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 본 윌리엄스 ‘종달새의 비상’
MUSIC | 본 윌리엄스 ‘종달새의 비상’
  • 박성용 기자
  • 승인 2014.04.1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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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산에 봄이 오면 그도 날아오르리라

“원산에서 쐬주 마시고 포항에서 문어 씹던 시절에 부르던 노래를 하나 하겠소!”

선배의 목소리는 명성산을 쩌렁쩌렁 울리고도 남았다. 아니 목청과 함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함경도 핏줄의 기개가 봄밤을 제압했다. 즉석으로 만든 무대인 트럭 짐칸에 올라간 선배는 옛날 노래를 열창했다.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회갑을 맞은 선배는 가까이 지내는 후배들에게 “잔치랄 것도 없이 마당에서 조촐하게 삼겹살이나 구워먹자”고 초대를 한 것이다. 우리는 산정호수 둘레길을 걷고 나서 선배가 있는 캠핑장으로 올라갔다. 마당에는 먼저 도착한 선배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흥겨운 판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는 정중히 선배의 회갑을 축하드리고, 선배 부부는 후배들을 뜨겁게 맞아주었다.

선배는 히말라야 산촌 여행을 좋아해 네팔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몇 년 전 고향인 포천 영북면의 명성산 자락에 거처를 마련했다. 한국전쟁 때 함흥에서 월남한 의사였던 아버지께서 한우목장을 일구기 위해 틈틈이 장만한 너른 임야가 남아 있었다. 선배는 일찍이 답답한 학교 울타리보다는 우람한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목장을, 선생님의 잔소리보다는 소들의 워낭소리를 더 좋아했다. 이렇게 목동 생활을 보낸 선배는 재테크니 승진이니 하는 세속적 덕목들하고는 담을 쌓고 지내오며 끝없는 방랑과 지독한 고독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자유인으로 살아왔다. 시집과 몇 권의 여행기가 방랑의 세월에서 건진 결실이었다.

‘친구여/ 우리는 술 처먹다 늙었다/ 자다가 깨서 찬물 마시고/ 한번 크게 웃은 이 밤/ 산 아래 개구리들은/ 별빛으로 목구멍을 헹군다/ 친구여/ 우리의 술은/ 너무 맑은 누군가의 목숨이었다/ 온 길 구만리 갈 길 구만리/ 구만리 안팎에/ 천둥소리 요란하다’로 끝나는 <다시 산에서> 라는 선배의 시는 산꾼들과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천의무봉한 기질과 비수 같은 서정이 가슴을 후벼 파는 절창이다. 카잔차키스에게 크레타 섬의 해변에서 춤을 췄던 조르바가 있다면, 우리 마음엔 히말라야 설산 아래서 세상을 향해 앙천대소하는 선배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이날 회갑축하연의 압권은 쉽게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동생의 아우라였다. 선배보다 목소리가 더 우렁차고 무인 기골을 타고 난 동생은 형과 함께 트럭 짐칸에 올라가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대도시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느낄 수 없는 원초 야생의 기운이 넘쳤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초과’는 아니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영혼과 심성을 지녔으니까.

봄기운이 명성산에 깃들면 선배는 분주할 것이고 흥얼거리는 노래도 흘러나오리. 마치 본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처럼. 날아오르는 종달새를 묘사한 이 음악은 봄의 전령사와도 같다. 약음의 관현악 반주를 뚫고 비상하듯 가녀리게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독주는 지저귀는 종달새를 표현하고 있다. 아이오나 브라운의 솔로 바이올린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사라지는 종달새를 끊어질 듯 말 듯 청아한 선율로 노래하고 있다. 네빌 매리너가 지휘하는 아카데미 실내악단의 녹음은 오래 전부터 정평이 난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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