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NOTE | 캘리포니아 허스트 성
ANDREW'S TRAVEL NOTE | 캘리포니아 허스트 성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4.06.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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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며 꿈을 키운 미디어 황제의 성

눈부신 은빛 백사장 위로 검푸른 파도가 덮쳐 하얀 포말을 깨알같이 나누는 캘리포니아 중부 ‘샌 시메온’ 해안가. 이 해안가 뒤로 늘어선 산타루치아 산맥은 사막과 초원이 만나는 곳으로 꽤나 이국적이다. 이 산 정상에 범상치 않은 위용을 자랑하는 허스트 성이 자리하고 있다.

▲ 영화 스팔타커스 촬영장으로도 사용된 야외풀장.

이 거대한 저택은 20세기 초 미국의 대재벌이었던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f Hearst)가 지은 자신의 별장 겸 파티장이다. 그가 생을 마감한 것도 이 곳. 허스트는 1920년 스페인의 한 수도원과 영국 웨일즈 지방의 800년 된 성 전체를 사들여 해체한 후 미국으로 가져와 재건축했다.

▲ 허스트성 실내수영장의 황금타일이 여전히 선명하다.
제주도 반만한 면적의 이 대지는 당시 금광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허스트의 아버지 조지가 구입했다. 당시 아버지 조지는 어린 아들 허스트를 데리고 이곳으로 자주 캠핑을 왔다. 어릴 때부터 어린 아들에게 담력을 키워 주고 싶었고 캠핑을 통해 삶의 활력소가 무엇인지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 조지는 훗날 “허스트가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고 거대한 꿈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곳으로 자주 캠핑을 왔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부친의 영향을 받은 허스트는 훗날 26개의 신문사, 13개의 잡지사, 8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거느리면서 20세기 초 모든 미국 언론을 장악하는 미디어 재벌이 된다.

미디어 황제가 된 허스트는 아버지와 어릴 적 자주 캠핑을 왔던 이곳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하늘에 닿을 수 있는 성을 만들기로 한다.

1919년 첫 삽을 떴다. 건축가는 놀랍게도 U.C 버클리 공대 첫 번째 여자 졸업생이자 미국에서 프랑스 건축사 자격증을 최초로 받은 줄리아 모간(Julia Mogan)이다. 허스트는 이 건물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보관하고자 했다. 줄리아는 건물을 짓고 어떻게 문화재를 배치할까를 고민하지 않았다. 반대로 문화재 하나하나 빛나게 할 수 있는 건물을 짓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 대식당 은촛대에 유럽 중세 시대 성주의 깃발이 걸려있다.
그렇게 해서 허스트 성이 탄생한다. 건물을 둘러보면 100여년 전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만든다. 온도 조절장치가 있는 길이 34m, 깊이 3m의 거대한 로마식 야외수영장과 황금 타일로 장식된 실내수영장이 산 정상에 만들어졌다. 근래의 지어진 초특급 호텔보다 더 화려한 156개의 손님 방을 만들었으며 장엄한 회의실에 호화로운 극장이 들어서 있다.

당구장과 거대한 규모의 식당도 있으며 파티장에 손님을 위한 탈의실만 무려 17개나 된다. 100여년 전 이곳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 고대 이집트와 로마의 국보급 보물이 건물 이곳저곳에 자리 잡아 고풍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허스트는 자칭 지독한 영화광으로 그가 직접 제작한 영화만 무려 100여 편이 넘는다. 영화 배우들과 관계도 막역했을 터. 1920~1950년 사이 미국 할리우드 영화 스타 중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지 않은 이가 없다는 후문이다. 찰리 채플린, 클라크 케이블, 게리 쿠퍼, 존 웨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이름만은 후세에 길이 남는 명배우들이 이곳에서 휴가를 즐겼다. 뿐만 아니라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 미국의 루즈벨트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허스트와 격이 없는 휴가를 즐겼다. 아무튼 당시 세계적인 명배우를 포함해 상류층 세계에서는 허스트로부터 파티 초대장을 받는 것이 큰 영광이었을 것 같다.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허스트. 하지만 이목에서 잊혀져 가던 그를 다시 주목받게 한 사건이 일어난다.

탕!탕!탕! 벌건 대낮 샌프란시스코의 한적한 길가에 위치한 은행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 가칭 티냐라고 불리는 젊은 금발 미녀가 무장강도 행동대원으로 은행에 침입했다. 경찰은 그녀를 잡기 위해 비디오 판독을 실시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그녀는 1년 전 무장 강도에게 인질범으로 잡혀 행방불명된 허스트의 친 손녀, 페티였다.

▲ 화려한 당구장, 스페인에서 가져온 오백년 된 카펫트가 벽에 걸려 있다.
▲ 화려한 외관의 허스트성.

대재벌이자 미디어 황제의 손녀딸이 스톡홀름 증후군을 보이며 무장강도가 돼 사람을 죽이고 돈을 강탈했으니 세상에 이런 특종도 없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은행에 잠입한 무장 강도들은 그들의 운둔지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모두 사망했다. 그러나 페티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다. 그녀는 한화 약 15억원 상당의 보석금을 주고 가택연금 중 재판을 받아 결국 약 2년간의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다. 곡절 많은 그녀 인생은 보디가드와의 결혼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낳았다.

그 뒤로 평범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페티도 이제 환갑을 맞았다. 보디가드 겸 남편이었던 버나드 쇼도 작년에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고 할아버지로부터 이어져 오던 부도 대부분 끝났다. 그리고 페티의 할아버지 허스트가 남긴 거대한 성과 유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지금도 사람들은 허스트 가의 부의 흔적을 보기 위해 먼 이 곳까지 몰려온다. 해안가를 향해 펼쳐진 산 능선의 비행기 활주로는 과거의 영광을 기억이나 하는지 수풀만이 무성하다.

앤드류 김(Andrew Kim)|(주)코코비아 대표로 에빠니(epanie) 포장기계 및 차를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커피와 차 전문 쇼핑몰(www.coffeetea.co.kr)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여행전문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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