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해남 미자탕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해남 미자탕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4.04.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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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거기 있잖소, 거시기 말이여”

아마도 해남은 남한에서 가장 넓은 군(郡)에 들어갈 것 같다. 면(面)과 면 사이가 길다. 군 이쪽 끝에서 저쪽으로 달리니 거짓말 좀 보태서 반나절이다. 안 그래도 넓은 군인데 간척까지 해서 해안선이 더 넓어졌다. 토지가 넓으니 어업보다는 오히려 농사가 흥하다. 배추와 고구마 같은 건 국내에서 선두권이다. 그렇다고 해물이 없는 것도 물론 아니다. 새벽 오일장이 아주 크고 좋은데, 온갖 해물이 계절별로, 물때에 맞춰 그득하다. 이 봄이면 간재미와 도다리, 주꾸미가 장에 많이 나올 것이다. 이름도 잘 모르는 온갖 잡어도 해남장과 남창장에 때맞춰 올라온다. 많이 간척이 됐지만 갯벌도 여전히 많이 가지고 있어서 조개와 낙지 좋은 건 이미 짜하게 유명한 고을이다.

▲ 소 우랑과 우신으로 끓인 해남 성내식당의 미자탕. 전형적인 이류보류(以類補類)의 음식이다.

그런데 역시 시내에서 먹자고 하면 해물이 앞에 서지는 않는다. 해물은 상차림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맛을 돋우는 조연일 뿐, 육고기가 역시 손님맞기에 적격이라는 얘기다. 성내식당이 고을에서 손꼽히는 집인데, 해물은 그저 반찬으로나 얼굴을 내밀 뿐이다. 질 좋은 쇠고기를 다루는 집인 것이다. 햇수로 사십 년을 넘어 장사한 집으로 구석구석이 소박하지만 윤기가 난다. 이 집의 대표 요리는 미자탕이다. 낙엽고기라고 하여, 소의 사태 부위에서 조금씩 나오는 귀한 부위를 살짝 토렴하거나 날로 먹는 것이 메인요리지만 사람들을 이 식당으로 끄는 힘은 미자탕이다. 미자라니. 주인은 씩 웃는다. 거기 있잖소. 거시기. 거시기라. 아하, 탕 끓여온 모양새를 봤더니 알겠다. 토막 쳐서 마치 곰장어 몸뚱이를 잘라낸 것처럼 보인다. 소 생식기를 말한다. 우랑(牛囊)이니 우신(牛腎)이니 하는 것이다. 불알과 고추가 다 들어 있다.

이런 음식이 시골 읍내에서 팔리는 건,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외식과 접대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해남은 지청과 지검이 있고 당연히 송사와 섭외가 늘 있게 마련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와 음식은 서로 조응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남자들끼리, 온돌방에서, 뭔가를 자글자글 끓이면서 술잔을 나누는 것은 관계망이 촘촘하고 느긋한 지방의 뒷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런 상차림에 깔끔한 회보다는 역시 넉넉한 고기와 탕이 더 어울릴 것도 같다.

미자탕의 어원을 물으니 아무도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한다. 다만, 이쪽 사투리에 몸의 은밀한 끝을 ‘미자바리’라고 부르기도 하거니와 그런 의미를 담았을 가능성이 높다. 미자(尾子)라고 하여, 꼬리(생식기)를 의미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무엇이든 이 탕에 딱 어울린다고 하면 무리일까. 탕맛은 진한 꼬리곰탕이다. 토막 친 우신이 쫄깃한 소 심줄(보통 스지라고 부르는)처럼 씹힌다. 젤라틴이 많아서 이빨에 쩍쩍 붙는다. 국물을 퍼내면 저며 낸 우랑(불알)이 들어 있다. 우랑은 살짝만 끓여도 부드럽게 익는 부위다. 슬쩍 익혀서 소금 찍어 회처럼 먹기도 한다.

우신은 우랑과 해부학적으로 아주 다른 조직인 것 같다. 처음에는 끓여도 쉬이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소 심줄처럼 오래 끓여야 비로소 이빨이 들어간다. 자존심이 센(?) 부위여서 그런가. 동기상구(同氣相求) 이류보류(以類補類)라는 말이 있다. 동기상구는 유유상종이라는 뜻으로 비슷한 기운은 서로 닿는다고 해석한다.
 
▲ 50년이 넘은 장충동 족발집의 족발 한 점도 이류보류의 기원이 담겨 있다.

이류보류는 같은 종류의 음식으로 그 부위의 보한다는 뜻이다. 미자탕이 전형적인 이류보류의 음식이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별로 관계가 없다고 한다. 전형적인 예로 관절이 안 좋다고 사골 끓여서 먹어도 효험이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뼈를 끓여 먹으면 골다공증이 더 빨리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오랫동안 토테미즘적인 사람들의 신앙은 그치지 않는다. 요새는 비아그라 같은 약물이 보급되면서 크게 줄었는데 전 세계 물개의 그것(해구신)은 한국인이 다 먹는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던 때도 있었다. 그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창피한 일이다. 우선 그런 걸 먹는 행위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이 과학의 시대에도 그런 이류보류의 사상을 믿어서였다.

어려서 키 큰 사람보고 우리는 콩나물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콩나물을 일부러 먹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키 크려고 말이다. 이것이 이류보류의 전형 중의 하나다.

장충동의 족발집을 취재했다. 오십 년이 넘은 집이다. 이 집의 안주인은 팔십이 넘었는데 목소리가 아직도 카랑카랑하다. 자신의 족발집이 ‘농구인의 집’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농구인들이 아주 오랫동안 들르고 단골 삼는 집이기 때문이다. 김동광, 유재학, 한기범, 허재 같은 전설들이 할머니 입에 오르내린다. 그런데 농구 선수 말고도 배구 선수도 많이 들른다고 한다. 장충체육관이 가까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역시 이류보류와 관련이 있다. 농구나 배구선수는 수직으로 뛰는 운동을 한다. 높이 점프를 한다.

박지성이 무릎이 안 좋다고 하지만, 보통 이쪽 실내 스포츠 선수가 무릎이 더 안 좋다. 엄청난 점프를 하는데 체구도 크기 때문에 무릎이 받는 하중이 엄청나다. 이쪽 선수들이 대개 무릎에 보호대를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래서 족발이 무릎에 좋다고 많이들 먹는 셈이다. 이류보류의 기원을 담아 족발 한 점을 먹는 것이다. 족발은 실상 ‘발’이 아니라 관절과 정강이다. 돼지의 무거운 체중을 떠받치던 관절 부위이니 이것을 먹어 조금이라도 효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가 보다.

이류보류. 인간의 과학은 엄청난 발전을 하고 있다. 50억 년 전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능력도 가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선사시대 조상과 별로 다르지 않은 세상을 산다. 어쨌거나 족발이나 미자탕이 맛이 있어 다행이랄까. 마장동에 가면 미자탕의 재료인 소 우랑과 우신을 살 수 있다. 따로 팔지 않고 세트로 취급한다. 미리 예약(?)해두면 연락이 온다. 한 벌(?)에 보통 만원이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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