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의 절정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럴 땐 떠나자, 깊은 숲 맑은 물을 찾아서. 이름난 계곡이야 이미 만원이니 이름 없는 계곡을 찾아보자. 나만의 계곡을 찾는 것이다. 성공률이 높진 않겠으나 성취감은 대단할 것이다.
계곡의 미덕에 대하여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성큼 넘어가면서 여름도 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낮 동안 달궈진 대지는 여전히 뜨거워 밤에도 25도를 넘는다. 당연히 이즈음의 캠핑은 더위를 피하거나 식히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아직 휴가가 피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까닭에 8월의 산과 바다는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산에서는 숲이 주는 그늘을 만끽할 수 있고, 바다라면 시원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더위를 피해 캠핑을 즐기려는 당신에게, 계곡 캠핑을 권한다. 숲의 그늘과 물놀이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으므로.
두 번째, 비가 오면 위험하다. 특히 하천이 길고 양쪽에 산을 낀 계곡은 더욱 그렇다. 산이 험할수록 골이 좁고 깊어 물이 쉽게 늘어난다. 게다가 산지는 내리막 경사이기 때문에 불어난 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흐른다. 계곡에서 야영지를 선택할 때는 물이 흘러간 가장 높은 흔적보다 위쪽에 있도록 하고, 대피할 수 있는 고지대와 대피로가 확보된 곳을 선정하며 또한 낙석 위험과 산사태 위험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예전에는 라디오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 실시간 라디오 중계가 가장 빠르지만 소방방재청의 재난징후 제보 시스템 앱 ‘안전디딤돌’ 을 깔아두는 것도 유용하다. 기타 물놀이 할 때 조심할 내용은 저 앞 ‘시즌 테마’를 눈여겨 보시길.
계곡을 찾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강원도로 떠나고 싶었다. 산이 많아 지평선 없는 우리나라지만 ‘산’ 하면 강원도이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이런저런 산들을 헤아리던 끝에 떠오른 이름은 산 이름이 아닌 ‘살둔’이었다. 이제는 이미 유명해져버린 ‘3둔 4가리’의 하나인 살둔. ‘살둔’이라는 이름에는 ‘산장’과 ‘분교’가 으레 따라 붙는데, 이제는 두 곳 모두 캠핑장이 되었다. (84~85쪽 참조) 하지만 우리가 살둔으로 떠난 건 캠핑장 때문이 아니라 계곡과 이를 둘러싼 풍경 때문이다. 몇 해 전 겨울 찾았던 살둔분교에서 순백의 풍경에 반했고, 이태 뒤 여름에 찾았던 살둔분교 옆 계곡에서의 물놀이는 짜릿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자. 살둔산장과 살둔분교는 개인산(1,341m) 자락 맨 끝, 반도처럼 툭 불거진 곳에 있다. 이곳을 휘감는 계곡이 살둔계곡이다. 살둔산장과 살둔분교 옆이어서 살둔계곡이라 부르는데, 본래 이름은 미산계곡이다. 미산계곡은 물 맑기로 소문난 인제 내린천의 최상류 지역 계곡 이름이다. 캠핑이 붐이어서인지, 미산계곡 곳곳에는 크고 작은 캠핑장과 야영장들이 저마다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을 받는 곳도 있지만 선착순인 곳도 꽤 있으니 서둘러 일찍 출발해 계곡을 감상하며 적당한 캠핑장을 찾는 것도 방법이겠다. 우리가 염두에 둔 계곡은 미산계곡의 지류, 문암골을 흘러 미산계곡으로 흘러드는 이름 없는 계곡이었다. 사실은 지난여름에 와보고는 다시 오리라 점찍어둔 계곡이다. 우리는 ‘무명계곡’이라 부르기로 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우리는 미산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 살둔에 닿았다.
놀 때는 아이처럼
터는 살둔분교에 터를 잡기로 했다. 하필 살둔산장은 쉬는 날이었다. 다만 산장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곳곳을 둘러봤다. 꽃 피는 봄부터 순백의 겨울까지 어느 한 계절 아름답지 않은 풍경이 없다. 풍경 좋은 곳 찾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드라마 헌팅 감독들이 이런 곳을 놓칠 리 없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같은 드라마가 여기를 거쳐 갔다. 지금의 더위가 물러간 다음에 다시 찾아 작은 건너방에서 묵으며 살둔의 가을을 감상하기로 하고 나왔다. 이제 해가 지기 전에 사이트를 구축해야 한다. 살둔은 산 속 마을이라 해가 빨리 넘어간다.
미산계곡이 흐르는 바로 옆으로도 텐트를 칠 수 있지만 우리는 계곡과 조금 떨어진, 한 층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 소식 때문이었다. 일기예보에서는 한때 비가 내리겠다고 했지만 산중의 날씨란 변덕이 심한 법이니까.
볕이 따가워 타프를 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신나는 물놀이. 그날 오후, 해가 어스름해질 때까지 우리는 예닐곱 살 꼬마들로 돌아가 원도 한도 없이 물놀이를 즐겼다. 여름엔 역시 계곡이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