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네 카레와 판포 포구
노마네 카레와 판포 포구
  • 글 사진 최상식 기자
  • 승인 2014.08.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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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씨의 캠핑 이야기

온평리에 가면 한 팀 정도 앉을 수 있는 맛있는 카레집이 있다. 토마토를 삶아 국물을 내고 닭고기가 들어간 그 중독성 강한 카레를 먹어보고 나서 가끔 카레가 먹고 싶으면 늘 노마 누나의 카레를 떠올린다. 그 카레는 정말 내가 먹어본 카레 중에 최고였다.

누나는 동백꽃이 피던 2월의 어느 날 가을쯤이면 돌아온다는 얘길 남기고 긴 여행을 떠나서 지금은 그 기간 동안 다른 지인이 옹기종기 밥상을 차려낸다. 한국을 떠난 누나의 여정을 페이스북으로 종종 소식을 접하고 있는데 네팔과 인도를 시작으로 터키를 지나 지금은 불가리아 어디쯤을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제주는 장마도 끝나고 뜨거운 여름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더울 때면 노마 누나와 아름이와 하라 씨와 함께 캠핑을 즐기고 놀았던 지난해 판포 포구의 여름날이 생각난다. 제주에 살다보면 육지와는 다른 거리 개념이 생기는데 제주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넘어오는 일은 시간을 내어 육지로 여행을 가는 것만큼 다른 느낌의 풍경을 만나러 오는 시간이다. 그렇게 멀리서 시간을 내어 왔으니 즐겁게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멀리 온평리에서 판포까지 캠핑을 하자며 놀러온 그녀들은 들뜬 기분으로 즐거워 보였고 우리는 고기를 구워 점심을 먹고 난 뒤에 근처에 있는 판포 포구로 바로 놀러갔다. 오후의 햇살이 아직도 뜨겁게 열기를 쏟아내고 있던 판포의 바다는 유난히 눈부시게 반짝거렸고 물 속으로 들어가 스노클링을 하다보면 물속으로 비춰드는 햇살이 바다 밑의 하얀 모래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해가 기울어가는 방파제 담벼락에 그늘이 지고 우리는 담벼락에 기대어 캠핑 매트를 깔고 누워서 스마트폰의 음악을 켰다. 젖어있던 머리를 수건에 말리고 방파제 담벼락에 앉아 일렁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있으면 여름을 머금은 바람이 내 마음을 쓰다듬고 지나감이 느껴진다. 그 순간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즐겨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마음의 평온과 행복의 시간을 나 혼자서 만끽한다. 그렇게 이어폰을 끼고 그 조그만 포구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눈앞의 세상은 평화롭다.

제주에 살고 있는 지인들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해변보다는 물놀이하기 좋은 이런 작은 공간을 찾는 편이라서 오며가며 심심치 않게 지인들을 마주친다. 해가 바다에 닿을 무렵 나와 동쪽의 그녀들도 잘 알고 있는 성진이 형을 만나 포구에 차려진 마을의 계절 음식점에서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잠시 앉아서 맥주를 마신다. 맥주를 마시다가 바다에 떨어지려는 석양빛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녀들에게 맥주잔을 잠시 내려놓고 방파제에 가서 사진을 담자고 얘기했다. 석양빛에 그녀들이 보여준 실루엣들은 낭만적인 시처럼 아름다웠고 풍경은 마치 영화의 화려한 엔딩처럼 곱게 물들었다. 내가 마법을 부릴 수만 있다면 그 석양이 배경이 되는 그 풍경으로 촘촘히 반짝이는 별들을 그려주고 싶을 만큼 그녀들이 담긴 그 날의 사진은 예뻤다.

어둠이 내리고 한치 배의 집어등이 비양도 주변으로 길게 불을 밝힐 즈음에 우리는 다시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에 우리가 무슨 얘길 하면서 즐겼는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이렇게 뜨거운 여름날이 돌아올 때면 나는 소소하면서 즐거웠던 그날의 여름을 떠올리곤 한다.

ps. 노마 누나! 여름의 한가운데서 가을이 오길 기다립니다. 가을쯤 돌아오겠다던 누나가 돌아오면 동생들과 누나와 함께 맛있는 누나의 카레와 짜이를 마시면서 맛있는 수다를 나누고 싶습니다. 남은 여행도 즐겁게 잘 마무리하시고 건강 잘 챙겨가면서 여행 다니시길 바랍니다. 가을의 제주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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