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가 오르GO | 소구니산~유명산
박기자가 오르GO | 소구니산~유명산
  • 글 박성용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협찬 트렉스타
  • 승인 2014.04.16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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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달 잔설은 눈 흘기는 새색시 같더라

이름도 정겨운 농다치·서너치
양평 남한강휴게소에서 시작해 가평 설악면을 잇는 37번 국도는 20년 전 개통돼 오늘날까지 한나절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 보기 드문 산간 도로인 37번 국도는 소구니산(800m)·유명산(862m)·중미산(834m) 등 양평과 가평 일대의 높은 산악지대를 관통하며 농다치고개와 선어치(서너치) 고개를 넘어간다. 농다치고개가 해발 600m대이니까 강원도의 산간 도로 못지않다.

▲ 소구니산에서 이어지는 산길과 계곡 아래서 올라오는 임도가 만나는 지점.

약 25km에 달하는 이 국도가 뚫리면서 수도권 유원지로 소문난 유명산 계곡이 1시간대로 가까워졌다. 또 농다치고개와 서너치(선어치)고개는 소구니산~유명산~어비산으로 이어지는 3개산 종주산행의 들머리 역할도 한다. 유명산 계곡과 어비 계곡을 품고 있는 가평군 가일리를 병풍처럼 두른 3개산은 종주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다. 특히 유명산~소구니산 코스는 한강기맥이 지나는 구간이다.

▲ 육산에 솟은 바윗덩이에서 바라본 유명산 정상 부근의 활공장.
▲ 농다치고개에서 소구니산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강기맥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갈라져 나와 평창·횡성·홍천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평 양수리에서 맥이 끝나는 도상 거리 약 162km의 산줄기를 말한다. 남한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계방산(1577.4m)을 비롯 용문산(1157m) 등의 웅장한 산세와 장쾌한 마루금 때문에 대간꾼들에게 인기가 좋은 산줄기다.

▲ “농 다칠라”라고 말했다고 해서 생긴 농다치고개.

농다치(籠多峙), 서너치 등의 지명은 흔히 들을 수 없는 정겨운 이름이다.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동국여지지> 양근군에 “노다령(勞多嶺)이 군 북부 이십 리에 있고 노다치(勞多峙)라고도 칭한다"는 내용이 있다. <해동지도>와 <광여도>에는 노다치(老多峙)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구한말지형도>엔 농다치현(農多峙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시집가는 새색시가 장롱을 지고 가는 짐꾼에게 고갯길이 좁아 귀중한 혼수품이었던 장롱이 바위에 부딪칠까봐 “농 다칠라”라고 말했다고 해서 붙여졌다. 서너치는 하늘이 서너 치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유명산 입구의 식당 솔가든 주인은 “가마를 타고 가던 새색시가 길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자 가마꾼이 서너 치 정도 남았다고 대답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말했다. 어쨌든 농다치, 서너치라고 불릴 만큼 이 동네는 깊은 산골마을이었던 것이다.

▲ 소구니산~유명산은 종주 산꾼들이 즐겨 찾는다.

장쾌한 한강기맥이 지나는 구간
취재팀은 농다치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고갯마루에 도착하자 깎아지른 산비탈에 설치된 계단이 보였다. 소구니산 들머리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서너치치고개가 나온다. 서너치고개에서 출발하면 농다치보다 소구니산까지 시간이 조금 덜 걸리지만 큰 차이는 없다. 가파른 계단길이 끝나자 겨우내 얼었다 녹은 질퍽한 흙길이 나왔다.

▲ 꽃망울에서 생강 향내가 나는 생강나무.

산에 좀 다녀본 사람은 안다. 초봄의 흙길은 한겨울 빙판길만큼 미끄럽다는 것을. 게다가 등산화에 설피를 매단 것처럼 달라붙는 진흙 때문에 발이 천근만근 무겁다는 것을. 그러나 이런 불편하고 귀찮은 것쯤이야 봄산의 매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손으로 비벼서 냄새를 맡으면 진짜 생강향이 나요.”

150여 개에 달하는 나무계단을 다 올라가자 양 기자가 아직 피지 않은 생강나무 꽃봉오리를 건넸다. 호기심에 손으로 문질러서 코끝에 대자 생강 향내가 솔솔 피어올랐다. 그는 산림청 숲 해설사 자격증을 딴 나무 전문가이기도 하다.

▲ 산행을 하면 기묘한 형상을 한 소나무를 자주 만난다.
▲ 소구니산 정상에서 유명산으로 가는 내리막길.

산길은 온통 진흙밭이다. 양지쪽에는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응달에 쌓인 잔설은 미운 서방에게 눈 흘기는 새초롬한 색시 같다. 10여 분 정도 가니까 헬기장이 나왔다. 인천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네 명이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쉬는 폼이 눌러 앉을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린 여기가 정상이에요. 여기서 하산할래요”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산에선 어디든 앉은자리가 꽃자리 아니던가.
 
▲ 유명산 정상. 초봄 평일이라 그런지 비석 뒤편의 소나무 아래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간이노점이 보이지 않았다.
▲ 유명산 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길.


능선에 올라온 대가로 흐린 조망이 터지는 것인지, 나뭇가지들 사이로 왼쪽에는 중미산이, 오른쪽으로는 멀리 패러 활공장이 보인다. 가파른 오르막과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으면 삼각점이 있는 660.4봉. 다시 이어지는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걸으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 길은 중미산으로 연결되는 서너치고개이고 소구니산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소구니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한강기맥 이정표가 있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고산준령을 달려온 한강기맥이 마지막 숨을 고른 뒤 양수리 강가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지점이기도 하다. 소구니산 정상서 농다치고개는 1.8km, 용문산으로 이어지는 배너미고개는 4.7km, 유명산은 1.2km. 어느새 유명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 유명산 입구의 야영장.

▲ 저 안에 봄이 들어 있다.
유명산 임도는 산악자전거 인기 코스
유명산 정상 일대는 패러 활공장으로 유명하다. 멀리서도 둥근 언덕이 잘 보인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울긋불긋한 패러들이 하늘을 수놓을 것이다. 비포장 임도가 정상까지 이어진 유명산은 수도권 산악자전거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양평군은 산악자전거 동호인들을 위해 옥천면의 임도를 활용한 3시간짜리 35.8km의 순환 코스를 개방했다.

정상 직전의 산길과 임도가 만나는 지점에 간이 벤치가 아닌 공원에서 볼 법한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편하게 앉아서 땀을 식히며 주변 풍광을 감상하라는 배려이지만 그늘이 없어 햇볕이 더 뜨거워지면 앉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5분만 올라가면 유명산 정상. 초봄 평일이라 그런지 정상 비석 뒤편의 소나무 아래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간이노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 노점은 헉헉거리며 올라온 등산객이나 라이더들에겐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정상에 서면 풍광이 열린다. 서쪽에는 중미산, 동쪽에는 용문산이 좌우를 받치고 있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양수리로 흘러가는 남한강이 햇살을 받아 사금파리처럼 빛난다. 하산은 마당소, 용소, 박쥐소가 있는 입구지계곡, 가일리 주차장으로 떨어지는 북릉 코스가 있다. 하산 시간은 더 걸리지만 아름다운 소(沼)와 시원한 계곡길이 인기 코스다.

도토리전문식당<도토리국수집>
비린내 없는 시원·깔끔한 묵탕밥
냉면으로 유명한 옥천면에 도토리 음식으로 손님을 끌고 있는 식당이다. 농다치고개로 올라가기 전 37번 국도변에 있다.

도토리를 이용한 묵밥, 비빔밥, 전병 등이 주요 메뉴로 20년째 문을 열고 있다. 다시마, 과일, 채소 등 30여 가지의 재료들을 넣고 6시간 동안 우려낸 국물은 비린 맛이 없고 깔끔하며 시원하다.

주인 김태수씨는 “충청 이남은 멸치가 들어가 국물이 비릿하지만 경기·강원 지역은 과일과 채소로 우려내 깔끔하다”고 설명했다. 겨울에는 차고 여름에는 따뜻한 국물이 어울린다고.

국산 도토리는 이제 귀해서 수입산을 쓰지만 묵이나 반죽은 직접 집에서 만든다고 한다. 묵탕국·묵비빔밥 7천원, 도토리전 8천원, 도토리전병 9천원.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1리 767-8. 031-771-7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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