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동·서양 회 문화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동·서양 회 문화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4.06.0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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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사람들의 혀를 사로잡는 회 맛!

전국 어디나 생선회가 유행한다. 필자의 부모님 고향은 경상도 내륙이다. 어려서 횟집 같은 것은 없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동해안에서 잡힌 고등어에 소금을 쳐서 저장성을 높인 간고등어가 유명한 지역이겠는가. 그런데 요새는 놀러 가면 현지에 살고 있는 필자의 사촌들이 내게 회를 먹자고 한다. 광어, 우럭 양식이 대성공해 가격이 싸진데다가 활어차로 수송하게 돼 전국적으로 횟집이 흔해졌다.

▲ 야박한 도쿄의 회 접시.

회 먹는 풍습도 전국적으로 거의 표준화(?)됐다. 초고추장에 공장제품 기름장, 싸구려 와사비에 간장을 준다. 기분이 참으로 처참하다. 예전에는 지역을 다니면 향토요리 먹는 맛이 만만치 않았다. 해안가로 가면 어떤 회를 먹을 수 있을까 기대감이 컸다. 장도 다 달랐다. 전남 해안가에서 먹던, 막장에 찍은 홍어(삭히지 않은)회 맛이 혀에 삼삼하다. 김치에 싸먹는 여수의 삼치회는 또 어떻고. 그냥 소금을 찍어 먹는 놀래미 같은 회도 있었다.

우리 회 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 전부터 횟감이 싱싱한 해안가에서는 독자적인 회 문화가 살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 회 문화는 부산으로부터 크게 번져갔다. 이른바 ‘쓰끼다시’라는 것도 그렇다. 식전의 간단한 음식을 일컫는 이 일본어는 부산에서 횟집끼리 경쟁이 붙으면서 거대한 ‘모둠요리’의 경연으로 바뀌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지경이 됐다. 일본에 가서 쓰끼다시 타령을 하면 그들이 의아해한다. 콩 한 접시까지 다 돈 받는 그들이 말이다. 줄 때도 있다. 그야말로 간소하다. 찬 두부 약간이나 절임류가 고작이다. 특히 인심 야박한 도쿄는 시쳇말로 국물도 없다.

▲ 이탈리아에서 맛본 성게알.
최근에 도쿄를 방문했다. 현지의 작가가 추천한 도쿄 시내의 유명한 간이 횟집을 방문했다. 참치 붉은 등살과 한치를 시켰다. ‘서비스’로 주는 건 전혀 없다. 잠시 후 회가 나왔다. 사진에 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두 종류를 한 접시에 담아낸다. 양이 워낙 작아서다. 각기 우리 돈으로 2만원 정도. 그러니까 저 한 접시에 4만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회 한 상에 나오는 ‘쓰끼다시’ 한 접시의 양과 인심이라고나 할까. 물론 품질은 좋았다. 거저 줄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너무 야박하다. 먹을 것 없는 걸 한 상 차려준다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한국식의 푸짐한 문화는 그런대로 가치가 있긴 하다. 물론 품질 중심으로 보면 일본식이 맞겠지만.

일본이 회의 원조처럼 돼 있지만 체계적인 문화가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에도시대(1603년부터 1867년까지 2백65년 동안 에도(도쿄)가 정치의 중심이었던 시대)에 날로 생선을 먹는 문화가 크게 번졌다. 에도시대는 교토 중심의 문화가 도쿄 해안으로 옮겨오면서 일종의 역동적인 시대를 열어갔다. 새로 도읍을 지어야 했고 화재로 더 많은 일꾼들이 에도로 몰려왔다. 여기에 각 지방 번주들의 볼모 일행이 대거 머물면서 인구가 팽창했다. 이들이 바삐 먹고 일해야 했으므로 거리의 간이 음식도 발달했다. 이른바 스시의 발달이 그것이다. 스시는 원래 오래 삭혀서 밥 위에 얹어 먹는 것이었는데, 에도시대에 ‘니기리 스시’가 발달하게 된다. 즉 싱싱한 생선을 손으로 쥔 밥 위에 얹어 즉석에서 먹는 것이다. 스시에 새콤한 식초 양념이 돼 있는 것은 일종의 이미테이션이다. 삭힌 생선의 맛을 모방한 셈이다. 이즈음에 회가 하나의 일본 문화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한국과 중국은 날 생선은 회(膾)라고 한다. 반면 일본은 사시미(刺身)라고 한다. 이 글자는 ‘찌르다’라는 의미여서 좀 의외로 생각하기 쉽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모둠회가 올라오면 생선의 종류를 알 수 없어 각기 이름을 적은 작은 깃발을 생선에 ‘찔러’ 넣어 구별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대개 이런 설은 후대의 가공일 가능성이 높다. 회를 거론할 때 꼭 등장하는 분이 공자다. 2500년 전의 인물인 공자도 회를 즐겼다는 것이다. 필자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논어 향당 편에 공자가 ‘회는 가늘게 썬 것만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기록돼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회라면 다 좋아했다는 말이겠다. 이 시대의 회는 생선회가 아니라 육회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바닷가라면 옛날에도 싱싱한 회를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이탈리아의 오징어회.

이탈리아도 회 문화가 있다. 북쪽은 아니고, 남쪽에서 회를 먹는다. 시칠리아에 있을 때는 조개회를 내놓아서 놀란 적도 있다. 한국에선 적어도 조개회를 그렇게 즐기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이번 출장에서는 밀라노에서 거대한 ‘횟집’을 만났다.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았는데 취재해보니, 이탈리아 남부식이란다. 이탈리아 반도 그림을 보면 장화처럼 생겼다. 그 뒷축에 해당하는 곳-즉 그리스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접해 있는-이 풀리아라는 지방이다. 그 중심도시가 바리(Bari)인데 그쪽의 음식문화라는 것이다.

이른바 ‘바레제(Barese)’ 횟집이다. 참치를 다져서 내고 오징어를 회로 쓱쓱 썰어준다. 성게와 새우를 날로 준다. 아주 달고 맛있다. 물론 양념은 이탈리아식이다. 레몬즙을 듬뿍 치고 질 좋은 올리브오일, 소금을 섞어 드레싱을 끼얹었다. 잘 어울린다. 일반 생선회도 있다. 역시 같은 양념에 버무려 먹는다. 조개도 많이 나온다. 전혀 비리지 않고 달고 맛있다. 화이트와인이 아주 잘 어울린다. 저녁 8시가 되니 넓은 홀이 손님으로 꽉 찬다. 놀랍다. 세계는 이제 날 생선을 먹는다. 훨씬 좋아진 수송체계, 날 생선의 가치를 알게 된 인식의 변화, 더 새로운 맛을 찾는 기호가 합쳐져 탄생시키고 있는 유행이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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