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달래강 따라 사라진 ‘연하구곡’ 찾아서
달래강 따라 사라진 ‘연하구곡’ 찾아서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우리 길 | ⑥ 괴산 ‘산막이길’

▲ 연화담 앞에서 짙은 녹음을 담은 괴산호와 수려한 군자산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왕복 3시간 걸리는 호수 둘레길

괴산과 충주를 적시는 달천은 오누이의 애틋한 전설이 내려와 달래강, 물맛이 달다고 해 감천, 수달이 많이 산다고 수달내 등으로 불린다. 괴산 칠성면 달천 중류에는 수려한 군자산(948m)이 병풍처럼 두른 산막이 마을이 있다. 그곳 오지마을로 들어가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최근에 ‘산막이길’로 말끔하게 단장했다.


▲ 울창 솔숲에 마련된 출렁다리.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 신나게 흔들면서 건넌다.
산수풍광이 빼어난 충북 괴산의 달래강 일대는 유난히 ‘구곡(九曲)’이란 명칭이 많이 전한다. 강물 위로부터 청원 미원의 옥화구곡과 괴산 청천의 화양구곡·선유구곡, 칠성의 쌍곡구곡·갈은구곡, 연풍의 풍계구곡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최근 존재가 알려진 칠성 괴산댐 내의 연하구곡이 추가된다.

산막이 마을이 있는 칠성면 사은리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유배지였을 만큼 멀고 외진 곳이었다. 하지만 깎아지른 바위벼랑에 물안개와 노을이 아름다워 조선 후기 노성도(1819~1893) 선비는 이곳에 구곡을 정하고 ‘연하구곡가’를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연하구곡은 1957년에 완공된 괴산댐에 대부분 잠기고 만다. 1곡인 탑바위와 9곡인 병풍바위 등 일부만 물 위로 나왔는데, 그나마 배를 타야만 찾을 수 있어 그야말로 전설 속의 절경이 되었다. 그래서 산막이길은 사라진 연하구곡을 상상하는 길이기도 하다.

괴산댐에 잠긴 연하구곡
산막이길 들머리는 외사리 괴산댐(칠성댐). 6·25전쟁 중인 1952년에 착수하여 1957년에 완공된 괴산댐은 우리 기술로 세워진 첫 수력발전소로 유명하다. 괴산댐에서 이정표를 따라 15분쯤 걸어 오르면 주차장이 나오고, 여기서 산막이길이 시작된다. 작은 언덕에 올라서면 비학동 마을에서 운영하는 주막이 나온다. 주막 앞에서 수려한 군자산과 풍성한 녹음을 담은 괴산호가 예사롭지 않다. 코를 찌르는 부침개와 막걸리 냄새를 짐짓 모른 채 하고, 서둘러 길을 나서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고인돌 쉼터가 나온다. 큰 바위 생김새가 고인돌을 닮았지만 진짜는 아니다.

▲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섰다는 앉은뱅이 약수.
이곳은 강변 조망이 좋아 예전 사오랑 서당에서 더울 때에 야외수업을 했던 곳이라 한다. 쉼터 앞에는 참나무 연리지가 있다. 나란히 앉아 강변을 바라보던 두 나무가 어느새 한몸이 된 것이다. 같은 곳을 오래 바라보면 몸과 마음이 통하는 모양이다.

이어진 울창한 솔숲에는 출렁다리가 기다리고 있다. 약 100m쯤 이어진 출렁다리에 오르면 말 그대로 몸이 출렁출렁. ‘흔들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지만,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일부러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지른다. 잠시 동심의 세계를 즐기다 내려와 호젓한 강변길을 따르면 연화담. 옛 다랑이논 자리에 작은 연못을 팠다.

연화담 앞의 전망대로 내려서면 괴산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물속에는 연하구곡의 2곡 뇌정암(雷霆巖, 벼락바위), 3곡 형제바위(삼형제바위, 쌀개바위), 4곡 전탄(箭灘), 5곡 사기암(詞起巖), 6곡 무담(武潭, 무당소), 7곡 구암(龜巖, 거북바위), 8곡 사담(沙潭)과 옛 산막이 마을이 잠겨 있지만, 호수는 짙은 녹음만 뿜어내며 아무 말이 없다.

연화담을 지나면 앉은뱅이가 물을 마시고 벌떡 일어났다는 앉은뱅이약수. 참나무에 작은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졸졸 약수가 나온다. 물맛은 나무 수액이 섞여 그런지 아주 달콤하다. 하지만 수액을 내보내야 할 나무 입장에서는 못할 노릇이다. 좀 과하다 싶다. 앉은뱅이 약수 위에 산막이길의 명물인 스릴 데크가 자리 잡고 있다. 스릴 데크는 강 쪽으로 길게 돌출한 지점으로 바닥에 유리를 깔아 짜릿한 고도감이 느껴진다.

나무 계단이 40개라 해서 ‘마흔 계단’과 ‘돌 굴러가유’ 간판을 지나면 진달래 동산. 여기가 복원된 길의 종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발길을 돌리지만, 좀 더 들어가면 산막이 선착장이 나온다. 여기서 배를 타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선착장을 지나면 세 가구가 사는 산막이 마을이다.

▲ 고인돌 쉼터 앞의 연리지. 세 그루 나무 중 가장 오른쪽 나무다.

소재 노수신과 후손 노성도
“그때가 좋았지. 예전엔 물이 얕아 징검다리 건너 마을 드나들었어. 서른다섯 가구쯤 살았던 제법 큰 마을이었지. 댐이 생기며 일부는 잠기고 또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등졌어. 지금은 세 가구에 다섯 명이 전부야.”

산막이 마을 입구 정자나무 앞 평상에 만난 변강식 할아버지는 이야기하는 내내 호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괴산댐이 생기면서 마을로 드나드는 길이 없어지자 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생겼는데, 그것이 지금의 산막이길이다.

▲ 산막이 선착장 부근의 느티나무 휴식터.

마을을 지나면 소재 노수신(1515~1590)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던 곳이 나온다. 노수신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을사사화에 휘말려 오랜 세월 유배당했고, 훗날에는 영의정에 오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연하구곡은 노수신이 정한 것이 아니라, 이곳을 관리하러 온 10대손 노성도(1819~1893)였다. 그는 조상의 유배지를 관리하러 왔다가 수려한 풍광에 홀딱 빠져 이곳에 구곡을 정하고 연하구곡가를 남겼다.

깎아 세운 병풍바위는 별천지니 천장봉 아래서 기꺼이 즐기노라
산은 높고 물은 푸르러서 진경을 이루니
이곳 연하동이 세상 밖 그림일세

-노성도의 ‘연하구곡운(烟霞九曲韻)’

▲ 산막이길을 운행하는 나룻배. 왼쪽 군자산의 모습이 장관이다.

이 시는 9곡에 대해 읊은 것으로 병풍바위에 새겨놓았다고 하는데,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산막이길은 노수신 적소를 끝으로 돌아서야 한다. 마침 산막이 선착장에서 배가 떠나기 직전이다. 서둘러 배에 올라타니 뱃사공 변태식 아저씨가 능숙하게 모터에 시동을 건다. 내심 노를 젓는 배를 생각했다가 입맛을 다신다. 배가 호수 중앙으로 들어서자 그동안 걸어왔던 산막이길이 한눈에 잡힌다. 제법 가파른 벼랑에 나무 데크가 연결된 모습이 제법 멋지다. 서서히 출발한 곳이 가까워지고, 군자산이 호수까지 내려와 떠나는 길손을 배웅한다.
▲ 강물을 바라보며 걷는 호젓한 산막이길은 완만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걷기 좋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