인제 구석구석이 얼마나 깨끗하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계곡에서 우거진 수풀을 따라 돌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는 아침가리 계곡이 시작되는 조경교까지 약 5.2k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여기서부터 백두대간트레일(인제)안내센터까지 차를 이용해서 갈 수도 있다. 본격적인 코스는 아직 시작되기 전이니 체력을 아껴두기 위해서라도 차를 이용해 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 조경동교를 기점으로 아침가리 계곡이 시작된다.

▲ 가을이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고 한다.

안내센터부터는 본격적인 백두대간트레일 기분이 난다. 전날 많은 비가 와서 길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다. 물이 흘렀던 흔적의 깊은 골이 길 가운데 나 있었고 주먹 만한 자갈이 훤히 배를 드러내고 있었다. 걷는 길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그래도 대부분 평지이기 때문에 고지를 오르는 수고로움은 없다. 대신 잘 닦여진 길이 아니기에 발목을 보호하고 관절에 부담을 적게 주기 위해 등산화를 신는 게 좋겠다.

백두대간 트레일은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날 미리 예약한 100명씩만 출입할 수 있다. 원시 자연의 상태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도 전하고자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다.

▲ 잘 익은 단호박이 탐스럽게 열렸다.

▲ 백두대간트레일은 인제에서 홍천까지 이어진다.

아침에만 밭을 갈 수 있다는 두메산골로
조경동교에 다다르니 40년지기 약초꾼 사재봉씨가 일행을 맞이한다. 동행한 숲해설가와 한 식구처럼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여서 반가운 눈인사가 오고간다. 커피 한잔하고 가라는 말에 땀을 식히고 가기로 했다. 멀리서부터 일행이 오는 소리를 들으셨던 건지 마침 펄펄 끓은 뜨거운 물을 내오신다.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믹스커피지만 맑고 깊은 아침가리 계곡을 눈앞에 두고 마시니 더욱 꿀맛이다.

마귀의 손아귀같던 태풍과 장마가 아침가리 계곡 곳곳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그런 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연은 조용히 스스로 치유하고 있었다. 많은 비가 내려 상류층 돌이 떠밀려왔고 물 역시 흙탕물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열심히 정화작업을 한 덕인지 물줄기가 힘차게 흐르고 있었고 물빛은 옥구슬보다도 더 맑게 빛났다.

▲ 인제의 상징이 된 자작나무도 볼 수 있는 길이다.
▲ 조용한 오솔길을 오랜만에 걸어본다.

가게 건너편 통나무 통에는 계곡 물에 시원한 막걸리가 떠다닌다. 참새가 방앗간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 만무. 자리에 앉은 김에 일행도 막걸리로 목을 축이기로 했다. 달달한 사과 막걸리를 한잔하니 벌써부터 냄새를 맡고 벌이 모여든다. 참 좋은 시간이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에 들뜨던 마음의 열도 식는 것 같다.

아침가리골은 한자로 아침조(朝) 밭갈경(耕) 마을동(洞) 자를 써서 ‘아침에 밭가는 동안만 햇볕이 드는 산골’이라는 뜻이다.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촘촘히 하늘을 덮고 있어 아침나절에만 잠깐 해가 든다고 하니 지명만으로도 얼마나 깊은 산인지 짐작이 간다.

▲ 소나무 근처에 기도를 할 수 있는 신성한 공간이 있다.

아쉽게도 급속하게 불어난 계곡물로 계곡 트레킹은 당일 전면 금지된 상황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발이라도 담궜다 가야지 조금 덜 서운할 거 같아 계곡으로 내려가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지어 헤엄치며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잠시 실례하기로 했다. 먼저 손을 물에 축이고 양말을 벗고 발을 담궜다. 물이 어찌나 찬지 채 5초도 버티는 게 쉽지 않다. 비가 오고 난 뒤라 물이 더 차가워졌다고 한다. 다음에는 계곡 트레킹으로 아침가리골을 오롯이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버킷리스트에 아침가리 계곡 트레킹을 올렸다.

전기없이 살아가는 외딴 오두막집

아침가리 계곡이 시작되는 조경교에서 계곡을 따라 트레킹을 하면 진동계곡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트레일은 여기서 계곡이 아닌 조경동 분교로 향한다. 분교로 향하는 길, 너른 밭에 단호박이 햇볕을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겉이 흠집 없이 반지르르하고 여느 슈퍼에서 본 단호박보다 크기가 1.5배는 큰 거 같았다. 노랗게 영글었을 속을 상상하니 서리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 실행에는 못 옮겼다.

단호박 밭에서 얼마를 걷자 이솝우화에 나오는 나무꾼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작은 오두막집이 나온다. 단출하게 꾸며진 집이었지만 따뜻한 햇볕이 마당을 가득 채웠고 주인의 사랑을 가득 받은 집안 곳곳은 온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비추던 해가 아침가리골에 와서 쉬어가듯 누구든 잠시나마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숲해설가에 따르면 깊은 산골이어서인지 여기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근처 땅 일부를 대기업 회장님이 샀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기가 들어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추측이 오고간다. 이런 곳에 전기가 들어오는 건 재앙일까 축복일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해본다. 도시 사람의 시선으로 늘 전기 없이 사는 분의 삶을 살짝 엿보니 부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다.

아직 3분의 1도 안 왔는데 무수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홍천 경계와 만나는 월둔교까지 가는 동안 또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이 샘솟듯이 나타날까. 문명의 상처와 영광이 비껴지나간 백두대간 트레일을 걸어 보자. 인제로 가자.

▲ 태풍이 지나간 아침가리계곡은 여느 때처럼 맑았다.

▲ 폐교된 조경동분교. 작은 숲속마을 유일한 학교였다.

▲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딴집에서.

INFO
제4회 국민참여트레킹
일시 9월 20일 (토) 10:00~16:00
장소 약수숲길 일원 (후평교 - 왕성교 구간 9Km / 5시간 소요)
모집인원 300명
모집방법 공개모집(선착순/참가비 무료)
접수방법 참가신청서 작성하여 이메일 접수 (ijmanager@baekdutrail.or.kr)
문의 약수숲길 안내센터 (033-461-4453)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042-672-2744)

·참가자 전원 중식, 기념품(물병) 제공
·도착지에서 출발지까지 버스로 이동합니다. (버스편 제공)
·2014년 8월 7일부터 주민등록번호 수집이 불가하여 금회 행사부터 여행자 보험 가입이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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