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Travel | 전주 ① 여는 글
Korea Travel | 전주 ① 여는 글
  • 글 채동우 기자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4.03.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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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프리퀄을 담고 있는 도시

전주는 어딜 가도 이야기가 넘친다. 하다못해 나무 한 그루도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700여 채 한옥이 처마를 맞대고 늘어선 한옥마을은 이야기해 무엇하며, 전주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전주천, 나지막한 높이에서 전주를 내려다보는 오목대, 우람한 고목이 지키고 있는 향교까지 전주 곳곳은 이야기의 보고다. 백 년 단위로 나이를 자신 고택과 고목이 세월의 풍화를 버틸 수 있었었던 건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린 이야기들 때문이 아닐까. 무형의 이야기들이 똘똘 뭉쳐 스크럼을 짜 유형의 유산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들이 아우라가 되어 곁을 지키는데 어찌 빛나지 않을 수 있을까.

▲ 잘 정비된 한옥마을. 그러나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문화로 기울고 있다.

전주는 조선의 프리퀄이다. 프리퀄, 이야기의 그전 이야기. 조선이 탄생하기 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도시가 바로 전주다.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세우기 12년 전, 황산대첩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개경으로 돌아오던 길에 본향인 전주에 들러 여러 승리를 자축한 곳이라 일컬어지는 오목대는 프리퀄의 시작이다. 이곳에서 그는 유방의 대풍가를 호기롭게 부르며 고려를 뒤엎고 새 나라를 열고자 하는 꿈을 알렸다고 전해진다. 태종 10년에 창건된 경기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태조의 영정이 보관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성계의 이야기만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오목대 잔치에 동행했던 정몽주는 그날부로 이성계와 갈라서게 된 것으로 알려져있고 착잡한 마음을 달래고자 지금의 남고산 만경대에 올라 ‘등전주망경대’를 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 오목대를 오르면서 바라본 풍경.
▲ 한옥마을 중심가를 벗어나야 비로소 호젓한 한옥길을 걸을 수 있다.

▲ 물갈비가 서빙되어 식탁에 오르면 이렇게 생소한 모습이다.

전주의 맛은 이율배반적이다. 전주에서 내는 음식들은 대체로 서민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의 뿌리가 남아있는 곳이라 그런지 반서민적이기도 하다. 그 묘한 정서가 전주 음식의 특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비빔밥은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이나 전주에서만큼은 예외다. 번듯하게 육회까지 올라간 고가의 비빔밥은 서민음식이라 보기 어렵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물갈비라는 음식도 반대의 의미로 마찬가지다. 풍성한 콩나물과 당면 아래로 자작한 육수와 몇 덩이 돼지갈비가 들어있는 이 음식은 그 자체로 저렴한 비용으로 여럿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하지만 고급 식재료의 대명사 ‘갈비’라는 단어를 음식 이름에서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 기묘한 분위기는 비단 음식에서만 풍기는 것은 아닐 테다. 조선 왕조의 프리퀄은 이렇게까지 촘촘하게 전주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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