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NOTE | 시애틀
ANDREW'S TRAVEL NOTE | 시애틀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4.07.2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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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의 감성이 살아있는 땅

도시 깊숙이 구불구불 들어온 바닷물이 호수를 이루고 이윽고 운하가 된다. 운하는 강을 만들고 강물이 모여 수상비행장을 이룬 물의 도시 시애틀. 미국 북서부 워싱턴 주에 위치한 이 도시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군더더기 하나 없는 멋진 경관이 두 눈을 사로잡는다. 지금부터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이곳은 여기저기 질퍽한 수렁이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고, 하수도가 역류하는 어둠의 도시였다. 도시의 뒷골목은 금을 찾아 서부로 모여든 광부들의 도박과 음주로 뒤엉켜 점점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1889년 6월 6일, 시애틀 중심부가 송두리째 불타는 대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화재는 12시간 동안 이어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들쥐도 약 100만 마리 정도가 죽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이 송두리 채 화마 속으로 사라졌다. 시의회는 이런 시애틀을 급속히 재건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재건 방식이 독특하게 이뤄졌다. 불탄 도시 중심부를 철거하는 게 아니라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높은 언덕을 그대로 깎아 내렸다. 그러자 평평한 새로운 대지가 탄생했다. 철거 경비도 절약하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토대를 다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악몽 같던 하수도 역류현상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었다. 또한 목재 건물을 금하고 모두 석재만 허용해 다시 화재가 나더라도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했다.

▲ 시애틀의 상징인 스페이스 니들 타워. 야경이 더욱 멋진 곳으로 유명하다.
▲ 물 위를 나는 수상비행기를 이용하면 시애틀 전역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이 후 시애틀은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명연기가 펼쳐지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전 세계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도시로 각인된다. 시애틀은 현재의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이기 이전에 인디언의 숭고한 땅이기도 했다. 당시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 ‘시애틀’로 지금도 시애틀 중심가의 파이어니어 광장에 가면 그의 흉상을 볼 수 있다. 1852년 미국 14대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피어스는 당시 인디언 거주 지역인 시애틀을 팔라고 제안한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시애틀 추장은 아래와 같은 편지를 보낸다.

“어떻게 당신들은 하늘과 대지의 따사로움을 사고 팔 수가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 인디언은 신선한 공기나 수정같이 맑은 물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들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사겠다고 하는지. 이 대지의 구석구석은 우리 인디언에게는 신성한 곳입니다. 저 빛나는 솔잎이며 해변의 모래사장이며 어둑어둑한 숲 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마저 우리 인디언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 모두 성스러운 것입니다. 나무줄기 속의 수액은 인디언의 추억을 안고 흐릅니다. 백인들은 그들이 죽어서 저 밤하늘 별 사이로 걸어 들어갈 때 자신들이 태어난 땅을 잊어버릴 겁니다.

그러나 우리 인디언은 죽더라도 결코 아름다운 이 대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 대지는 우리 인디언의 모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지의 한 부분이요, 대지는 우리의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며 사슴과 말과 큰 독수리는 모두 우리 형제입니다. 바위산 꼭대기와 시냇가의 맑은 물, 조랑말의 따스한 체온과 함께 인간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 시애틀의 명물인 스타벅스 최초 매장. 그 당시의 로고를 볼 수 있다.
▲ 시애틀에는 영화배우 이소룡의 무덤도 있다.

영혼을 두드리는 감성적이며 자연주의적인 시애틀 추장의 답신은 당시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백인 지식층이 인디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시애틀을 끝까지 지켜내지는 못했다. 1855년 엘리엇 항구 조약에서 인디안 추장은 시애틀을 미합중국에 넘기는 서명을 하면서 잊지 못할 말을 남겼다.

“마지막 남은 남자 인디언과 여자 인디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고 난 뒤 인디언에 대한 기억이 오직 초원에 드리워진 뭉게구름의 그림자뿐일 때도 해안과 숲과 내 종족의 영혼만은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조상은 늘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너희 백인이 우릴 쫒아 낸다 해도 결코 너희의 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록 침략자였지만 이 연설에 감동받은 피어스 대통령은 도시의 이름을 시애틀로 명하며 그의 뜻을 기렸다. 시애틀에 본사를 둔 알래스카 항공기 뒷날개 부위에 그려져 있는 사람이 바로 추장 시애틀이다. 그의 얼굴은 지금도 미국의 창공을 날며 인디안 영혼의 철학을 전도하는지도 모른다.

앤드류 김(Andrew Kim)|(주) 코코비아 대표로 에빠니 포장기계 및 커피브랜드 앤드류 커피 팩토리(Andrew Coffee Factory)와 에빠니(Epanie) 차를 직접 생산해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또한 커피와 차 전문 코코비아 쇼핑몰 (www.coffeetea.co.kr)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다니며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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