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NOTE | 터키 이즈미르
ANDREW'S TRAVEL NOTE | 터키 이즈미르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4.02.2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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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멀티플렉스 원조 ‘아고라’

이즈미르는 고대 그리스 문명 때부터 근처 에페소와 더불어 오리엔트 지방의 대표 도시로 이름을 날렸다. 특히 이곳은 로마제국에 편입된 뒤 동서양의 교차점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을 이용해 지중해 문명의 중심지로 나날이 번성했다. 그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도 이즈미르를 수시로 방문했다고 하니 당시의 명성을 짐작할 만하다.

▲ 현대와 과거가 교차하는 이즈미르 유적지 일대.

지금부터 2,300년 전, 아고라 건물이 완성되던 화창한 날씨의 어느 봄날. 고대도시 이즈미르(Izmir) 한복판에 자리 잡은 나지막한 파고스 언덕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흰 광목을 둘둘 말린 긴 전통 드레스를 입은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아고라 앞에 도착한 순간 거대한 건물이 위용을 뽐내며 눈앞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시 이즈미르를 지배하던 튀르크족의 왕은 이 건물을 아고라로 명명하고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자유로운 민중집회가 가능한 상설토론장과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실내점포들이 건물 한편을 차지했다. 또한 건물 오른쪽에는 법을 집행하는 사법부가, 그 반대편에는 종교집회장이 마련돼 종교, 문화, 행정이 어우러진 현대의 멀티플렉스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다기능 복합건물 아고라는 원래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민중의 집회 장소나 시장을 의미했다. 아고라는 2천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나라별 고유의 의미로 파생돼 미국에서 플라자(Plaza). 영국 스퀘어(Squre), 프랑스 플라스(Place), 독일 플라츠(Platz), 이태리 피아짜(Piazza)가 되었으며 한국에는 모 포털사이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을 ‘아고라’라고 칭하며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 고대 지중해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 이즈미르. 1800년 전 대지진으로 인해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 이즈미르 아고라의 기둥들. 당시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남서쪽으로 1시간 정도 비행하면 현존하는 이오니아 양식의 아고라 중 가장 큰 규모의 이즈미르 아고라를 볼 수 있다. 고대 히타이트부터 그리스, 로마, 몽골, 이슬람까지 다양한 문화가 교차했던 이즈미르는 수많은 유적들을 보유하고 있는 보물창고와 같은 곳이지만 그 중 아고라의 매력은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이즈미르의 아고라는 석조를 기본 재료로 사용했으며 3층 규모에 축구장 두 배만한 면적으로 건축되었다. 수치상으로 가로가 200m, 세로가 170m에 이르니 고대뿐만 아니라 현대의 건축학적으로 접근해도 그 규모가 거대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대리석 원기둥들은 아고라 건물 앞을 도도하게 나열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 아치형 지붕들이 정교하게 이어져 있다. 특히 아고라의 넓은 지붕 위로 마치 파도타기처럼 이어진 아치들은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의 모던한 건축양식을 빼닮았다. 또한 이러한 것들이 아치의 힘을 이용한 정교한 물리적 힘만으로 지붕의 무거운 돌들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 2천년의 세월에도 아직까지 물을 쏟아내고 있는 식수대.
아고라는 규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2천년 전 설치된 하수 시설은 홍수가 와도 작동에 문제가 없으며 상수도 역시 현재도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콸콸 나올 정도로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식수로는 부적합하다. 건물 천장 곳곳에 뚫린 오픈 지붕은 자연채광 기능과 함께 자연스러운 실내 환기를 도와준다. 그러나 지금부터 1,800년 전 어느 날, 에게해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즈미르와 아고라는 순식간에 땅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이즈미르는 양치기들의 쉼터로 남아 옛 영광을 간직한 채 잠들어 있다.

최근 독일과 터키가 본격적인 발굴 작업을 진행하면서 고대의 대도시가 서서히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시저와 클레오파트라가 머물던 거대한 저택도,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시민들도, 그리고 소리 높여 흥정하던 장사꾼들도 모두 시간 속에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2천년 간 끊임없이 물을 쏟아내는 식수대와 같이 지금도 이즈미르는 유구한 역사를 토해내며 이방인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앤드류 김(Andrew Kim)|(주)코코비아 대표로 에빠니(epanie) 포장기계 및 차를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커피와 차 전문 쇼핑몰(www.coffeetea.co.kr)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여행전문 사진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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