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 손자병법 | 상산솔연 常山率然
캠핑 손자병법 | 상산솔연 常山率然
  • 글 서승범 기자 | 그림 김해진 기자
  • 승인 2014.06.25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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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불놀이 한 판 할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뭘까? 병력도 중요하고 무기도 중요하고 지리적 조건도 중요하고 운도 중요하고 다 중요하지만, 그중 으뜸은 병사들의 사기다. 맹자도 하늘의 때나 땅의 이로움보다는 사람의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 했고, 손자 역시 마찬가지다. 사이가 안 좋아도 적 앞에서는 ‘오월동주’처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달엔 상산의 뱀 얘기다.

‘구지’편에서는 아홉 가지 지세에 대한 공격과 방어의 전술을 설명한다. 지세를 나누는 기준은 땅과 물의 생김새 따위가 아니라 아군과 적군의 위치다. 흩어져 도망가기 쉬운 산지散地, 쉽게 퇴각할 수 있는 경지輕地, 누가 점령해도 유리한 쟁지爭地, 사방이 만나는 교지交地, 사통팔달의 구지衢地, 군대의 보급 문제를 해결하는 중지重地, 움푹 꺼진 생김새를 지닌 비지?地, 사방을 포위하기가 쉬운 위지圍地, 죽을 수밖에 없는 꽉 막힌 사지死地가 그 아홉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제후가 자신의 땅에서 적과 전쟁을 하는 건 ‘산지’이니 되도록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되고, 적진이되 깊이 들지 않았다면 ‘경지’이니 멈춰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사지’는 뭐냐. 빨리 싸우면 생존할 수 있으나 빨리 싸우지 못하면 멸망할 수 있는 지세다. 사지에서는 죽기로 싸워야 한다.

이 편의 부제는 ‘구지의 변화와 인간 감정의 원리’다. 지세가 달라질 때 병사의 감정은 어떻게 달라지며 장수는 이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위급할 때, 예를 들어 적진 깊숙한 곳에서 전쟁을 할 때 중요한 건 의지다. 아군의 의지가 올곧으면 적이 이길 수 없다고 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모두들 제귀(諸)의 용기를 보여준다고 했다. 제귀는 전제와 조귀를 뜻한다. 사람 이름이다. 전제와 조귀의 용기가 궁금하다면 검색해보시길, 자객 전제는 죽을 것을 알고서도 임무를 완수했고(그리고 난자당해 죽었다), 조귀는 약소국 노나라의 평민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어 제나라를 물리쳤다.

‘상산솔연’은 여기서 나온다. 상산은 중국 오악의 하나인 항산을 가리킨다. 솔연은 뱀이다. 이 녀석은 머리를 치면 꼬리가 달려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달려든다. 그렇다고 가운데 부분을 건들면 머리와 꼬리가 동시에 공격을 하니 당해낼 자가 없었다. 수하에 전제나 조귀 같은 ‘솔연’을 둔 장수는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그렇다면 무릇 장수가 병사를 상산의 솔연처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직접 들어보자.

“사졸의 눈과 귀를 어리석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장수의 작전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며, 그 계획을 바꾸고 그 계략을 변경함에 병사들로 하여금 인식하지 못하게 하며, 그 머무는 곳을 바꾸고 그 행군로를 우회하여 병사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게 한다.” 의아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상황을 판단하여 작전을 짜고 명령을 내리는 건 장수의 권한이자 의무라는 맥락은 수긍할 수밖에 없다.

손자는 ‘고요하고 드러내지 않고’ 군대를 지휘하라 했다. 오지에서 살아남는 부시크래프트나 서바이벌 캠핑이 아닌 이상, 캠핑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한 자연과의 전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가 활동이다. 그러니 전제의 용기까지 필요하진 않다. 조귀의 지혜는 캠핑뿐 아니라 일상 전반에 두루 쓸모가 있겠다. ‘장수’ 입장에서도 전장과 캠핑장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눈과 귀를 어리석게 만들’ 필요도 없다. 캠핑장의 ‘솔연’은 어때야 하고, 그러기 위해 ‘장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마 전 9살 큰 아이와 캠핑을 했다. 녀석은 아직 전화기가 없지만 게임은 무지하게 좋아한다. 캠핑장에 풀어놓는 순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숲 사이를 뛰어다녔다. 솔방울과 모래로 성도 쌓았다고 구덩이도 팠다가 허물고 메우기를 반복했다. 지칠 법도 하건만 바다 보러 가자고, 새 보러 가자고 졸랐다. 밥 먹고 나서도 바로 뛰쳐나가려기에 ‘게임이나 두어 번 하고 가지?’하고 잡았다. 밥 먹고 바로 뛰면 배 아프다고 해봐야, 아프면 그때 쉬겠다는 답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쉬지 않고 놀 때 나는 뭘 했는가? 뭘 하긴, 아무 것도 안 했다. 그게 휴식이고 힐링이다. 같이 한 건 없느냐. 불장난 같이 했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스토브에 불을 피워 잔가지를 넣어가며 불장난을 했다. 화로대의 불은 너무 커서 놀이에 적당하지 않지만 작은 스토브는 주의만 잘 하면 얼마든지 재미나게 놀 수 있다. 늘 조심하라고, 저만치 가라고만 했던 불이 놀이의 대상이 되었고, 아이는 그 후로도 며칠 동안 틈만 나면 불장난을 이야기하곤 했다. 다시 질문. 캠핑장에서 아빠는 뭘 해야 하는가. 할 거 없다.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부러 뭔가를 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는 거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남편 혹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자신만의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빠가 가장이라는 이유로 관리하려 들면 아이의 캠핑은 사라지고 아빠의 캠핑만 남는다. 그것도 본말이 전도된. 아빠도 캠핑을 즐기러 갔지, 아이를 관리하려 간 건 아닐 테니까. 시간과 자유를 주면 도착해서 출발할 때까지 먹고 잘 때 빼고는 게임만 줄창 하더라는 반론이 예상된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게임도 한두 번이고, 캠핑장은 집 안보다 즐길 게 많으니 언젠가는 게임기를 두고 산책에 나설 것이다.

보다 즉각적인 효과를 원한다면 정해진 시간만 하게 하든지, 아예 못 하게 하라. 단 어른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그게 사업상 중요한 전화든 과일 따먹는 게임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수긍할 수 있는 룰을 만들고 서로 잘 지키는 거다. 이 모든 걸 관통하는 팁 하나. 자신의 캠핑을 즐겨라. 아이도 자신의 캠핑을 즐기도록 하라. 그게 현명하고,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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