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와 계류가 노래해요 “조무락~ 조무락~”
산새와 계류가 노래해요 “조무락~ 조무락~”
  • 글·김경선 기자l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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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가평 ① 석룡산 조무락골 트레킹

▲ 보기만 해도 시원한 계류가 쏟아지는 조무락골.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조무락골에는 맑은 계류가 끊임없이 흐른다.

38교~조무락골~정상~주능선~조무락골~38교…11.5km 6시간 소요

갑갑한 일상을 벗어던지고픈 휴가철. 관광객이 북적대고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바닷가 대신 시원한 계곡으로 휴가를 떠나보자.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조무락골은 상류부터 하류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소와 폭포가 있어 여름철 트레킹 코스로 그만이다.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시원한 휴가를 즐기고픈 독자들에게 추천하고픈 곳, 석룡산 조무락골이다.


강원도가 부럽지 않을 만큼 깊고 푸른 산군이 포진해 있는 곳이 바로 가평이다. 연인산(1068m), 명지산(1267m), 화악산(1468m), 석룡산(1153m), 축령산(879m)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산들이 가평 땅에 가득하다. 이 중 산의 이름보다 계곡으로 더 유명한 곳이 있다. 산새들이 조무락(‘재잘대다’의 사투리)거린다고 하여 붙여진 석룡산 조무락골이다.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화천의 경계를 이루는 석룡산은 한북정맥에서 뻗어나간 화악지맥의 한 봉우리다. 엄밀히 따지자면 불과 3km 떨어진 화악산의 한 봉우리로 봐야겠지만 화악산 정상 지대가 군부대의 통제로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 독립된 봉우리로 여겨지는 산이다. 한 때는 연인산이나 명지산 등 인근 산들의 명성에 밀렸던 미지의 산이었지만 조무락골의 비경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여름철이면 피서객과 산행객들이 몰려드는 인기 산으로 거듭났다.

▲ 조무락골을 따르는 완만한 산길은 계곡과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했다.

복호동 폭포 앞에서 꿀 같은 휴식
가만히 있어도 후덥지근한 열기가 호흡을 방해하는 여름날, 에어컨보다 시원한 냉기를 찾아 석룡산으로 향했다. 가평읍내에서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도착한 조무락골 입구. 평일이라 산행객들이 거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관광버스 한 대를 비롯해 산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습을 드러냈다.

석룡산 산행은 보통 조무락골을 따라 정상에 오르고 남서쪽 능선을 타고 다시 조무락골로 하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취재팀 역시 조무락골 입구인 38교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조무락골로 들어서자 길 왼쪽으로 펜션과 민박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계곡을 따라 대규모 펜션단지가 조성돼서인지 산길도 잘 닦인 포장도로다. 38교부터 500m 정도까지 우후죽순 숙박시설이 들어서 산만한 느낌이 들었는데, 걱정도 잠시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계곡은 상업적인 모습을 탈피했다.

호젓한 숲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자 산길 왼쪽으로 펜션 하나가 보였다. 조무락골의 마지막 펜션인 ‘조무락’이다. 이 펜션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능선을 타고 석룡산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조무락골을 따라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자 새들이 조잘대는 소리와 청량한 계류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깊고 청명한 조무락골의 진면목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 자연이 만들어 놓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취재진.
‘조무락 산장’에서 5분 정도 걸었을까. 오른쪽으로 허름한 농가가 나타났다. 이 마지막 농가를 지나자 산길은 계곡을 약간 벗어나더니 쉬엄쉬엄 걸어가기 좋을 만큼 순하게 이어졌다. 졸졸 흐르는 계곡을 건너길 몇 차례, 마지막 농가를 지난 지 40분 만에 복호동 폭포 갈림길이다.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자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는 복호동 폭포다. 유난히 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복호동 폭포는 높이 30m의 3단 폭포다. 작지 않은 폭포임에도 불구하고 수량이 적어서인지 웅장한 맛이 덜했는데, 아무래도 상단의 2단이 잘 보이지 않은 탓 같았다. 아쉬운 마음에 폭포로 더욱 가까이 접근하자 숨어있던 상단이 모습을 드러내며 3단 폭포의 진수를 보여줬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것이 바라만 봐도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다.

폭포수를 받아내는 소(沼) 앞에 앉아 잠깐 숨을 고르는데, 금세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음산함마저 느껴지는 원시의 기운 때문일까. 아니면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사교 집단 백백교의 본거지였다는 과거 때문일까.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기운이 가득한 폭포 주변은 오싹함이 느껴질 정도다.

사실 석룡산은 백백교의 만행이 자행되던 장소다. 조선 말기에 생겨난 백백교는 극악무도한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비밀을 누설할 염려가 있는 신도들을 석룡산으로 끌고 들어와 가차 없이 죽여 매장했다고 한다.

▲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이 좋지 않은 석룡산 정상.
정상은 시원한 조망대신 울창한 숲
북호동 폭포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삼거리로 내려왔다. 정상 이정표 방향으로 오른쪽 산길을 따르자 완만하던 계곡길이 조금씩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 걷기를 10여 분. 거대한 암반 위로 두 개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쌍룡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까지는 수량이 부족해 장쾌한 맛이 덜했지만 비가 온 뒤에는 조무락골의 수량이 급격하게 불어나니 각별히 조심해야한다.

쌍룡폭포에서 20여 분을 더 걸어가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오른쪽은 화악산 중봉으로, 왼쪽은 석룡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취재진은 석룡산 정상 이정표를 따라 왼쪽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은 곧 계곡을 벗어나더니 조금씩 고도를 높여갔다. 경사도 제법 가팔라졌다. 지금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었는데, 삼거리부터는 된비알이다. 꼴딱꼴딱 호흡을 삼키며 산길을 따른 지 1시간, 석룡산 주능선인 쉬밀고개에 닿았다. 널찍한 공터인 쉬밀고개는 수풀과 잡목이 우거져 탁 트인 조망은 없었다. 쉬밀고개 동쪽 능선은 화악산까지 이어지지만 등산로는 조성돼 있지 않았다. 취재진은 정상으로 향하는 왼편 서쪽 능선을 따랐다. 그렇게 걷기를 15분, 드디어 석룡산 정상.

정상은 잡목이 무성해 답답했다. 장쾌한 조망은커녕 수풀 사이로 손바닥만하게 하늘만 겨우 보일 정도다. 모름지기 정상이라면 주변 산군이 한 눈에 조망돼야하는데 석룡산 정상은 표지석 외에는 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산행객들은 별 볼 일 없는 정상 조망에도 크게 실망한 눈치가 아니다. 수려한 조무락골이 정상의 조망을 대신할 만큼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 인적 드문 조무락골은 원시림처럼 울창했다.

차가운 계류가 산행 피로 날려
▲ 완만한 계곡은 곳곳이 쉼터다. 계곡 옆 너른 바위가 걷다 지친 산행객들의 휴식처가 된다.
정상에서 진행 방향으로 직진해 서쪽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다. 우거진 숲을 따라 능선을 15분쯤 내려서자 삼거리다. 이곳에서 왼쪽 남서쪽 방향으로 내려서면 능선을 따라 조무락골로 이어지고, 길이 희미한 북서쪽 능선으로 직진하면 도마치봉을 거쳐 강원도 화천으로 향한다.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없어 자칫 길을 잘못들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삼거리에서 왼편 남서쪽 능선을 따랐다. 우거진 숲에 가려 조망은 좋지 않지만 피톤치드가 뿜어져 나오는 숲길은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향긋했다. 그렇게 걷기를 1시간, 갈림길과 만났다. 직진해 계속 능선을 따라 하산할 수 있지만 취재진은 조무락골의 비경을 다시 한 번 맛보기 위해 왼쪽 계곡길로 내려섰다.
가평의 명물 잣나무숲이 등산로 주변을 빽빽하게 호위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거대한 잣나무 군락을 1시간 정도 내려서자 멀리서 조무락골의 시원한 계류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운 마음에 계곡으로 달려간 취재진은 등산화를 벗어 던졌다. 6시간 동안 답답한 신발에 갇혀있던 발을 얼음장 같이 차가운 계곡에 담그자 산행의 피로가 단번에 풀리는 듯했다. 가만히 눈을 감자 바람에 몸을 부대끼는 숲의 소리와 지저귀는 산새 소리가 들려왔다. 조무락골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조무락~, 조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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