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유럽대륙 최고봉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유럽대륙 최고봉
  • 글 사진·윤인혁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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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혁의 지구 위를 걷다 | ⑦ 엘브루즈

▲ 정상 가는 길은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낮으니 이중화, 아이젠, 방한복 등 등반장비를 단단히 갖춰야 한다.

▲ 정상 가는 길은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낮으니 이중화, 아이젠, 방한복 등 등반장비를 단단히 갖춰야 한다.
아시아대륙과 유럽대륙을 가르는 이정표격인 코카서스(Caucasus) 산맥은 남부 러시아와 그루지아공화국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코카서스 산맥 깊은 곳에 솟아있는 엘브루즈(Elbrus, 5642m)는 명실상부 유럽대륙을 통틀어 최고봉이란 영예를 안고 있다.


엘브루즈(Elbrus)는 페르시아어로 ‘눈으로 덮인 산’이란 뜻으로, 고대 그리스신화에도 등장한다. 제우스의 명을 거역하고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쇠사슬로 묶인 채 낮엔 독수리에게 간을 파 먹히고, 밤이 되면 다시 회복되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곳인 코카서스의 바위가 엘브루즈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역 주민들은 엘브루즈를 ‘행복의 산(Mountain Of Happiness)’이라 부른다. 여인의 풍성한 젖가슴의 모양을 한 엘브루즈의 두 봉우리에서부터 발원된 깨끗한 계곡과 이를 바탕으로 뿌리를 내린 다양한 산림이 주민의 삶을 여유롭게 해주었기 때문이리라.

▲ 끝없는 해바라기의 바다. 민바디에서 이트콜 가는 길.
엘브루즈는 쿠반(Kuban)강과 테레크(Terek)강의 발원지며, 코카서스 지방이 자랑하는 등산과 관광의 중심지다. 엘브루즈 주변 5만8000㏊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동봉(5621m)과 주봉인 서봉(5642m)이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 시킨다.

여름이면 많은 등반가들이 엘브루즈 등반에 나서는데, 이중화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등반에 나서는 등반가들 사이로,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고 엘브루즈 산허리에서 활강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곳은 만년설 슬로프를 가진 천연 스키장이다. 또한 햇빛 좋은 날엔 비키니를 입은 늘씬한 미인들이 올라와 하얀 만년설 위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한다. 엘브루즈는 유럽대륙의 최고봉이기 전에 현지인들이 찾는 피서지이자 천연의 스키장이기도 한 것이다.

엘브루즈는 여름에 해당하는 6월에서 8월까지가 등반 시즌이다. 개인의 역량과 날씨의 영향이 있으나, 보통 3박4일을 기본 일정으로 한다.

白夜를 넘어 코카서스로
▲ ‘러시아의 알프스’라 불릴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코카서스 지방.
6월에서 8월까지의 여름, 위도가 북위 48도 이상인 모스크바엔 백야(White Night, 白夜)가 나타난다. 저녁식사를 하고 한참을 있어도 밖이 훤하다. 저녁 11시가 되어야 겨우 해가 지면서 잠깐 밤이 된다. 그리고 오전 3시만 되면 해가 밝아 온다. 이런 이유로 모스크바의 호텔엔 두껍고 어두운 색깔의 커튼이 쳐 있다. 잠을 잘 수 있는 어둠을 만들어 주기 위한 배려라고 할까?

엘브루즈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이트콜(Itkol)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미네랄리바디(Minerali Vody, 이하 줄여서 민바디)공항이다. 민바디 지역은 온천으로 유명하다. 온천과 냉천이 함께 나오는데 이곳에서 나온 냉천은 톡 쏘는 맛이다. 미네랄워터의 어원이 ‘미네랄리바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하는데, 물(Water)의 러시아 말이 바디(Vody)임을 볼 때,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의 광물질이 미량 함유되어 있는 이곳의 광천수는 반드시 맛보고 가야 할 것이다.

민바디에서 박산계곡(Valley Of Baksan)의 이트콜로 가는 길은 필자가 다녀 본 길 중 손꼽는 아름다운 길이다. 시기만 잘 맞추어 가면 노란 해바라기가 만개한 놀랄 광경을 목격할 수 있고, 박산계곡에 가까워지면 마치 파키스탄의 훈자지역을 연상 시키는 기암절벽과 하얀 만년설의 향연이 오감을 즐겁게 해준다. 엘브루즈가 만들어 놓은 박산계곡의 끝자락엔 베이스캠프겪인 이트콜(Itkol)이란 마을이 있다. 이트콜에선 엘브루즈의 풍성한 젖가슴을 질리도록 바라볼 수 있다.

▲ Ai Cafe에서 바라본 박산계곡 전경.

이트콜엔 크고 작은 숙소가 여럿인데, 특히 한국 등반대에게 익숙한 곳은 볼프람 호텔(Volfram Hotel)이다. 한국 등반대의 거의 대부분이 묵어가는 볼프람호텔은 여름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등반객과 여름휴가를 즐기러 온 피서객, 그리고 스키시즌엔 스키어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1년 내내 손님들로 끊이지 않는 곳이다. 호텔이기보다는 모텔에 가까운 시설이지만 엘브루즈 등반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트콜의 이슬 섞인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맡아본 사람은 그 공기의 맛이 얼마나 신선하고 맛있는지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새들의 지저귐과 차가운 아침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 가슴 깊숙이 공기를 들이 마셔보라. 코카서스 산맥의 주민들이 왜 장수를 누리며 사는지에 대한 답을 얻게 될 테니까. 오랜 비행과 이동, 한국과 러시아의 시차도 신선한 아침공기엔 저항할 힘을 잃는다.

▲ 갑작스런 소나기 후에 나타난 쌍무지개.
긴장한 몸도 풀 겸, 또한 고소적응도 할 겸 호텔 근처의 산으로 고소적응 트레킹에 나선다. 고소적응이라고 해서 거창한 산행이 아니라 배낭에 물 한통, 간식 등을 챙긴 가벼운 복장으로 나서면 된다. 이트콜 마을 입구에 위치한 스키리프트 정거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스키 리프트가 끝나는 Ai Cafe(2750m)가 목적지다.

산행을 시작해서 40여분은 제법 넓은 산판길을 올라간다. 어느 정도 오르면 엘브루즈의 두 젖가슴이 뚜렷이 보이는데, 날씨가 좋은 날엔 등반 루트도 관찰 할 수 있다. Ai Cafe로 오르는 길은 그야말로 야생화 천국이다. 노란색, 보라색, 자주색, 빨간색 등등 원색의 작고 아름다운 야생화를 보며 엘브루즈에서 불어 오는 기분 좋은 찬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고소 적응이 저절로 되는 느낌이다.

바렐대피소의 고도가 3900m이고 이트콜의 고도가 2180m이니까 하루 사이에 1720m의 고도를 올리게 되는데 실제로 바렐대피소에서 고소증세 때문에 고생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케이블카와 스키 리프트로 약 2시간에 걸쳐 올라가는 고도라 이론상으로 하자면 반드시 고소가 와야 하는데, 고소로 고생하는 분이 없으니 이는 필시 Ai Cafe를 오르며 받은 코카서스의 신선한 공기와 야생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기운이 우리의 몸을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 엘브루즈 올라가는 길목인 아자우역 전경.

엘브루즈의 품으로 !
▶DAY1 : 이트콜→아자우역(Azau, 2180m)→미르역(Mir, 3500m)→가라바쉬역(Garabashi, 3850m)→바렐대피소(Barrel, 3900m)<케이블카, 스키리프트 이동>
▲ 한국 등반대가 애용하는 볼프람 호텔.
볼프람호텔에서 케이블카가 운행하는 아자우역까지는 차로 5분 정도 걸린다. 아자우역에서 시작해서 가라바쉬역까지 두 번의 케이블카와 한 번의 스키리프트를 타게 된다. 개인 짐과 공용 짐은 등반대 모두가 합심해서 옮겨야 한다. 아자우역을 출발해서 미르역에서 한번 케이블카를 환승하여 다시 스키리프트로 갈아타는데, 이때 짐도 스키리프트에 실어 보낸다. 짐을 리프트 위에 올리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위에서 짐을 내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가라바쉬역에 도착하면 한숨 돌리고 50m 위의 바렐대피소까지 다시 짐을 옮겨야 한다. 아자우역에서 시작해서 바렐대피소까지 짐과 함께 올라오는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엘브루즈의 두 봉우리가 눈앞에 드러나게 된다.

▲ 긴 원통으로 숙소를 조성한 바렐대피소.
바렐대피소는 단어 뜻 그대로 Barrel(통), 즉 원통을 뉘여서 잘 수 있게 만든 숙소다. 등반객 용으로 10개의 바렐이 있고, 각 바렐엔 6명씩 잠을 잘 수 있다. 바렐 안은 넓고 쾌적하다. 매트리스가 있는 침대가 놓여 있고, 보온을 할 수 있는 전기 히터가 있다. 젖은 옷이며 신발 등을 널어놓으면 금세 뽀송뽀송 마를 정도다. 각 바렐의 창문으로는 엘브루즈의 서봉과 동봉을 언제고 볼 수 있다. 등반객을 위한 바렐 외에 등반가이드들을 위한 숙소와 공동식당 건물이 있다. 재래식이기는 하지만 공동 화장실도 있다.

▲ 엘브루즈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창과 전기히터, 침대가 구비된 바렐대피소. 5성 호텔이 부럽지 않다.
바렐대피소에서의 식수는 식당에서 늘 구할 수가 있다. 각 대행사들 소속의 요리사가 상주하고 있어 식당의 요리사를 찾아 가면 24시간 뜨거운 물을 먹을 수 있다. 물은 깨끗한 눈을 녹여서 만들므로 가끔가다 한 번씩 눈이나 눈 녹은 물을 길어다 주면 요리사들이 아주 좋아 한다. 물 긷는 일은 주로 등반 가이드와 한국에서 함께 온 가이드가 한다.

바렐대피소에 도착하면 바렐을 배정받고 짐을 정리한 후에 점심식사를 하게 된다. 가볍게 식사를 한 후엔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가볍게 고소적응과 설상 훈련 겸해서 등반을 한다. 주로 4160m의 퓨리웃산장(Pruitll)까지 하게 되는데 굳이 목적지에 구애 받지 않고 시간을 정해서 오른 후 미련 없이 내려오는 것이 고소적응은 물론이고, 체력 비축에도 좋다.

엘브루즈 등반의 승패는 날씨가 좌우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날씨가 변하는데, 엘브루즈의 기상은 현지 등반가이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 2일 간의 날씨 정보를 받을 수 있는데 다행히도 날씨가 일정에 맞아 떨어지면 고민 없이 등반에 나서면 된다. 반대로 날씨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도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음날 고소적응 없이 바로 정상 등반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등반 예비일을 써야 하는 경우도 흔하게 있고,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날까지 등반을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진다. 물론 정상 등반을 시도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현지 등반 가이드들은 날씨를 알려주고, 등반객의 판단을 기다린다. 경험 많은 한국인 등반가이드나, 등반 리더가 필요한 부분이다. 등반 예비일을 충분히 두는 것이 등정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 케이블카와 스키리프트를 갈아타며 바렐대피소로 올라간다.

▶DAY2 : 바렐대피소↔파스트쵸프락(Pastukhova Rocks, 4690m)<고소적응, 왕복 4~5시간>
고소적응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절대로 무리하면 안 된다. 목표한 곳까지 가서 고소 적응을 하고 오면 좋겠으나 그만큼 체력이 소모가 되는 것이다. 오늘의 고소적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일의 정상 등반이 중요한 것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외국 등반대의 경우 바렐대피소에서 4690m의 파스트쵸프락(Pastukhova Rocks)까지 다녀오는 것이 보통의 등반 일정이지만 이중화와 아이젠을 처음 경험해 보는 등반객이 대부분인 한국의 등반대는 3시간 운행을 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 하산을 하는 것이 좋다. 운행 속도가 늦기 때문에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고소 적응이 된다.

▲ 고소적응 시 서두르지 말고 컨디션과 체력을 안배하며 운행한다.
하산시 스노켓(Snow Cat, 설상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물론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하행시엔 대당 200Euro가 든다. 하행시 스노켓은 흥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이드에게 미리 말을 해 예약하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일찍 하산하여 바렐대피소에서 충분한 휴식을 가지며 정상 등정 준비를 한다. 날씨가 우호적이라면 다음날 새벽 3시엔 출발할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바렐대피소에서 대기해야 한다.

▶DAY3 : 바렐대피소→파스트쵸프락(Pastukhova Rocks, 4690m, 설상차 이용 / 30분)→새들(Saddle, 5300m / 4시간)→서봉(정상, 5642m / 1시간30분)→파스트쵸프락 (2~3시간)→바렐대피소(2시간)<정상 등정, 왕복 약10시간 소요>
대부분 상행 등반엔 파스트쵸프락까지 스노켓을 이용한다. 그만큼 등반 거리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벨트, 아이젠 등 모든 등반 장비를 착용한 후 스노켓에 탑승한다. 파스트쵸프락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정신을 빼 놓을 정도로 불어 재낀다. 스노켓에 내려서부터는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 대열을 잡고 등반을 시작한다. 대장 가이드가 맨 앞에서 길을 잡고 등반객 중간중간에 가이드들이 위치한다. 등반 도중에 포기하고 하산할 때엔 가이드가 대장 가이드에게 보고를 한 후에 등반객과 함께 하산한다.

가파른 사면을 한동안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트래버스를 시작하는데, 보통 이때부터 하늘이 밝아 온다. 코카서스 산맥이 붉게 물들게 되는 일출 후엔 선글라스를 착용해야 한다. 설산이기 때문에 태양 빛에 반사된 자외선이 망막을 상하게 한다. 이것이 설맹인데. 설맹 증세가 시작이 되면 앞이 보이지 않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따갑다.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3~4일을 고생해야 한다.

설맹에 걸리게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환자를 끌고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고생이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2명이 달라붙어 하산을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엉터리 산악영화의 영향으로 등반 중에 선글라스를 벗고 시간을 보내는 등반객이 있는데 이는 아주 위험한 행동이다. 단 1초라도 선글라스를 벗어서는 안 된다.

▲ 유럽대륙 최고봉인 엘브루즈 정상.

동봉의 사면을 트래버스하면 서봉과 동봉의 두 봉우리가 갈라지는 안부에 도착하게 된다. 안부 근처엔 크레바스가 널려 있어서 날씨가 안 좋을 때 등반을 하다가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가 종종 있다. 안부에서 주봉인 서봉으로 등반을 계속 하는데, 서봉 안부에서 급한 사면을 오르며 2개의 약한 능선을 넘는다.

능선을 넘어 오르막을 다 올라서면 약한 경사의 능선이 또 하나 나온다. 바로 정상으로 향하는 정상 능선이다. 눈앞에 정상 표지석이 보인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에 다다르면 비로소 유럽 대륙의 최고봉 엘브루즈 5642m를 오르게 된 것이다. 역사를 호령하던 어떤 장수도 발 아래에 유럽 대륙을 두지는 못했다.

▲ 하산은 오르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 스노볼이 생겨 걷기가 상당히 힘들다.
오후가 되면 구름과 바람이 몰려오기 때문에 하산을 서둘러야 한다. 엘브루즈 하산길은 만만치 않다. 올라올 땐 몰랐지만 하산 길엔 상당한 고도감이 느껴지는 구간이 몇 있다. 첫 번째가 정상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구간으로 많은 눈이 있고, 오후엔 눈이 녹아 푹푹 빠진다. 추락을 해도 많이 미끄러져 내려가지는 않지만,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급경사의 하산 길은 어려움이 있으리라. 이때 가이드에게 말을 하면 로프를 깔아서 잡고 내려오게 해준다. 안부를 돌아 나가는 동봉 트래버스 구간도 고도감이 느껴진다. 이중화와 아이젠 바닥에 눈이 뭉치는 스노볼 현상까지 겹치기 때문에 걷기가 수월치 않다.

파스트쵸프락 근처에 다다르면 비로소 안심이 되는데 젖가슴의 경사를 다 내려와서 배꼽으로 가는 평탄한 길이다. 스노켓을 예약했다면 아이젠을 풀고, 쉬고 있으면 된다. 스노켓을 예약하지 않았다면 아이젠을 배낭에 담고 천천히 걸어서 내려가면 된다.

▲ 스노켓의 위용. 엘브루즈 등반에 없어서는 안 될 문명의 이기다.

▶DAY4 : 바렐대피소→아자우역→이트콜<케이블카, 리프트 이용>
바렐대피소에서 아자우역까지 올라올 때 타고 왔던 역순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러나 내려가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도시에 정전이 될 때엔 케이블카와 스키리프트를 운행하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종종 있다. 이 경우엔 꼼짝없이 짐을 메고 걸어서 내려가거나, 스노켓을 대절해서 아자우까지 가는 방법이 있다.

요즘엔 구식 트럭이 가라바쉬역부터 아자우역까지 등반객과 짐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물론 그 만큼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아자우역에 도착하면 기온부터 다르다. 바렐대피소에서부터 입고 내려왔던 두꺼운 오리털 점퍼를 벗어 던지고 며칠만에 땀을 흘려 본다. 아자우역 주변으로 작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곳곳에서 구워 대는 샤슬릭 냄새가 기름기 빠진 위장을 요동치게 한다.

볼프람호텔에 도착해서 각자의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챙겨 두었던 새 옷으로 갈아입으면 비로소 등반이 끝났음을 실감한다. 샤슬릭과 보드카로 안전한 등반과 정상 등정을 축하한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술에 취해 길을 가다가 넘어져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엘브루즈 등반을 마치고 온 등반객에 대한 주민들의 작은 배려다.

이왕이면 하산 후에 러시아 전통 사우나인 ‘반야’에 몸을 맞기는 것도 좋다. 등반 후의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함께 한 가이드와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하면서 등반 후의 망중한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러시아다운 축하 방법이다.


윤인혁 | 경희대산악부 OB. 수차례의 히말라야 고산등반, 100여 차례의 트레킹을 하며 70여 개국을 여행했다. 트레킹·고산등반 전문여행사인 ‘세븐써미트’를 한국과 네팔에서 경영하고 있다. horgal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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