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치맥
태양의 요리사 음식잡설 | 치맥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4.01.02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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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픈 현실이 투영된 음식문화

아마 두어 해 정도 지나면 옥스퍼드 사전이나 위키피디아 국제판에 올라갈 낱말이 아닐까. 맥주와 치킨을 함께 즐긴다는 이 시중의 음주 관습은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됐다. 유행도 아니고 서사라니 좀 심한 거 아닌가 싶겠지만, 내용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 매년 치킨시장은 이 끔찍한 불황과 레드오션에도 성장하고 있다. 3조원이니 4조원이니 하는 말이 돈다.

▲ 최근 치킨 요리는 주머니가 가벼운 ‘88만원 세대’의 주요 외식 아이템이 되면서 더 푸짐하게 변화하고 있다. 튀긴 감자나 달걀, 심지어 숙주나물무침까지 주는 집들이 인기다.

배달 치킨은 자장면과 탕수육을 밀어내고 배달 음식의 선두 주자가 된 지 오래다. 중국 음식은 내점 고객(직접 가게에 손님이 와서 식사하는 경우)이 지속적으로 줄고, 그나마 배달에 의존해서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시장이 치킨에 밀려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치킨은 세계 최대의 유민(流民·디아스포라) 음식이자 한국에서는 한국화의 길을 걷게 된 역사상 최고의 배달 음식이자 육식이 되고 있다.

먼저 치킨이 왜 유민 음식인가. 한때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하는 유민은 유태인이었다.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이 기록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한국의 실향민(강제 이주된 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일제 징용자, 중앙아시아 이주 고려인 등)은 아직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큰 숫자는 당연히 흑인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납치된 후 오랜 기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미국인과 기타 중남부 아메리카인으로 대를 이어 살고 있으니 돌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으나 현재 지구상 가장 큰 숫자의 유민 후예라고 할 수 있다.

▲ 서양식 저온 요리로 만든 통닭. 오븐구이 기법을 망라해서 만들어낸 로스트 치킨으로 껍질을 바삭하게 만드는 걸 중요시하는 서양요리의 스타일이 반영되어 있다. 튀기지 않아 칼로리가 상대적으로 낮다.
그런데 미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소울푸드, 그러니까 조상들의 한이 담긴 음식이 바로 우리 외식 시장의 최강자 ‘치킨’이다. 그들은 백인 ‘주인’들이 먹지 않는 부위인 날개와 다리 관절, 발, 목, 갈비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소기름과 면실유에 튀겨 먹었다. 먹기 힘든 부위이지만 기름에 세게 튀기면 바삭해서 씹을 수 있었다. 살코기는 백인을 주고, 그들이 먹을 수 있었던 부위는 이렇게 기름에 튀김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후 프라이드치킨-여기서 치킨이라는 용어가 한국에도 그대로 전해져 닭튀김이나 통닭이라는 말을 대체하게 된다-은 흑인들의 전유물을 떠나 세계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특히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브랜드가 퍼뜨린 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각 나라의 음식 서사를 무너뜨렸다. 그중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닭요리는 굽는 줄만 알았던 유럽에까지 튀기는 요리법을 전파하게 됐다.

한국에 전파된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은 레시피가 유출되면서 한국식 치킨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한국의 닭 요리는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모방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치킨’이 탄생하면서 전국적인 선풍을 몰고 온다. 파, 간장, 마늘 치킨이 잇달아 등장했고, 불황을 맞아 치킨을 두 마리니 주는 브랜드도 성장했다. 치킨시장은-이런 말도 닭튀김이 최강자인 한국만의 아주 특이한 조어 아닌가-레드오션이지만, 여전히 가장 거대한 시장이어서 꾸역꾸역 새로운 브랜드가 만들어지고 시장에서 격투를 벌인다.

취직이 어려워지고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세대는 닭에 생맥주를 먹으며 청춘의 시기를 보낸다. ‘치맥’이라는 조어의 탄생 배경이다. 그런 취향에 발맞춰 젊은이들 대상의 점포형 프라이드치킨 집들은 홍대, 종로 등지에 둥지를 틀면서 선호하는 메뉴를 밀기 시작한다. 배고프고 돈 없는 손님을 위해 감자, 떡(최근에는 숙주무침까지 등장) 등을 튀겨서 곁들여주고 있는 것이다. 치맥은 올해 대구에서 세계대회를 열 정도로 한국이 맹주임을 선언할 정도였다.

치킨요리에는 이처럼 유민의 역사, 한국에 최초로 보급된 미국식 패스트푸드(한·미간의 정치적, 경제적 연결과 관련된 코드들이 숨어 있는), 한국 외식시장의 최강자, IMF와 대량 해고의 그늘(수많은 가장들이 실직하고 차린 가게가 바로 프라이드치킨이었다. 외식 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프라이드치킨의 확장은 바로 이런 아픈 내상을 안고 있다), 거기에 젊은 세대의 ‘이태백’(주머니가 가벼운 이들 세대에 적당한 외식 아이템)이 되었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치킨, 치맥은 아픈 한국의 현실을 투영하는 음식문화가 되었고, 바삭한 튀김은 많은 이의 눈물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치킨 요리는 진화를 거듭하면서 요리로서 괄목한 변화를 수용하고 있다. 단순히 튀김이 아니라, 오븐구이, 전기구이, 서양 요리 기술의 핵심인 로스트 방법까지 적용되고 있다. 치킨은 이미 원산지였던 미국보다 우리 기술이 더 세계적으로 호감을 얻고 있을 정도다. 청담동, 그 비싼 땅에 치맥집이 열린 것도 이런 일련의 과정에 있다. 브랜드 자체가 치맥이다. 기술은 놀라워서 최첨단의 기술이 다 망라되어 있다. 알고 보니, 개발한 주방장이 미국의 유명한 식당에서 총 주방장으로 일했던 젊은 한국인이다. 예전 같으면 정통 요리사들이 백안시했던 프라이드치킨의 세계에 촉망 받는 셰프들까지 진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치킨은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박찬일 | 소설을 쓰다가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학교 ICIF, 로마 소믈리에 코스와 SlowFood 로마지부 와인과정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 ‘트라토리아 논나’ 등을 성공리에 론칭시켰다. 지은 책으로 <박찬일의 와인 컬렉션>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등이 있다. 최근 서울 이태원에 이탈리아 전문식당 ‘인스턴트펑크’를 개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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