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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검은 대륙’의 심장
2010년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검은 대륙’의 심장
  • 글 사진·윤인혁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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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혁의 지구 위를 걷다 | ⑥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 난공불락의 고성을 연상 시키는 마웬지봉 전경. 우후루피크와 더불어 킬리만자로를 지키는 산신령 노릇을 한다.

킬리만자로는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남위 3도의 적도 지방에 위치해 있으나 킬리만자로를 이루는 키보봉과 마웬지봉은 1년 내내 만년설 지고 있는 흰 산이라 적도라는 것을 무색케 한다. 


▲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포터들을 엄격히 규제한다. 짐은 20kg까지 지며, 복장도 반드시 양말을 신어야 한다.
키보봉(Kibo, 5895m), 마웬지봉(Mawenzi, 5149m), 그리고 시라봉(Shira, 3778m)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진 킬리만자로(Kilimanjaro)는 평균해발 1000m 이상의 광야가 어림잡아 4800m 이상의 고도까지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북서에서 남동에 이르는 60㎞의 주능선이 자리하고 있다.

산행은 각 루트별로 차이가 있으나 적게는 5일, 많게는 7일 정도가 걸린다. 그렇지만 가이드와 포터의 도움을 받으면 정상까지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다. 마랑구(Marangu)루트, 일명 코카콜라 루트(누구나 쉽게 마실 수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가 비교적 수월한 전통 루트로 산장에서 숙박하며 산행한다. 마차메(Machame), 시라(Shira), 음웨카(Mweka), 롱가이(Rongai) 등의 루트는 마랑구루트와는 달리 텐트에서 캠핑을 하며 산행하므로 좀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킬리만자로는 3~5월의 대우기와, 10~11월의 소우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기에 등반이 가능하다. 물론 대우기와 소우기에도 등반이 가능하나, 정상 부근에서 천둥 번개를 동반한 악천후를 만날 수 있으므로 가능하면 피해서 등반하는 것이 좋다.

전 루트의 산림과 산군은 매우 아름답고 인상적이며 장엄한 풍광도 수없이 펼쳐진다. 인도양 연안에서부터 평평하게 전개되다가 우뚝 솟은 거대한 규모와 높이는 그 지역 특유의 기후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초원이나 동물 생태뿐 아니라 등반 조건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3500~3800m에 이르는 고도에서만 볼 수 있는 세네시오(Senesio)는 킬리만자로의 이 고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이어서 킬리만자로를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통하기도 한다. 이번 호에는 킬리만자로의 대표적인 코스인 마랑구루트를 소개한다.

모든 길은 아루샤에서 시작한다

▲ 랑구게이트부터 만다라산장까지는 열대우림 속을 걷는다.
킬리만자로는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쳐 있지만, 실제로는 탄자니아에서 모든 등반 활동이 이루어진다. 동아프리카의 길이 시작되고 끝을 맺는 케냐의 나이로비공항에서 킬리만자로 등반의 전진기지 격인 탄자니아 제2의 도시 아루샤까지 차로 적어도 7~8시간이 걸린다.

나이로비공항을 나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차를 달리면 아프리카 정취를 담뿍 느낄 수 있는 사바나 초원과, 초원을 가로지르며 양 떼를 몰고 가는 마사이족. 그들이 살고 있는 마사이 빌리지 등을 보며 아프리카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중국자본이 들어와 나이로비~아루샤간 도로확장 공사를 하고 있어 중국 어딘가의 공사 현장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공사가 끝난 후 어떤 아프리카가 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케냐와 탄자니아의 국경인 나망가 게이트(Namanga Gate)를 걸어서 건넌다. 국경 마을에 흔히 있는 국경 군인도 없다. 간단한 수속만으로 입출국을 마칠 수 있다. 원래 이 땅의 주인인 마사이족들은 유유히 국경을 넘나들며 여전히 주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탄자니아 제2의 도시 아루샤(Arusha)는 예전에 탄자나이트라는 원석을 가공해 무역하며 교통의 요지로 번성했는데, 요즘은 킬리만자로, 세렝게티-응고롱고로국립공원으로 가는 전진기지와 교통의 요충지로 잘 알려져 있다. 15시간 이상의 비행, 8시간 이상의 차량 이동 후에 맞이하는 아루샤에서의 하룻밤은 그야 말로 꿀맛 같은 휴식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저 두 다리 쭈욱 펴고, 평평하고 푹신한 곳에 눕고 싶은 생각뿐.

킬리만자로의 품으로!

▶ DAY1 : 아루샤→마랑구게이트(Marangu Gate, 1800m)→만다라산장(Mandara Hut, 2750m)<산행거리 약 10km, 산행시간 약 4시간>

▲ 누군가가 세웠을 케른. 킬리만자로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아루샤에서 산행 출발지인 마랑구게이트(Marangu Gate, 1800m)까지는 차량으로 약 2시간이 걸린다. 비교적 비옥한 옥토를 품고 있는 아루샤와 모시(Moshi) 주민들은 철따라 해바라기, 옥수수, 커피 등을 심고 수확하며 킬리만자로의 축복을 누리고 있다. 보통 오전 8시나 9시경에 아루샤를 출발해서 늦어도 11시 전에는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한다. 마랑구게이트에 가까워 오면 자연히 고도가 높아지고 간간히 비구름이 게이트 주위를 감싸고 있기도 한다.

마랑구게이트에는 늘 많은 인파로 북적인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일감 못 잡은 포터들, 일감을 잡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와 짐 주위에 모여 있는 포터들, 등반 가이드, 요리사, 대행사 직원들, 관리공단 직원들, 그리고 등반객들까지.

보통 등반객 1명당 2~3명의 현지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등반객 2명이 6일 일정으로 킬리만자로의 마랑구루트를 등반한다 치면 가이드 1명, 요리사 1명, 포터 4명 이렇게 총 6명의 현지 스텝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등반 루트에 따라 캠핑장비가 추가되므로 포터 수는 늘어 날 수도 있다.

마랑구게이트에 도착하면 우선 가이드가 짐을 포터에게 나누어 주는 작업을 하는데 등반객 개인의 짐뿐만 아니라 등반중 먹을 식량과 연료 등을 함께 배분한다. 이때, 현지 대행사에서 나온 직원은 등반 퍼미션을 신청하고 발급을 받는다. 미리 미리 해두면 좋을 것을 아직까지 선 결제·발급 시스템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예전엔 입산료를 현찰로만 받았는데 2009년부터 신용카드로도 결제하고 있다. 이래저래 적어도 1시간 30분은 마랑구게이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관리사무소에서 입산허가와 함께 등반객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기입하고 나서야 등반에 나설 수 있다.

킬리만자로국립공원은 포터의 규제가 엄격하다. 포터들은 반드시 신발과 양말을 착용해야 하는데, 이를 어길시 국립공원 레인저에게 얻어맞는 일도 있다(실제로 목격했음). 그만큼 국립공원 관리가 철저하다는 말이다.

킬리만자로의 모든 루트에는 런치 포인트가 있다. 그 중 마랑구루트에는 의자와 탁자가 있고 화장실까지 있다. 하루에 걷는 시간이 점심 먹는 시간 포함해서 5~6시간이니 여유 있게 가다가 바람과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맛있는 점심 도시락을 먹고 또 낮잠 한숨 즐길 수 있다.

마랑구게이트와 만다라산장 사이에 있는 런치 포인트에서는 반드시 안개비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래도 고도가 어중간 하다 보니 항상 구름이 걸려 있고, 이 구름이 걸려 있는 곳에서 점심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점심 도시락은 출발 당일 아침에 요리사가 정성 들여 준비한다. 메뉴는 샌드위치, 닭튀김, 삶은 달걀, 과일, 비스킷, 초콜릿, 주스 등 영양과 맛 그리고 포만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준비한다. 매일 아침 출발하기 전에 등반 가이드가 챙겨다 준다.

▲ 킬리만자로 정상으로 가는 관문인 마랑구게이트 전경.
마랑구게이트에서 만다라산장까지는 열대우림지대로 급격한 오르막이 없어 천천히 고도가 높아지며 길도 아주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정표도 잘 되어 있다. 만다라산장은 숲속에 들어가 있어 더 없이 푸근하다.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고, 6인용과 4인용 숙소가 주를 이루고, 등반객이 몰리는 시즌에는 식당 다락방에서 20명 정도가 숙박할 수 있다. 손님용 숙소와 식당엔 태양열을 이용한 전등이 있어서 불을 밝힐 수가 있다. 민감한 사람은 만다라산장에서부터 고소를 느낄 수 있다.

▶ DAY2 : 만다라산장(Mandara Hut, 2750m)→호롬보산장(Horombo Hut, 3790m)<산행거리 12km, 산행시간 약6시간>

▲ 하나의 숙소에 두개의 방이 앞뒤로 있다. 숲속에 위치한 아늑한 만다라산장.
오전 6시경이면 산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님(현지스텝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손님이다)의 시중을 드는 포터가 “Good morning, Wake up!”이라는 인사와 함께 조그마한 플라스틱 그릇에 따뜻한 물을 담아 문 앞에 놓아둔다. 이 물로 손도 씻고, 세수도 하면서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는 뜻이다. 철저한 유럽 스타일의 시중들기다. 포터는 단순히 짐을 지는 일부터 시작해서 손님 시중들기까지 도맡아한다. 포터가 서브가이드를 거쳐 가이드로 올라가는 데 최소 5~6년이 걸린다. 물론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 스텝들이 미리 잡아놓은 자리에 앉아 있으면 식사를 서브해 준다.
이 때쯤이면 하늘은 떠오르는 태양으로 인해 이미 붉은 광장을 이루고 있다. 부지런한 등반객들은 카메라를 들고 나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붉은 광장의 아름다운 정경을 담는다. 숲속에 들어가 있는 만다라산장은 일출과 일몰의 풍광이 뛰어 나지는 않지만, 숲속 특유의 평온함과 넉넉함으로 인해서 온화한 기운을 뿜어낸다. 특히 이른 아침 동이 터 올 때의 천지를 뒤덮은 공기의 맛은 만다라산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식이다.

아침과 저녁 식사는 산장에 있는 식당에서 하게 된다. 등반객이 많을 때에는 서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스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일어난다. 저녁 식사는 오후 5시부터 자리를 맡은 순으로 시작되고, 아침은 보통 오전 6시부터 시작된다. 수프로 시작되어 메인음식, 그리고 과일과 차로 이어지는 코스요리의 향연이다. 식사 후 점심 도시락을 배낭에 챙겨 넣고, 물통에 물을 채우고 개인 짐을 챙겨 포터에게 넘겨주면 비로소 출발 준비가 끝난다.

네팔이나 기타 아시아 지역의 포터들과는 달리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를 오르내리는 포터들은 짐을 머리에다 이고 다닌다. 머리에다 짐을 이고 가다가 힘이 들면 어깨에 걸치기도 한다. 킬리만자로의 포터들은 개인당 20kg만 지게 되어 있다. 산 입구는 물론이고 각 산장에는 저울이 있어 언제든지 지고 있는 짐을 달아보고 20kg이 넘을 때에는 등반 가이드와 관리공단 직원에게 컴플레인을 할 수 있다.

맨 앞의 가이드를 선두로 하여 일렬로 산행을 한다. 등반객들은 절대 가이드 앞에 나서서 걸어가지 않는 것이 킬리만자로의 불문율이다. 킬리만자로 가이드의 경력은 최소 7년 이상의 베테랑들이다. 일 년에 킬리만자로 정상을 15번 이상씩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들에겐 수많은 등반객과 함께 하면서 치열하게 얻은 노하우가 있다. 가이드들이 이끌어 주는 대로 하면 된다. 가이드는 절대 서두르지 않는다. “Pole, Pole.(천천히, 천천히.)” 걸을 때에는 카멜레온처럼 엉금엉금, 쉴 때에는 바닷가에 휴가 온 사람처럼 여유 있게. 말 그대로 산행 자체를 즐기는 것을 주문한다. 천천히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고소적응이 되고, 여유 있게 지내면서 정상 등정에 대한 스트레스도 덜게 되는 것이다.

3000m를 지나면 거짓말처럼 나무의 높이가 낮아진다. 그리고 시야가 트인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5149m의 마웬지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괴한 성(城)처럼 생긴 마웬지봉. 사실 생김이나 카리스마에선 우후루피크 보다 앞선다. 운무까지 어우러지면 흡사 스코틀랜드의 고성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웬지봉을 눈요기 삼아 런치 포인트에 도착하면 멀리 발 아래로 구름이 깔려 있다. 이미 고도가 상당히 올라와 있는 것이다.

런치 포인트를 지나면 킬리만자로에서만 볼 수 있는, 아니 킬리만자로의 3500~3800m 구간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 세네시오가 나타난다. 킬리만자로(마랑구루트)를 등반한 등반객이라면 반드시 증명사진처럼 찍었을 나무다리와 세네시오를 거쳐 산허리를 완만하게 걷다보면 능선 너머로 킬리만자로로 정상인 우후루피크가 있는 키보봉이 보인다.

▲ 호롬보산장의 일몰 운해.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90m)은 오다가다 반드시 들르게 되는 요충지다. 만다라산장과 키보산장(Kibo Hut)의 배가 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6인용, 4인용 숙소와 식당의 다락방까지 하면 총 100여 명의 등반객을 수용할 수 있다.

▲ 호롬보산장 가는 길의 런치 포인트. 몇 개의 테이블과 화장실이 있다.
만다라산장과 시설면에서 동일하지만 호롬보산장의 최대의 장점은 일몰과 일출의 명장면을 지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구름 위의 고도에서 바라보는 일몰과 일출, 구름 위로 펼쳐지는 붉은 색의 향연, 마웬지를 순식간에 핏빛 와인색으로 바꿔 버리는 마술이다. 해가 사라진 후엔 어김없이 별이 하늘의 주인공으로 나타난다. 검은 하늘이 더 이상 검은 하늘일 수 없는 킬리만자로의 저녁 하늘, 무섭도록 뿌연 밤하늘, 별 자리를 보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시선을 빼앗아 버리는 수많은 유성. 이곳은 바로 킬리만자로의 중간 지점 호롬보산장이다.

호롬보산장의 등반객들은 몇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정상에 갔든 못 갔든 킬리만자로 등반을 마치고 검게 그을린 얼굴로 즐겁게 수다를 떠는 부류, 등반을 마치고 호롬보산장까지 겨우 내려와 멍하게 있는 부류(그러나 이들도 다음날 아침이 되면 금방 쌩쌩해진다), 오늘 호롬보산장에 도착하여 고소적응과 등반 걱정에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있는 부류, 다음날 키보산장까지 등반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욱 느리게 행동하는 부류들까지. 올라가는 사람에겐 행운을 빌어주고, 내려가는 사람에겐 진심을 다해 축하해주는 곳. 이곳은 호롬보산장이다.

▲ 호롬보 가는 길. 고도가 높아지며 나무가 허리 아래로 낮아진다.

▶ DAY3 : 호롬보산장(Horombo Hut, 3790m)→Hill of 4000m→호롬보산장 <산행거리 4km, 산행시간 약 3~4시간>
호롬보산장은 해발고도 3790m다. 이 정도의 고도면 고소증세가 올 수 있는 고도다. 고소증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가 없다. 오직 높이 올라온 사람만이 알게 되는 병. 정확히 말하면 고소증은 병은 아니다. 인간의 신체라는 것이 어찌나 억척스러운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그 환경이 맞추어 살아 갈 수 있게 모든 것이 맞추어 진다. 당연히 높은 곳에 올라가도 적응을 한다. 그런데 적응력에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일찍 적응하게 되면 고소증세가 없는 것이다. 반면 늦게 적응이 되면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그 부작용이 바로 고소증세다. 두통·매스꺼움·무기력 등이 가장 기본적인 증세이고, 좀더 진행이 되면 뇌수종·폐수종 등 중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고소증세에는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다. 다만 증세를 예방할 수 있는 예방약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두통약이다. 아스피린, 타이레놀 등의 두통약은 머리가 멍한 기운이 있을 때 복용한다. 요즘 들어 많이 복용하는 것이 백내장 치료제인 다이아막스다. 아침에 반알 저녁에 반알 복용하는데, 보통 등반 시작하기 3일 전부터 시작해서 등반 기간 내내 복용한다. 비아그라도 고소 예방약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다이아막스, 비아그라는 모두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약이다. 고소증세를 예방하기 위해서 최고의 방법은 물을 많이 마시면서, 몸(특히 머리)을 따뜻하게 하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이다. 고소증세가 심해지면 별다른 약이 없다. 제일 좋은 약은 하산하는 것이다. 현재의 고도에서 1000m를 내려가면 언제 그랬냐는듯 거짓말처럼 깨끗해진다.

▲ 호롬보 가는 길. 고도가 높아지며 나무가 허리 아래로 낮아진다.
산중의 휴식일. 하루를 느긋하게 쉬면서 고소적응도 하고, 정상 등정을 위해서 체력도 비축하는 날이다. 오전 중엔 느긋하게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고 가이드와 함께 마웬지봉과 키보봉이 보이는 4000m 언덕까지 다녀온다. 물 한통과 간단한 간식을 챙겨 넣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 킬리만자로의 명물 세네시오 군락지가 펼쳐진다. 마웬지봉과 세네시오 군락지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태고의 시작점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얼룩말 바위(Zebra Rock)앞에서 사진 한 컷 찍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언덕의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호롬보에서 언덕까지 약 2시간30분이 소요된다. 언덕에 다다르면 키보(5895m)와 마웬지봉(5149m)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키보산장에서 길만 포인트까지의 등반루트가 훤히 보이고, 롱가이 루트도 보인다. 마웬지 써킷루트(Circuit Route)도 훤히 들여다보인다. 킬리만자로의 여러 포인트 중 전망이 가장 뛰어난 곳이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한국과의 시차(한국보다 6시간이 늦다) 탓에 일찍 잠자리에 들면 반드시 자정 근처면 눈이 떠진다. 가능하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뒤로 늦추는 것이 숙면을 취하는 방법이다.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거나, 밤하늘을 감상 한다거나, 책을 읽는 다거나, 카드놀이를 한다거나,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든다. 산장마다 훌륭한 화장실이 있으나 밤에 다녀오려면 약간 멀다. 잠자리 근처에 소변을 처리 할 수 있는 통을 준비하면 추위에 떨면서 화장실까지 다녀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그러나 밤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보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별 볼 일 있는’ 멋진 옵션이다.

▶ DAY4 : 호롬보산장~키보산장((Kibo Hut, 4705m)<산행거리 16km, 산행시간 약 6시간>

▲ 킬리만자로의 명물 세네시오.
호롬보산장을 출발해서 몇 개의 능선을 넘으면 키보봉과 마웬지봉이 펼쳐진 사막이 나타난다. 덩그러니 서있는 키보봉과 마웬지봉 그 사이로 나있는 한 줄기의 외길. 그리고 점점이 걸어가는 포터와 등반객들. 마웬지봉에 구름이라도 덮일라치면, 영락없는 외계행성의 모양이다.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되는 ‘Last Water Point’. 이곳을 지나면 물이 없다. 키보산장에서 쓰는 모든 물은 이곳에서 지고 와야 한다. 포터들은 키보산장에 도착하면 다시 물통을 지고 내려와 물을 떠간다. 킬리만자로에서 쓰는 물통의 색깔은 대부분이 노란색이다. 멀리서 봐도 머리에 노락색 통을 지고 올라오는 이들이 구분된다. 그동안 식량이 많이 줄었을 것이므로 식량을 지던 포터가 물 길어 올리는 것을 전담하기도 한다.

산중의 대장은 바로 가이드다. 대부분의 포터들은 가이드와 친분이 있거나 혹은 동네 이웃들이다. 자기와 친분이 있는 포터들로 포터수가 채워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른 파티의 포터들을 쓰는데, 그 중에도 포터 대장이 있어서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오늘 포터 몇 명!” 하고 외치면 조직의 대장이 와서 인원수를 채워준다. 물론 거기에 대한 커미션을 챙기는 것도 물론이다. 가이드와 친분이 있는 포터들은 그나마 밥을 지을 때 차라도 한 잔 마실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산중에서 식사를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손님들 식사를 준비한 후, 버너 등을 빌려서 밥을 해먹고 반납하는 식이다.

산장에서의 잠자리도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용 숙소에 돈을 주고 들어가야 한다. 그나마 이 돈도 없어서 바깥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노숙하는 포터들도 여럿 보았다. 대장의 눈에 들기 위해서라도 시키는 일은 군말하지 않고 하는 것은 불문율이다. 당연히 가서 물을 길어 오라면 왔던 길 내려가 물을 길어 올 수밖에.

키보산장엔 50명 정도가 묵을 수 있는데, 커다란 건물 1동에 방 4개가 있다. 각 방엔 2층 침대가 있고, 각 방당 10명에서 12명까지 묵을 수 있다. 키보산장은 현재 증축중에 있는데, 조만간 더 많은 수의 등반객이 묵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등반객들은 키보산장 특유의 음침한 기운과 4705m의 고도가 어우러져,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에 키보산장에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오후 1~2시경에 산장에 도착해 잠깐 쉬다가 이른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 당일 저녁 11시경에 일어나 요기를 하고 늦어도 자정에는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키보산장 뒤로 우뚝 서있는 키보봉. 그 정상 우후루피크(5895m), 눈앞에 올라갈 길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 DAY5 : 키보산장→길만포인트(Gilman Point, 5681m)→우후루피크(Uhuru Peak, 5895m)→호롬보산장 <산행거리 20km, 소요시간 약 14시간>

▲ 킬리만자로 정상인 우후루피크 전경. 하얀 만년설을 돌아야 정상이 나온다.
“킬리만자로의 서쪽 봉우리 가까이엔 얼어붙은 한 마리 표범의 시체가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은 무엇을 찾고 있었던가? 아무도 설명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서문 중에서

킬리만자로 정상가는 길은 어떠한 감상적인 표현이 통하지 않는 길이다. 처절한 삶의 현실이 있고, 혹독한 추위와 바람이 있을 뿐이다. 밤새 여기저기서 끙끙거리며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잔 것도 아니고 안 잔 것도 아니다. 지구상 수많은 곳을 다녀 봤지만, 키보산장만큼 몸과 마음을 주눅 들게 하는 곳은 없다.

저녁 11시경이면 따뜻한 침낭의 온기를 떨치고 일어나야 한다. 약속한 시간에 어김없이 뜨거운 물과 여러 가지 종류의 차 그리고 간단한 요기 거리가 서브되어 온다.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 검은 스텝들은 좁고 차가운 식당에서 잠도 자지 않고 준비했으리라. 물통에 뜨거운 물 채우고, 간식거리는 주머니마다 찔러 넣고(정상 등반시 간식은 반드시 옷에 챙겨 넣어야 한다. 배낭에 넣으면 차갑기도 하거니와, 지치기 때문에 배낭에서 간식을 꺼낼 수 없다) 카메라의 배터리를 따로 빼서 주머니에 넣고, 카메라는 품안에 정성들여 품고, 배낭 둘러매면 출발 준비 끝이다.

▲ 키보산장 가는 길은 킬리만자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사막을 연상 시킨다.

키보산장의 모든 팀이 거의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는 까닭에, 우후루피크로 올라가는 길에 ‘커다란 뱀’이 한 마리 나타난다. 길게 늘어선 헤드랜턴이 S자 혹은 C자 등 여러 대열로 모였다 흩어진다. 킬리만자로는 걷기 시작할 때보다 올라가면서 추워진다. 특히 동이 터 올 무렵 길만포인트(Gilman Point, 5681m)에 도착하는데 그 추위가 정점에 이른다. 적도의 메마르고 차가운 칼바람이 체감 온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이미 체력은 바닥을 드러나고 있을 터이다. 키보산장을 출발해서 분화구의 능선머리에 해당하는 길만 포인트까지 5~6시간을 버티느냐 못 버티느냐가 정상 등정의 관건이다. 등반객 누구나 춥고, 졸리고, 머리가 아프다. 이 고생을 참고 견디는 사람만이 그 동안의 긴 여정을 보상받는 것이다.

▲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최고봉 킬리만자로 정상.
길만 포인트에 다다를 무렵이면 동이 터온다. 비스듬한 각도로 멀고 깊게 비치는 아프리카의 아침 해는 킬리만자로 구석구석을 비추며 떠오른다. 길만 포인트를 뒤로 두고 시계 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동안 밑에서 보아왔던 분화구의 가장 자리를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길만 포인트의 고도가 5681m, 최고 정점인 우후루피크가 5895m. 두 곳의 고도차는 214m다. 당연히 오르막이 있을 것인데, 대부분의 등반객들이 길만 포인트만 도착하면 정상에 쉽게 가는 줄 아는데, 아주 큰 오산이다. 힘든 하이라이트는 이곳부터다. 키보산장에서 길만 포인트까지 급격한 오르막이었다면, 길만포인트에서 우후루피크까지는 정상이 뻔히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멀리 정상이 보이는데, 가도 가도 간격은 좁혀 지지가 않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 뚜렷한 길과 이정표는 킬리만자로의 장점이다.
한발 한발 아프리카의 일출과 분화구 왼쪽으로 펼쳐져 있는 킬리만자로의 빙하를 감상하면서 걷다보면 바로 검은대륙 아프리카의 정점 우후루피크다. 5895m. 단순히 숫자의 의미가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내 발로 걸어서 올라온 곳이다. 멀리서만 봐왔던 킬리만자로의 빙하가 바로 눈앞에 있다.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일 것이다. 정상에는 정상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하산길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내가 여길 어찌 올라 왔던가!”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고되다. 길만포인트에서 키보산장까지 화산재로 이루어진 구간인지라 먼지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5~6시간에 걸쳐 올라갔던 길이 그래도 1~2시간 이면 내려온다. 다시는 킬리만자로를 찾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정도로 진절 머리가 나는 구간이다. 키보산장에 도착하면 팀의 요리사가 시원한 주스를 한 컵 가득 따라준다. 메말랐던 입안에서 침이 솟고 이제 다 내려 왔다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다. 먼지 잔뜩 묻은 옷을 벗고, 한두 시간 눈을 붙인다.

11시 경이면 키보산장을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호롬보산장에서 키보산장으로 올라오는 새로운 등반객들이 도착하기 전에 침대를 비워줘야 청소도 하고 새 손님 맞을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가는 길이지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려갈수록 고소로 인한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자연히 걸음도 빨라진다. 가끔가다 되돌아 키보봉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은 그 곳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만이 느끼는 감동이다. 황량한 고원 사막도, 라스트 워터 포인트도 새롭게 보인다.

오고 가는 길목인 호롬보산장에 도착하면, 정상에 다녀온 후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부류에 분류가 된다. 이 날은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어제의 긴장된 밤을 지나서 오늘은 마음 편히 푸욱 잠을 잘 수도 있다.

킬리만자로엔 표범이 없었다.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와 녹아내리는 하얀 빙하, 그리고 찬바람뿐이었다. 배낭과 낡은 등산화를 신고, 세상의 길을 걸어올라 갈 때, 비로소 내 몸속으로 충만한 자유가 열린다. 살아서 내 두 다리로 걸어야 하는 이유다.

▲ 난공불락의 고성을 연상 시키는 마웬지봉 전경. 우후루피크와 더불어 킬리만자로를 지키는 산신령 노릇을 한다.

▶ DAY6 : 호롬보산장→마랑구게이트→아루샤 <산행거리 22km, 소요시간 약 6~7시간>
킬리만자로를 등반하고 난 후엔 함께 등반한 동료들과 관계가 서먹해지는 순간이 있다. 마랑구게이트에 내려오면 산행종료를 알리는 신고를 한다. 그리고 가이드가 우후루 정상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에게는 금색띠가 둘러진 인증서(Certificate)를 주고, 길만포인트까지 다다른 사람에게는 녹색띠가 둘러진 인증서를 등정 시간까지 기록하여 전달해준다. 함께 간 동료 중 정상을 다녀온 이와 다녀오지 못한 이가 바로 이 인증서로 분간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 했으니까 모두가 정상에 다녀온 것이다”라고 말은 하지만, 정상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볼라치면, 뭐라 위로의 말을 해줄 수가 없다.

하산 신고를 마치면 포터들은 언제 내려 왔는지 새 옷으로 갈아입고, 일행을 기다린다. 그들의 노동이 돈으로 보상 받는 시간이다. 킬리만자로 맥주(Kilimanjaro Beer)는 아루샤와 모시에만 파는 이 지역 대표 맥주다. 맥주 이름 자체가 킬리만자로 맥주다. 차가운 킬리만자로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면서 등반은 끝난다. 찬 맥주가 목구멍을 넘어 갈 때의 짜릿함이란!

6일간 우리를 안 보이는 곳에서 도와준 포터들, 우리보다 일찍 일어나서 늦게 잠들며 식사를 책임져준 요리사, 갖은 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새끼 가이드(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가이드로 성장한다). 이들이 있었기에 킬리만자로를 안전하게 산행하고 또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다. 이들에게 킬리만자로란 노동이 있는 생계의 산이다. 약간의 팁을 지불하고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자리가 허락하는 한 모두 차에 태워 모시를 거처 아루샤로 향한다.


윤인혁 | 경희대산악부 OB. 수차례의 히말라야 고산등반, 100여 차례의 트레킹을 하며 70여 개국을 여행했다. 트레킹·고산등반 전문여행사인 ‘세븐써미트’를 한국과 네팔에서 경영하고 있다. horgal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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