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막은 여전히 신비로웠다
그래도 사막은 여전히 신비로웠다
  • 글 사진ㆍ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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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마라톤대회 자원봉사 참가기 l 2010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

▲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비사막. 붉은 모래로 뒤덮인 황량한 사막을 선수들은 일주일 동안 끝없이 달려야했다.

20여 개국 150여 명이 선수로 열띤 경쟁…각국에서 뽑힌 16명의 자원봉사자들도 열심

지난 6월27일부터 7월3일까지 중국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톈산산맥의 동쪽 투루판(Turfan) 지역에서 고비사막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중국의 고비사막 마라톤 대회는 2003년 첫 대회 이후 해마다 대회 장소가 바뀌면서 진행되고 있다. 매년 고비사막 대회에 참가하는 안병식 씨가 올해도 고비사막을 찾았다. 하지만 올해는 선수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고비사막을 찾은 그가 광활한 사막의 자연과 선수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담아왔다.

글 사진ㆍ안병식(소속·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 모래 절벽으로 둘러싸인 사막 한 가운데 캠프가 차려졌다.

사막 레이스에서는 선수와 스태프, 미디어 팀, 메디컬 팀, 자원 봉사자 등 어느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극한의 환경을 달리는 선수들에게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는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선수로만 대회에 참가하다 자원봉사자로 대회에 참여하려니 이것저것 신경 쓸 것들이 많았다. 사막마라톤에서 자원봉사자는 CP(체크 포인트)에 물을 보급하고, 기록을 체크하고, 깃발을 회수하는 등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스태프와 선수를 돕는 일을 한다.

사실 자원봉사자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사막을 여행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대회에 지원을 한다. 대회 측에서는 참가자들의 가족이나 지난 대회에 선수로 참가했던 사람들을 우선으로 자원봉사자를 뽑는데, 이번 대회에는 16명의 자원봉사자가 선정됐다.

고비사막 마라톤 대회는 협곡·강·초원지대·모래사막 등 다양한 지형을 매일 달려야 하고, 특히 마운튼 데이 때는 2500~3000m가 넘는 산을 올라야하기 때문에 어느 대회보다 힘든 레이스가 펼쳐진다. 지형이 다양한 만큼 각 지역마다 날씨와 기온이 다를 뿐더러 사막의 특성상 일교차가 커 대회 기간 동안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 뜨거운 태양빛이 작렬하는 사막의 무더위 속에서 힘겹게 달리고 있는 선수.

여유롭게 사막을 여행하는 기분
▲ 섭씨 5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선수들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첫날은 해발 2000m의 산과 초원지대에서 대회가 진행됐다. 첫째 날 자원봉사자가 할 일은 체크 포인트2에서 참가자들에게 물을 보급하고 기록을 체크한 후 맨 마지막 주자가 지나가면 코스 표시 깃발을 회수하는 것이다. 힘겹게 달리는 선수들을 지나보내고 맨 마지막 선수와 함께 결승 지점까지 걸었다. 체크 포인트2에서 결승점까지는 20km. 힘들게 레이스를 하는 마지막 주자의 모습이 안쓰럽기는 했지만 선수로 참가했을 때와 달리 여유를 가지고 사막을 걷는 기분이 색달랐다.

다음날 아침, 어제 하루 종일 사막에서 봉사를 했기 때문에 주최 측에서는 하루 종일 휴식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한 곳에만 가만히 머물러 있기 싫어하는 나에게는 지루한 하루였다. 나는 달리는 것이 행복하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사이 몸속의 감각들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지만 그 기분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가 없다. 사막을 달리는 동안 자연의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고,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더위에 지친 두 명의 여자 선수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사막을 달리고 있다.

대회가 진행 될수록 해발 고도는 점점 더 낮아지고 태양은 더 뜨거워졌다. 바람까지 잔잔해지면서 섭씨 50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됐다. 마지막 체크 포인트에서 캠프까지는 차량이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라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배낭 가득 물을 넣어 체크 포인트까지 이동했다. 워낙 날씨도 덥고 코스도 힘들어서인지 선수 중 일부는 레이스를 포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셋째 날 오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대회 참가자 중 한 명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 것이다. 뜨거운 날씨도 문제지만 사막에서는 스스로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대회는 계속 진행됐다. 자원봉사팀은 마지막 주자가 들어올 때 까지 계속 배낭 속에 물을 넣어 실어 날랐다.

▲ 사막의 밤은 어둡고 적막하다. 헤드램프를 켠 채 저녁 식사중인 선수들.

선수들과 함께 뛰는 자원봉사자들
넷째 날 새벽,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100km를 달리는 롱데이라 참가자들이 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인 탓이다. 오늘은 뉴질랜드에서 온 토드와 메디컬 자원봉사자로 온 미국의 줄리에와 함께 체크 포인트7에 지정을 받았다. CP7은 사람들이 잠을 잘 수 있는 텐트와 뜨거운 물을 공급해주는 곳이라 롱데이 체크 포인트 중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곳이다.

뉴질랜드의 토드는 부인이 선수로 참가해서 자원 봉사자로 함께 온 케이스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토드 부인이 한국에서 1년 넘게 머물렀다는 이야기에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줄리에는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미안해서 쉬지를 못할 정도였다.

▲ 하루 경기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수들.

▲ 빡빡한 경기 일정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선수들.
CP7은 출발 지점에서 70km 떨어진 지점이라 물집 환자들이 많았다. 줄리에는 아침부터 마지막 선수가 도착할 할 때 까지 한숨도 자지 못하고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롱데이 구간이라 새벽까지 선수들이 이어져 토드와 나도 밤을 샌 건 마찬가지였다.

선수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마라톤 대회. 선수들만큼이나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원봉사자와 스태프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극한의 환경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막에는 뜨거운 태양과 모래 바람만이 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배낭을 메고 삭막한 사막을 달린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막막한 사막 한 가운데서 나의 한계점을 경험하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성취감을 얻으며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사람들은 사막을 찾는다. 모두가 다른 꿈과 소망을 가지고 사막을 찾지만 모두 새로운 꿈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막을 찾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넷째 날 병원으로 실려 간 선수가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는 소식이 대회 후에 전해졌다. 한 참가자의 죽음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삶의 마지막까지 열정적으로 살다간 간 참가자의 명복을 빈다.

▲ 일주일 동안 함께 달리며 정이 들어버린 선수들은 결승점을 통과할 때도 두 손을 꼭 붙잡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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