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S TRAVEL NOTE | 미국 ‘아메리카 바이슨’
ANDREW'S TRAVEL NOTE | 미국 ‘아메리카 바이슨’
  • 글 사진 앤드류 김 기자
  • 승인 2013.12.3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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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과 함께 옐로우 스톤을 누빈 소떼

흙먼지 일으키며 몰려가는 소떼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버팔로다. 버팔로는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 물소와 들소를 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이곳 옐로우 스톤을 누비는 녀석들은 아메리카 바이슨이라 불러야 맞다.

▲ 도로를 점령한 아메리칸 바이슨. 옐로우 스톤에 살았던 인디언들은 소들에게서 가죽과 식량을 얻었다.

이 소는 머리에서 시작해 목, 어깨, 앞발로 이어진 북슬북슬한 긴 털이 인상적인데 코는 마치 고릴라처럼 반들반들하고 눈은 두상에 비해 아주 작아 우둔하게 보인다. 발목은 덩치에 비해 가늘어 위태롭게 보이지만 인간보다 무려 3배나 빠른 속도로 달린다. 온순할 것 같지만 아메리칸 바이슨은 못되고 급한 다혈질의 초식동물이다. 이들에게 접근시 조심하지 않으면 사고를 당할 수 있어 보기보다 훨씬 위험한 동물이다.

옐로우 스톤을 주름잡던 소떼 규모는 셀 수 없는 흙먼지처럼 엄청나게 많았다. 이를 본 미국의 시인이자 동물학자 윌리엄 호나데이는 ‘아메리칸 바이슨의 수를 세는 것 보다 숲의 나뭇잎 수를 세는 것이 빠를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지금은 멸종위기로 오히려 개체수를 늘려야할 처지가 됐다.

▲ 옐로우 스톤은 미국에서 처음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신비한 풍광으로도 유명하다. 백인들의 소탕 작전 이전에는 여러 인디언 부족과 아메리칸 바이슨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아메리카 바이슨의 역사는 인디언과 함께했다. 350여 년 전, 인디언 키오와 족이 지금의 옐로우 스톤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아메리칸 바이슨에게서 얻은 가죽으로 옷과 텐트를 만들었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풍족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인디안 부족이 옐로우 스톤으로 몰려왔다. 이들은 평화롭게 구역을 나눠 살았지만 어느 날 백인 침략자들이 들어오면서 평화의 시대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들의 마지막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 생생히 그려져 있다. 1876년 포트키오에 주둔한 기병대는 인디언을 몰아내야 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이에 묘안을 짜낸 것이 바로 아메리칸 바이슨을 멸종시키는 것이었다. 인디언들에게 아메리칸 바이슨은 생계와 직결된 중요한 소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령관이었던 마일스 장군은 ‘우리가 아메리칸 바이슨과 인디언을 이 땅에서 몰아낸다면 이곳은 우리가 즐겨 먹는 소로 가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미 서부는 조직적으로 아메리칸 바이슨 멸종작전을 펼쳤다. 작전은 성공했고 인디언과 아메리칸 바이슨은 옛 위용을 잃었다.

지금 옐로우 스톤에는 그곳에 살던 인디언은 사라졌고 얼마 남지 않은 아메리칸 바이슨만이 한가롭게 지낼 뿐이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빠져있다 보면 미국 역사상 끔찍한 동물학살이 일어났다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대학살 끝에 인디언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아메리칸 바이슨 만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지 모르겠다.

▲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지만 가까이 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온순할 것 같지만 아메리칸 바이슨은 못되고 급한 다혈질의 초식동물이다.


앤드류 김(Andrew Kim) | (주)코코비아 대표로 에빠니(epanie) 포장기계 및 차를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다. 커피와 차 전문 쇼핑몰(www.coffeetea.co.kr)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여행전문 사진작가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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