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도쿄 츠케멘과 소바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도쿄 츠케멘과 소바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4.04.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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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뚫고 아침부터 라멘 순례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라면을 많이 먹는 나라다. 세계라면협회(IRMA)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1인당 연간 69개를 먹는다. 2위인 중국의 두 배다. 물론 인스턴트 라면의 얘기다. 일반 라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본이 단연 1등이다. 원래 라면은 중국에서 기원했다. 깐수성 란저우의 면이 약 100년 전에 일본에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화의 길을 걸었지만 중국 음식이라는 흔적이 여전히 강하다. 그릇이며 스타일이 중국의 여러 면 요리와 닮아 있다. 아예 ‘주카소바’라는 말도 그대로 쓴다. 주카란 중화(中華)란 뜻이다. 일본 내 화교가 그런 면 요릿집을 운영하기도 한다.

▲ 도쿄 소바는 오사카와 달리 국물에 진간장(왜간장)을 많이 써서 색깔이 검고 단맛이 강하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라멘집은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라이라이겐(來來軒)'이라고 한다. 100년 역사다. 사실상 일본 음식의 상징이 되었다. 중국산이지만 라멘에 목숨을 건다고 해야 할까, 거의 일본 민족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와 대중들은 라멘에 열광한다.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고, 매년 수많은 지역에서 콘테스트가 벌어진다. 라멘은 그러면서 진화한다. 일본 면 요리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2월 초 도쿄 취재를 다녀왔다.

마침 간토지방(도쿄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기록적인 폭설이 왔다. 도쿄 지하철 일부가 끊기고, 토요일인데도 가게를 임시로 휴업을 할 정도였다. 도쿄는 눈이 잘 오지 않는 지역이며 오더라도 양이 적다. 그러나 그날 저녁과 밤새 20cm가 넘게 쌓였다. 악전고투의 취재였다. 먼저 새로운 스타일의 면 요리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은 면인 츠케멘(つけめん)을 먹기로 했다. 놀랍게도 아침 6시 반에 호텔 로비에서 길을 나섰다. 낮과 저녁에는 줄을 너무 오래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아침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부리나케 츠케멘의 최강자 ‘로쿠린샤’로 항했다. 아침부터 면을 먹는다. 우리 식습관에서 썩 내키지 않았지만 취재이니 별 수 없이 이동했다. 도착 시간이 7시 10분. 7시 반에 문을 여는데, 놀랍게도 이미 줄이 몇 십 미터. 기다려서 겨우 입장했다.

▲ 츠케멘은 강한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라멘의 한 종류다.

츠케멘은 강한 소스에 면을 찍어 먹는 스타일이다. 아침에 먹기에는 더없이 불편한 면인데도 줄을 서서 먹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츠케멘도 일종의 라멘이지만 일본 스타일로 진화했다. 츠케멘은 1955년 도쿄에서 유명한 라멘집의 주인 야마기시 카즈오가 처음 개발했다고 한다. 뜨거운 물에 간장을 넣어 라멘 면발을 찍어 먹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츠케멘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다. 보통 라멘이 간장, 된장, 돼지뼈국물 세 가지가 기본인 데 비해 츠케멘은 매운 된장과 어분을 넣은 일본식 맛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로쿠린샤에서 먹은 것도 진한 돼지뼈국물에 어분을 넣은 것. 기본적으로 우동과 소바(메밀국수)에 쓰는 다시마 가다랑어 ‘다시’를 고기뼈국물에 섞는 ‘더블 스프’가 인기다. 고기뼈국물은 중국식이고 다시는 일본식으로 퓨전과 개량에 강한 일본 면 요리의 한 역사를 들여다보게 된다.

흔히 일본인인 국물이 많은 우동을 좋아할 것 같지만 실제는 쯔유(소스)에 찍어먹는 걸 더 선호하고 더 우동답다고 여긴다. 반면 라멘은 국물에 넣어 먹는 걸 더 좋아한다. 그런데 츠케멘은 우동처럼 소스에 찍어먹는 방식이다. 화혼양재나 동도서기, 실용적인 면을 강조하고 변주하는 일본인의 스타일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게 바로 츠케멘이라고 여겨졌다. 중화풍의 라멘을 오랫동안 먹어오던 우동과 소바의 취식법(소스에 찍는)과 믹스한 ‘초절정 퓨전’요리가 아닌가.

츠케멘은 아주 진해서 정신을 못 차리게 끈적인다. 라멘의 국물을 적은 양의 소스로 농축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다 어분까지 갈아 얹으니 거의 뻑뻑한 고농축 진국에 면을 찍어먹는 형태가 된다. 이런 요리를 아침에 먹다니, 놀랍지만 어쨌든 나쁘지 않은 식감이었다. 필자 역시 한국식 음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그런 츠케멘의 취식법은 상당히 혼란스러웠지만 일본 면의 한 경지를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츠케멘은 일반 라멘과 면이 다르다. 가늘지 않고 중화면의 본디 형태를 띠고 있다. 두툼하다. 우리 자장면 정도의 굵기다. 이걸 차갑게 헹궈서 준다. 자루소바나 자루우동(건져서 차갑게 식혀 먹는 방법)과 같은 형태다. 면은 간스이(간수)를 넣어서 노랗다. 잘 퍼지지 않고 탄력이 강하다. 면의 양은 아주 많다. 라멘보다 1.5배 이상 많아 보인다.

▲ 메밀의 두 가지 면을 맛볼 수 있는 세트.

몇 가지 소바도 취재했다. 도쿄 아자부주방이라는 지역의 소혼케 사라시나 호리이라는 220년 된 메밀국숫집이었다. 220년이라니. 과연 일본의 뚝심을 보여준다. 8대째 내려오고 있는데 초대부터 변한 것이 없다고 한다. 홀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주로 일한다. 노포(老鋪)다운 기운이다. 이 집이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메밀면의 형식이다. 보통 메밀이라고 하면 속껍질의 일부를 섞어서 약간 갈색과 누런색을 띠는 게 보통이다. 일본에서도 대개 그렇다.

그런데 이 집은 메밀쌀의 속만 도정하여 아주 하얀색의 면, 즉 ‘사라시나’로 유명해졌다. 과연 면이 밀가루보다 더 하얗다. 흰 눈 같다. 맛은 글쎄? 맛이 있다 없다는 떠나 하나의 각별한 면을 대하는 기분이랄까. 두 가지 면을 맛볼 수 있는 세트를 받았다. 필자 입에는 역시 색깔이 있고 꺼칠한 면이 느껴지는 쪽이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필자의 혀에는 메밀의 끝까지 가본다는 느낌을 받는 사라시나 면의 촉감이 오래 남았다. 소바집에서는 식사가 끝날 즈음, 주전자에 메밀 삶은 걸쭉한 물을 내준다. 한국 냉면집에서 식전에 내는 것과 비슷하다. 여기에 면을 찍어먹던 쯔유를 섞어 마신다. 개운하게 입안이 정리된다.

결국 그날 밤, 한밤중에도 영업하는 소바집에서 거칠거칠하고 색깔이 거무튀튀한 메밀국수를 먹었다. 국물도 넉넉하게 해주는 스타일 말이다. 도쿄는 오사카와 달리 국물에 진간장(왜간장)을 많이 써서 색깔이 검고 단맛이 강하다. 도쿄의 습한 날씨에 맞는 국물이 아닐까 싶다.

박찬일|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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