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민의 땅을 일군 고려인들을 찾아서
유목민의 땅을 일군 고려인들을 찾아서
  • 글 사진·최광호 사진가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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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최광호의 KOMSTA 동행기 | ⑦ 카자흐스탄(Kazakhstan)

▲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안다.

카자흐스탄, 그곳에 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가면 우리를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 가면 고향이 그리워 멍하니 하늘을 보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이 있다. 보내기 싫은 마음을 뒷모습이 점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 흔드는 것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 손 꼭 잡고 고맙다며 애써 눈물 감추며 떠나보내는 사람들. 깊은 정 하나로 핏줄 같은 고향의 순수하고 끈끈한 마음을 전하는 곳, 나는 지금 카자흐스탄으로 향한다. 


▲ 넓은 지형에 시원하게 뻗은 카자흐스탄의 아름다운 길.
지금은 카자흐스탄(Kazakhs tan)을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고려인. 1900년대 초반, 그들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채 먹고살기 어려워 만주·연해주 등지로 이동해 삶을 꾸렸다. 그러던 중 전쟁이 터지자, 소련 권력자들은 고려인들을 두고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다는 누명을 씌워 체포해 처형시킨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들은 강제 이주시킨다. 이동하는 열차 안에서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렇게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에 첫 발을 내디뎠다. 고려인 최초의 정착지라고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고려인들은 억척스러운 생명력을 발휘해 집단농장을 만들고 자식들도 공부시킨다. 소련의 주류사회에 입성하기까지는 1세대들의 피눈물 나는 분투가 있었던 것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교포 3, 4세대에 이르는 10만의 동포가 살고 있다.

▲ 현지 병원 의사 간호사들이 먼저와 진료를 하며 좋아한다.▼중간에 있는 사람이 통역해 주는 고려인 할머니다. ▶건강을 위해 금연을 하고 싶다는 청년. 귀에 금연침을 맞고 있다.

가자, 다시. 동포가 있는 곳으로!
인천에서 저녁에 출발하여 밤에 알마티(Almaty)에 도착해 공항근처 숙소에서 잠을 청한다. 아침빛에 창문을 열어보니 저 멀리 산위에 눈 덮인 산이 나를 반긴다. 서둘러 비행기를 타고 침켄트(Shymkent)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보는 만년설이 장관이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흰 눈이 덮여있고, 그 아래로는 푸른빛으로 물든 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또 바로 아래로 누렇게 물든 보리밭이 여름과 겨울을 동시에 전하는 자연의 신비함을 느끼게 한다.

침켄트의 한인교회에서 진료에 짐을 풀고 내일 질료를 준비하고 남는 시간. 2시간 정도 달려 마샤 계곡에 갔다. 톈산산맥(天山山脈)의 눈이 녹은 물이라 그런지 차갑다. 채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이 아름답다. 산 여기저기에 피어난 접시꽃이 사람들을 반긴다.

▲ 침을 놓은 자리에 부황을 뜨는 이유는 침을 뜨겁게 달궈 효과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늘 그렇듯이 산책을 시작한다. 공원의 웅장한 스탈린 동상 아래에서 담소 나누는 노인들의 모습이 정겹다. 일요일에는 이곳 카자흐스탄에도 재래시장 한켠에서 벼룩시장이 열린다. 구 소련시절의 물건들이 재미있다. 그들이 살아온 모습을 듬뿍 품은 일상용품들에는 그동안 살아온 그들의 시간이 오롯이 스며있다.

오전에는 예배를 보고 오후부터 진료를 시작한다. 통역은 고려인 할머니들이 맡았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배운 언어. 주름진 입술로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이북 사투리까지 뒤섞인 우리말을 뱉어낸다.

끈끈한 정, 위대한 자연
교회에서 준비해 준 진수성찬 점심을 맛본다. 입맛에 맞아 너무 맛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제철인 살구가 손에 꼽힌다. 반평생 맛본 살구 중 최고인 것 같다. 이렇게 과일들이 맛있는 곳이 중앙아시아의 여름이란다. 농약과 영양제가 아닌 뜨거운 열기와 강렬한 태양이 만들어 내는 자연의 맛이기 때문일까.

▲ 카자흐스탄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다. 그래도 70%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가슴이 답답해 침을 맞으러 온 환자의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
진료를 마치고 환자들의 수를 파악해 현지의 병원과 연락하더니, 단장님과 진료 부장님이 둘로 나누어 현지 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진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은 여기에 온 이유를 잊지 않는 것 같다.

둘째 날, 언어 장애인 가족이 병원을 찾았다. 어린 아기가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한다. 엄마가 말을 못하니까 당연한 일일 터. 걷지 못하는 것을 침을 놓고 기를 불어넣어 에너지 치료를 하고 걷는 연습을 시키니 조금씩 걸음마를 한다. 이제부터 부지런히 연습하면 걸을 수 있다며 다음날 또 오라고 당부하고 약을 주어 보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단장님은 마지막 날까지 그 아이를 기다렸다.

진료를 마치고 알마티로 돌아와 비행기 시간이 남아 톈산산맥을 찾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안개가 자욱하다. 리프트를 타고 오르다 일순간 안개와 비구름이 몰려들어 바로 앞이 가려진다. 순간 엄습하는 공포감. 그러다가 벗겨지는 안개에 안도하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결국 철수하고 다음날 알마티에서 100km 떨어진 깝차카이 인공호수를 찾았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톈산산맥의 만년설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을 감상하며 자연을 즐긴다. 마치 어제를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한 자연의 품에 안겨.

▲ 진료를 마친 마지막 날. 콤스타 의료진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카자흐스탄은 어떤 나라?

▲ 여기 이곳은 아직 제대로 된 교통질서가 없다. 도시 속에서 저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인다.
카자흐란 이름은 유랑자 또는 독립인이라는 말로 이들 민족은 13세기 칭기즈칸의 후예로 전통적인 유목민족이다. 중앙아시아의 북부에 위치하며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국가로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 수도는 아스타나(Astana)이다.

북쪽으로 러시아연방, 동쪽으로 중국·몽골, 남쪽으로 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에 접하고, 서쪽으로는 카스피해(海)에 면한다. 약 120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 우리 민족인 고려인은 9번째로 많은 약 10만 명(0.6%)이 거주하고 있다. 1925년 카자흐스탄 자치공화국을 거쳐 1936년 카자흐스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으며, 1991년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카자흐스탄공화국으로 독립했다.


사진가 최광호 | 1956년 강릉 출생. 고교시절 우연히 시작한 사진에 빠져 거의 모든 시간을 사진과 함께 해 온 사진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사진이다”로 답하는 여전히 뜨거운, 청춘. 우연한 기회에 스리랑카, 몽골, 티베트, 우즈베키스탄 등 수십 차례에 걸친 <콤스타> 의료봉사에 동행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숨 쉬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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