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그 시절 냉면집의 추억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그 시절 냉면집의 추억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4.07.01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맘때면 그때의 냉면 맛이 그립다!

냉면집에 줄이 길다. ‘시절’이 온 것이다. 열량이면서 미각이면서 끼니인 이 음식은 이 땅에선 그저 그런 물리적 체감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냉면, 이라고 부르는 순간 정치적이면서 마음 한 켠이 싸해지는 감성의 음식이 된다. 굳이 분단이니 실향민이니 하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말이다. 서울사람의 다수에게 냉면은 대개 어버이와 관련이 있다. 그분들이 돌아가셨다면 더욱 가슴이 미어지는 음식이다.

요즘은 외식할 것이 널렸지만, 저 지난 세월에 냉면이면 호사였고 어버이들의 사치였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그렇게 냉면을 얻어먹고 다녔다. 사족이지만, 냉면 하면 작가 최인호 선생이 생각난다. 십칠팔 년 전의 일인데, 혜화동 낙산가든에서 냉면을 사주셨다. 그가 냉면을 꼭꼭 씹는 장면이 떠오른다. 젊은 사람처럼 탄탄하던 팔 근육도 말이다. 부질없다.

서울 장안의 냉면 하면 우래옥이 선두에 선다. 해방공간(1946년)에 창업했으니 역사도 참 길다. 이 집에서 50년 넘게 봉직한(이런 분에게 참 잘 어울리는 낱말이다) 김지억 전무는 올해 여든 둘이다. 그를 만나서 옛 우래옥 시절을 듣는데, 창경원 얘기가 나왔다. 지금은 복원되어 창덕궁이지만 일제(日帝)가 벚꽃을 심고 동물원으로 만든 다음 오랫동안 그렇게 창경원으로 있었다. 나도 중학생 때 소풍을 가기도 했다. 여름에는 버찌도 따먹고 말이다. 그 창경원 벚꽃 철이면 우래옥도 난리가 났다고 한다.

돈암동에서 출발하는 전차가 창경원을 거쳐 우래옥 근처까지 운행했는데, 벚꽃 구경 마친 인파가 다 을지로로 몰려와서 냉면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때 인파를 보면 정말 겁이 덜컥 났다고 한다. 그런 날에는 보통 이천 그릇 넘게 냉면을 팔았다는 것이다.

말이 이천 그릇이지, 한 백 명이 동시에 들어가는 식당이라고 해도 20회전을 해야 한다. ‘그때 그 시절’ 이니 가능했다. 먹을거리 변변하지 않았던 때라, 외식하면 불고기와 냉면이었으니. 요새는 아무리 냉면 철이 되어도 오백 그릇을 넘지 않는다고 하니, 정말 대단했던 과거다.

우래옥은 원래 ‘냉면집’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북한음식점이다. 아니, ‘이북’음식점이다. 북한은 정치적이고 분할적 용어다. 이북으로 불러야 먼 옛날 우래옥이 창업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 근자에 냉면집으로 불리지만, 북한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라고 불러야 한다. 외래어가 사대 같다면, 식당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이 집은 품위가 있다. 들어가면 손님을 안내하는 중년의 매니저가 있고, 김지억 전무 같은 노구의 직원(!)들이 일일이 손님을 맞는다. 11시 반이면 순식간에 손님이 들어찬다. 대개 불고기와 냉면이다. 갈비와 육개장, 장국밥 같은 전통적인 국밥류가 있어서 이곳이 단순히 면옥이 아니라 식당이라는 걸 보여준다. 김전무가 주방을 구경시켜 준다. 우래옥의 육수는 아주 특이하다. 보통 맑고 ‘육향’이 강하다고들 한다.

실제 육수는 아주 단순하게 만든다. 소 엉덩이와 다리 안쪽 살을 푹 삶아 냉각하는 게 전부다. 흔히 냄새 없애고 맛 더하라고 넣는 파와 마늘 같은 것도 전혀 안 넣는다. 그냥 고기 100퍼센트다. 거기서 맑고 묵직한 듯 신묘한 육수가 나온다. 메밀은 밀가루와 달리 미리 반죽해 놓으면 못 쓴다. 주문이 들어올 즈음 반죽해서 그때그때 뽑아야 한다. 당연히 미리 국수를 뽑아놓을 수가 없다. 메밀의 특성상 면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냉면 먹는 법이라고들 하는 게 있다. 미리 육수를 맛보고 면에 식초를 쳐서 든다, 뭐 이런 내용이다. 우래옥의 산 역사인 김 전무는 그런 얘기에 대해 ‘뭐 그렇긴 하지만’이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제각기 먹고 싶은대로 먹는 게 맞다고 한다. 겨자를 치든, 식초를 넣든 식성에 맞춰 먹으면 된다.

우래옥에는 특이한 주문법이 있다. 메밀만 100퍼센트 반죽해서 만드는 순면, 고기 대신 면을 더 얹어내는 민짜, 너무 차갑게 하지 않고 온도를 올려서 내는 거냉 등이다. 순면은 따로 반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쁜 시간에는 일찍 나오지 않는다.

민짜는 과거엔 메밀이 고기보다 싸서 많이 줬는데, 요새는 그다지 양을 많이 내기 힘들다고 한다. 메밀값이 워낙 올랐기 때문이다. 거냉은 대개 노인들이 많이 시킨다. 장이 안 좋아 차가운 것을 못 드시는 경우 고르기도 한다. 온도를 올려서 내면 메일의 구수한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섬세한 미식가의 선택일 때도 있다.

참 많이도 냉면을 먹고 다녔다. 어머니 손잡고 다니던 남대문의 부원집(부원면옥이 정식상호다), 우래옥이 있던 시절 서울에서 몇 안되던 냉면 집 중 하나인 평래옥(저동에서 쌍용빌딩 앞으로 옮겼다), 을지로에서 선주후면의 인기를 끌고 있는 을지면옥에다가 장충동의 평양면옥(이 집은 메밀의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도 있다. 함흥냉면으로 슬쩍 틀면 역시 오장동 함흥냉면이고, 다시 동국대 쪽에 있는 필동면옥에서 제육에 소주 한잔 한 후에 냉면을 먹었다. 최고의 제육이라고 하는 집이다.

강남에 있을 때는 을지병원 뒤 평양면옥 강남점이요, 분당이라면 요새 뜨는 강자인 능라도 있다. 참, 정독도서관 앞에 있는 북촌냉면도 잘한다. 오류동에는 오류동평양냉면이 오랫동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구나 부산도 냉면이 좋다. 대구의 강서면옥과 대동강, 안면옥이 있다. 부산은 좀 특이해서 밀면이라는 지역 냉면이 있다. 물론 실향민에 의해 퍼진 전통적인 냉면도 있다. 대개 전분을 많이 넣은 쫄깃한 면이라는 게 개성이다. 진주에 가면 역시 진주냉면이다. 진하고 감칠맛 센 남도식 국물이 인상적이다.

이북에서는 못 먹어봤지만 중국에서 북한 쪽이 운영하는 냉면집도 다녀봤다. 다 각기 개성 있고 제 맛을 갖춘 냉면들이다. 기회가 되면 조선족 동포가 하는 냉면집(대개 양꼬치집에서 사이드 메뉴로 한다)도 다녀보시길. 북한 냉면의 중국 버전이랄까, 독특한 맛이 있다. 더워진다. 냉면 한 그릇들 하고 갑시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