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부산어묵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부산어묵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4.02.2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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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뎅공장 근처에 가면 고소한 냄새가 정말 끝내줬지요”

우리는 어묵이니 꼬치니 하고 부르지만 생활에서는 여전히 오뎅이 같이 쓰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표준어대로 ‘어묵’을 배워도 사회에선 흔히 ‘오뎅’이다. 오뎅을 쓰지 말자고 하는 이야기는 오래 되었다. 1949년 10월 9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정부 당국에서 교정안을 내놓고 있다. 오뎅-교치 안주, 소면-실국수, 천부라-튀김, 사시미-생선회…. 꼬치를 교치라고 불렀던 것이 흥미롭다. 어쨌든 해방 이후부터 일본어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경각심은 있었으나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 어묵은 가마보코, 즉 생선살을 짓이겨 튀기거나 구운 것을 말한다.

▲ 부산은 어묵의 메카다. 1945년 처음으로 본격적인 생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에도 언론과 정부 당국, 교육계, 언어학계에서 일본어 잔재 청산과 관련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오뎅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보리(물수건), 오봉(쟁반), 곱뿌(컵) 같은 일본어는 식당에서 없어졌는데 유독 오뎅은 왜 굳건(?)하기만 한 걸까. 아무래도 음식이란 다른 추상명사나 기물(器物)과 달리 훨씬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오뎅은 자연스럽게 어묵이나 꼬치과 함께 쓰이고 있다. 초밥보다는 스시, 회보다는 사시미라는 일본어가 ‘외국어 본연의 느낌을 살려서 본토(?)의 이미지’를 뚜렷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호소력 있게 쓰이고 있는 셈이다. 일례로 음식전문가를 자처하는 블로거의 포스트를 보면, 대부분 오뎅, 사시미라고 쓴다. 시보리, 오봉은 쓰지 않는데 말이다.

먼저 오뎅과 어묵, 꼬치의 의미를 좀 살펴보자. 오뎅이란 ‘오’라는 접두사와 ‘뎅(田)’이란 글자가 합쳐진 것이다. 꼬치에 꿰어 굽거나 끓인 요리를 통칭한다. 그러니까 꼬치라고 하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묵은 가마보코, 즉 생선살을 짓이겨 튀기거나 구운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오뎅=어묵(가마보코)는 아니다. 또 모든 어묵을 꼬치에 꿰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오뎅=어묵=꼬치는 절대 성립하지 않는다. 한국어 표기법에서 오뎅을 꼬치나 어묵으로 쓰라고 하는 건, 그래서 좀 어거지다. 필자 생각엔 스파게티를 ‘이태리 국수’로 억지 번역하지 않는 것처럼 오뎅이란 말도 하나의 외래어로 살려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앞서 밝힌 대로 오뎅=어묵=꼬치가 아니기 때문인데다가, 억지 번역은 그 음식의 구체성을 표현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오뎅은 일본에서 시작된 음식이다. 한국엔 강점기에 건너왔다. 완제품이 들어오다가 이내 한국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일번인 기술자의 손에서 한국인으로 전수되었을 것이고, 일제 때 오뎅집은 상당히 성업한 걸로 보인다. 당시 소설이나 신문기사에 자주 등장한다. 1938년 2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는 “선술부터 시작하여 오뎅 빠까지 골고루(마셨다)”가 나온다. 오뎅은 당시에도 사각으로 ‘빠’를 만들고 둘러앉아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요즘 시중에 있는 오뎅바는 제법 ‘오리지널(?)’한 역사가 있는 술집인 셈이다. 오뎅은 일본산을 강조하면서 고급집도 있으나 여전히 서민의 상징이다.

“둘은 늘어선 공장들을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구두방에서 양장점까지가 닥지닥지 붙어있는 좁은 골목길이 얼마간 이어지다 나타난 빈터에는 십여 대의 리어카가 늘어서 있었다. 오뎅 국물을 끓이는 김이 포장 속에서 새어나왔고 닭똥집을 굽는 냄새가 멀리까지 퍼져 왔다.” - 동아일보 1979년 3월 6일자 한수산의 소설 <달이 뜨면 가리라>에서

▲ 한남동 마인드라고 하는 오뎅집의 오뎅. 국물이 검은 것은 간토식, 즉 도쿄 스타일이다.

단순히 어묵을 양념한 국물에 끓인 것을 오뎅이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일본식으로 오뎅다운 구색을 갖춘 집들이 늘어난다. 우선 부산에서 그 갈래를 짚을 수 있다. 부산 구도심에 가면 깡통시장이 있다. 부평시장을 이르는 다른 이름이다. 한국전쟁 이후에 미군물자인 캔 제품이 유출되어 팔리던 시장이라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른바 오뎅골목이 있어서 관광객도 꽤 있다. 유명한 ‘부산오뎅’ 공장과 판매장이 줄줄이 포진하고 있다. 환공어묵, 효성어묵, 삼진어묵…. 사진 촬영에도 친절하게 응하고, 시식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직접 사갈 수도 있고, 인터넷 주문도 받는다. 골목이 활력 넘친다.

예전에는 “오뎅 만드는 거 직접 보면 못 먹는다” 속설이 있었다. 위생 설비가 부족하고, 대충 시장에서 팔리던 생선 부산물을 마구잡이로 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 듯하다. 기름도 제때 갈아주지 않는 집들이 꽤 있었을 테다. 요즘은 ‘해썹(위생관리국가 기준)을 받은 집이 있을 만큼 위생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다.

부산은 어묵의 메카다. 인근 남도의 여러 지역에서 일제 강점기에 공장이 생겼고, 해방 이후에도 번성했다. 부산 어묵의 원조는 보통 동광식품을 든다. 1945년 처음으로 본격적인 생산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다음으로는 1950년 삼진식품이다. 삼진식품은 현재도 유명한 집으로 존재한다. 음식평론가인 마산 출신 황교익 선생은 오뎅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1960년대 마산 바닷가 부두 바로 옆에 오뎅 공장이 있었어요. 어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그 근처에 가면 고소한 냄새가 정말 끝내줬지요. 당시에는 깡치(조기새끼)나 풀치(갈치새끼) 같은 잡어를 통째로 삽으로 퍼서 기계에 넣고 갈아낸 후 정어리기름(고래기름을 쓰는 곳도 있었음)에 튀겨냈어요. 내장이 들어가서, 생선 갈아낸 것이 커피 간 것보다 색이 더 짙었고 약간 쓴맛도 났지요. 뼈도 간혹 씹혔는데, 그래도 싱싱한 어육으로만 만들어 맛이 정말 좋았습니다.”

요새 어묵의 재료는 갈치와 조기, 노가리 등 국내산 어육과 수입육인 실꼬리돔을 섞어 쓴다. 선입견과 달리 어육이 70% 이상 들어가고, 전분(밀가루)는 최소화되어 맛있다. 아예 생선살로만 만드는 집도 있다. 최근에는 조기가 풍어라 넉넉히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오뎅 재료로는 도미, 대구, 조기 등을 최고급으로 친다.

부산 대연동에는 미소오뎅이라는 아주 특이한 오뎅집이 있다. 부산 최고의 오뎅만 모아서 판다. 살살 녹는다. 메뉴판에는 더치소주에 벨기에 고급 맥주가 있는, 오타쿠(?)적인 기질이 넘치는 사장님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부산에 가면 꼭 들러볼 집이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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