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교에서 바라다 본 청계광장 방향. 건물 숲 사이로 흐르는 청계천에는 서울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청계광장에서 고산자교까지 눈맛, 입맛 모두 즐거운 산책
맑고 깨끗한 하천이란 의미의 청계천(淸溪川). 그의 원래 이름은 개천(開川)이었다. 서울 서북쪽에 자리한 인왕산과 북악산의 남쪽 기슭, 그리고 남산의 북쪽 기슭에서 발원해 도성 안 중앙에서 만나 서울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10.84km의 자연하천. 구불구불했던 하천은 조선시대에는 한양의 하수도로, 20세기 후반에는 복개당한 채 자동차 도로로, 그리고 21세기에 다시 생태공원이란 이름으로 복원된다.
▲ 청계광장에서 전국 각지의 특산물이 소개되는 장이 열렸다. |
청계천, 그대의 과거는 어떠했소?
▲ 두물다리 주변 청계천 ‘청혼의 벽’ 앞에서 산책 나온 꼬마들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
청계천 공사를 통해 관료, 군병 등을 제외한 6만 명이 넘는 이들에게 2300여 섬의 쌀을 비롯해 5만 냥이 넘는 돈이 지급되었다고 하니, 한양 빈민들에게 큰 생활자금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관리 소홀로 500년 동안 한양 사람들과 동고동락해 온 청계천은 일개 하수구로 전락하고 만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과 6·25전쟁 이후 청계천 지역은 서울의 대표적인 슬럼가가 된다. ‘하꼬방’이라고 불리는 무허가 판잣집들이 청계천을 따라 마구잡이로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위생과 도심 경관을 개선한다는 이유로 복개계획이 세워진다. 그리고 1971년, 청계천 고가도로 완공과 함께 오랜 세월 서울의 중심을 흐르던 청계천은 땅속으로 묻히고, 도심 경관을 살리겠다는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청계천 위로 들어선 고가도로로 인해 교통 혼잡과 환경훼손 문제가 대두된다.
▲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 모전교로 향하는 길. 도심 속 쉼터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청계천 산책의 출발. |
2005년 서울 시민의 곁으로 돌아오다
자, 본격적으로 청계천 산책을 시작해보자.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 도심 한가운데에서 물줄기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생각만으로도 시원해지는 것 같다. 또 서울 도심에 흐르는 청계천을 걷다보니 문득, 따지고 보면 서울만큼 역사와 문화가 다양한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뿐만 아니라 서울성곽길 등 현대로 넘어오면서 몸집이 커진 서울에는 정말 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담겨있으니까. 과거 조선시대 도성의 중심을 따라 흐르던 청계천 여행, 지금부터 출발!
청계천은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가로질러 왕십리까지 이어진다. 서울을 둘러싼 산에서 내려온 물이 중랑천과 만나 살곶이다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물길의 흐름으로 본다면 서에서 동으로 흐르다가 한강을 다시 만나 다시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새인데 이처럼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은 무려 10.84km에 이른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청계광장에서부터 고산자교까지인 약 5.8km를 소개한다. 이곳에서만도 ‘볼거리’, ‘즐길거리’, ‘얘깃거리’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물론 체력과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중랑천과 몸을 섞는 고산자교부터 뚝섬 서울숲까지 모두 걸어보아도 좋다.
청계천 산책의 시작지점은 동아일보 건물 옆 청계광장이다. 밤이면 예쁜 조명을 받고 다시 태어나는 수변공간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시원한 물줄기의 응원을 받으며 처음 만나는 다리는 모전교. 청계천의 첫 번째 다리이자 가장 짧은 다리다. 조선시대에 과일을 파는 과전(果廛)을 모전(毛廛) 또는 우전(隅廛)이라고도 했는데 이 다리가 바로 그 근처에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
다음은 광통교다. 청계천의 다리 중 가장 큰 다리로 ‘대광통교’, 줄여서 ‘광교’라고도 했다. 원래 위치는 도성의 핵심 간선도로인 종로와 남대문로를 잇는 곳인 지금의 광교 사거리였지만,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해 땅속에 묻혔다가 복원할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도성 최대의 다리로 어가와 사신의 행렬이 지나가는 중요한 교통로였고, 정월대보름 때에는 다리밟기와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를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 시원한 물줄기를 품은 청계천에서 잠시 쉬어가는 시민들. |
▲ 2만여 명의 시민이 소망과 염원을 직접 쓰고 그려 넣은 소망의 벽. |
삼일교부터 수표교, 관수교, 그리고 세운교 뒤편으로는 피맛골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종로는 양반들이 말이나 교자를 타고 행차하는 곳이어서 길 양쪽으로 서민들이 다니는 좁은 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 길이 바로 ‘말을 피한다’는 의미의 피맛골이다. 배경 때문인지 먹을거리 또한 저렴하고 푸짐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서울의 미관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골목을 정비한다며 피맛골도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네가 말을 피할 곳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심시간이 되자 근처의 직장인들이 청계천으로 모여든다. 바람 쏘이러 나온 가벼운 차림의 시민들도 보인다. 굳이 어디론가 떠나지 않아도 전철표 한 장으로 괜찮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세운상가를 지나 배오개다리와 새벽다리를 지나자 반가운 광장시장이 보인다. 광장시장 입구에서 고소한 전 냄새를 맡았다면 녹두빈대떡과 속이 꽉 찬 순대 한 접시 맛보는 것도 좋겠다.
▲ 세운교를 지나 본격적인 시장통이 시작된다. 평화시장 바로 옆으로 헌책방이 몰려있다. |
▲ 동대문의 상징, 평화시장을 청계천 버들다리에서 바로 만날 수 있다. |
조금은 황량한 풍경의 도심에 안겨있는 두물다리를 지나 고산자교에 닿는다. 이번 청계천 산책의 소개는 여기까지다. 안내판이 고산자교에서 뚝섬 서울숲까지 걸어보라고 유혹하지만, 시장통과 서울 도심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여기까지의 코스로도 충분한 듯하다. 다시 돌아가 아까 점찍어둔 시장통 막걸리집을 찾아갈 수도 있고, 동대문 시장에서 시원한 여름옷을 쇼핑할 수도 있다. 언제든 가뿐한 마음으로 청계천을 만나러 가자. 분명 어제와는 또 다른 얼굴로 당신을 기다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