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임기자가 걷GO | 한양도성 창의문~혜화문
임기자가 걷GO | 한양도성 창의문~혜화문
  • 글 임효진 기자 |사진 양계탁 기자 | 협찬 폴라텍
  • 승인 2014.06.19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빛 아래 순성놀이 즐기러 나가 보세

조선시대 과거 시험 보러 온 유생들은 장원급제를 기원하며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도성을 한 바퀴 돌곤 했다. 도성을 따라 돌다보면 안쪽에는 궁궐이 보인다. 그 당시 선비들은 이 궁궐을 바라보면서 장원급제의 마음을 다졌다. 그러다 파도처럼 걱정이 밀려오면 도성 밖으로 눈을 돌려 북한산과 인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걱정을 날려 보냈으리라.

도성 돌기는 과거 시험 보러 온 유생들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사람들은 봄과 여름이 되면 짝을 지어 하루 종일 도성을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했다. 도성 산책은 ‘순성놀이’ , ‘순성장거’라 불리며 전통놀이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도성의 여러 곳이 파괴됐다. 그 끊어진 성곽처럼 순성놀이 전통도 끊어졌다.

▲ 백악마루에 올라 서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40년간 발길이 닿지 않은 비밀의 공간

70년대부터 도성 복원에 관한 논의가 시작됐고 2013년 총길이 1만8627m 중 약 70% 구간의 복원작업이 완료됐다. 현재는 서울시에서 총 4개 구간으로 나눠 해설사가 동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그 중 3구간인 창의문~혜화문 구간은 성곽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고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가장 조망이 아름다운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윤혜숙 한양도성해설사는 “3구간이 전체 도성의 중심이자 기준”이라고 했다.

3구간 길이는 4.6km로 창의문~백악마루~1.21 소나무~청운대~숙정문~와룡공원~혜화문으로 이뤄져 있다. 취재팀은 숙정문까지 트레킹하기로 했다. 이 구간은 1968년 1.21 사태 이후 지난 40여 년간 폐쇄돼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사람의 인적이 끊긴 채로 40여년을 보냈던 창의문~혜화문 길은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지금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지만 여전히 제약이 따른다. 탐방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을 제출해야 비로소 출입이 가능하다. 출입한 후에도 경계근무를 서는 군인과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그래도 특수한 공간을 둘러보는 것인 만큼 불편함은 감수하기로 한다.

▲ 청운대를 지나 곡장으로 향하다보면 견고하게 쌓은 성벽을 볼 수 있다.

3구간 시작점인 창의문은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문아래 놓인 박석이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듯 반질반질 윤기를 발하고 있다. 창의문에서 백악마루(342m)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이어진다. 그늘 하나 없이 30~40여분을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코스다 보니 무리하면 처음부터 지칠 수 있다. 한양도성은 좁은 의미로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지칭하나 넓은 의미로는 성곽과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킨다. 1396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축조됐고 세종, 숙종 시기 대보수공사를 거쳤다. 태조 때 지어진 성벽이 크기가 제각각인 둥근 돌로 지어졌다면 세종 때는 직사각형에 가까운 메주 형태의 돌에 잔돌을 끼워 넣어 축조했다. 숙종 30년에는 2자×2자 정사각형으로 규격화해 보다 튼튼하게 쌓았다. 태조 때 축성된 성벽을 보고자 한다면 남산 구간을 찾아야 한다.

백악마루를 지나 청운대로 이어지는 길은 솔잎 향을 맡으면서 걸을 수 있는 산책구간이다. 솔밭을 따라 걷다보면 총탄 맞은 자국이 남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부대의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할 목적으로 남한에 침투한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그 흔적이 소나무에 고스란히 남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학도호국단과 향토예비군이 신설되면서 군대문화가 일반인의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됐다. 성곽 사이를 메우기 위해 시멘트가 발라졌고 북악스카이는 정비됐다.

▲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는 가파른 코스가 이어진다.

아름다운 도시 서울을 한눈에

소나무길을 지나 유홍준 교수가 이름 붙인 청운대에 들어섰다. 장쾌하게 보이는 조망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남으로는 경복궁과 세종로, 북으로는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볼 수 있다. 숲길 사이로 이어지는 성곽의 외곽까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운 경치다.

청운대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섰던 월대가 있다. 월대를 둘러싸고 있는 쉼터에 걸터앉아 광화문광장인 옛 육조거리를 내려다보자. 잠시 아득한 눈길로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서울에서 한양의 자취를 찾기는 쉽지 않다. 오로지 궁궐과 도성이 서울이 600년 조선의 도읍이었다는 사실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 모진 풍파를 겪어낸 성돌.

적이 오는지 감시하는 곡장에 서니 북한산 능선에 족두리봉과 향로봉이 보인다. 인왕산 자락에는 슬픈 전설을 간직한 치마바위가 있다.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왕비인 단경왕후의 아버지는 반정을 반대하다 피살당한다.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해 단경왕후도 7일 만에 폐위된다. 하지만 중종과 단경왕후는 애틋하게 사랑하는 사이였다. 단경왕후를 그리워한 중종은 매일 경회루에 올라 왕후의 집이 있는 인왕산 자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소식을 듣고 단경왕후는 경회루에서 마주보이는 바위에 자신이 궁궐에서 입던 치마를 펼쳐놓아 그리운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치마바위다. 누군가를 한번쯤 사무치게 그리워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라보고 있어도 애틋한 사람을 볼 수 없는 심정이란 마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야했던 중종은 위로했던 건 인왕산이었다.

▲ 도성은 권위와 안전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데이트 코스, 숙정문

삼청공원으로 내려가기 전 숙정문에 올라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삼청각을 바라다본다. 숙정문은 남대문인 숭례문과 대비하는 북대문으로 ‘엄숙하게 다스린다’는 뜻이다. 숙정문은 조선시대 여인들이 사랑한 문이기도 했다. 정월대보름 전 숙정문에 세 번 놀러오면 액운이 사라진다는 속설이 있었다. 많은 여인이 삼삼오오 모여 숙정문을 찾았고 꽃이 있는 곳에 벌이 오듯이 남성들의 발길도 덩달아 많아졌다. 숙정문 아래 깊은 뽕나무 밭도 있으니 조선시대 최고의 데이트 코스였음은 말해 무엇하랴.

학생들과 함께 오기 위해 답사 차 방문한 이완재 꿈타래학교 교사는 “서울이 고향이다 보니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양 도성을 와보니 서울에도 새삼 볼 게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숲도 있고 문화재도 볼 수 있어 누구나 한번쯤 방문하면 의미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했다.

네파, 익스트림 슈페리어 팬츠
네파 익스트림 슈페리어 팬츠는 심플한 디자인에 베미스 웰딩과 허벅지부분 티타늄 메쉬를 적용한 제품이다. 견고한 핫멜팅 기법으로 통풍구 디테일을 접목시켰다. 슬림 핏으로 제작돼 여성스러운 맵시를 자랑하기에도 좋다. 35만원. 네파.

폴라텍 파워쉴드
폴라텍 파워 쉴드는 차세대 기능성 아우터웨어로 점쳐지는 소프트쉘이다. 소프트쉘은 악천후를 제외한 모든 환경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98% 방풍 기능을 자랑하며 투습 기능이 뛰어나 저체온증으로부터 몸을 보호한다. 내마모성 및 신축성도 뛰어나 어떤 야외활동에도 불편함없이 착용할 수 있다. 세탁기 사용 가능한 점도 또 하나의 장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