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북서쪽 해안에 솟은 신령스런 봉우리
일본의 북서쪽 해안에 솟은 신령스런 봉우리
  • 글·박상신 ㅣ사진·김세정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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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DIC WALKING TOUR | 일본 초카이산

▲ 초카이산의 고지대는 만년설로 뒤덮여 있었다.

오타이라 주차장~초카이호수~오하마고야 산장~호코다테 주차장…약 8km 4시간 소요

글·박상신 한국노르딕워킹협회(KNO) 헤드코치ㅣ사진·김세정 KNO 코치ㅣ장비협찬·레키


일본 야마가타현(山形睍)과 아키타현(秋田睍)의 경계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초카이산(鳥海山)은 해발 2236m로 팔색조 같은 다양함을 지닌 산이다. 화산 분출로 생성된 초카이산은  일본 토호쿠(東北) 지방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으로 새와 바다를 붙여 만든 초카이(鳥海)라는 이름이 얼핏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기도 하지만, 고구려의 삼족오(三足烏)의 전설과 관련되었다는 설도 있다.

초카이의 ‘鳥(조)’는 삼족오(三足烏)를 의미하는 까마귀 ‘烏’라는 주장이 있다. 이 지역은 예로부터 산악신앙이 발달하여 높은 산을 신성시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 신성한 산에 사는 새 또한 신앙의 대상이었는데, 그중에서 삼족오를 신성시하였다고 한다. 지도상에서 고구려와 비슷한 위도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지역의 위치를 감안할 때 아주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후지산을 닮은 산, 초카이
후지산(富士山)과 닮았다하여 데와후지(出羽富士)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 초카이산은 국립공원 아래 단계인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일본 100대 명산’에 속하기도 한다. 부드러운 산세와 화산분출로 생겨났다는 점이 우리의 한라산과 많이 닮아 보이기도 하지만, 산 정상에는 일반적인 화산구가 아닌 빙하의 흔적이 남아있고 오랜 세월 빙하가 흘러내리며 침식작용을 반복한 덕분에 U자형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하여 산 정상부에는 겨울이면 3m가 넘는 눈이 쌓이고 눈 밑의 두터운 빙하로 인해 한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다.

초카이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행코스는 1150m 고지에서 시작하는 키사카타구치 코스와 후쿠라구치의 오타이라에서 시작하는 코스다. 또한 남쪽 타키노코야 주차장에서 오르는 코스는 고원지대의 야생화 군락과 계곡을 거쳐 만년설로 뒤덮인 오오세케이와 쇼세케이를 만끽할 수 있어 인기다.

투어팀은 산행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오타이라(大平)에서 출발하여 만년설과 야생화, 그리고 초카이코(鳥海湖)를 만끽한 후 정상에 오른 뒤 호코다테산소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하였다.

▲ 오타이라 능선을 따라 올라가고 있는 투어팀.

여름에 만나는 만년설
한국노르딕워킹협회 회원 31명과 함께 전날 묵은 유라리호텔에서 약 30여 분 정도 차로 달려 오타이라(大平) 주차장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점점 굵은 빗방울로 변하더니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산 전체가 운무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이지가 않았다.

우의를 꺼내 입고 거대한 초카이의 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타이라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초반부터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하는 단점이 있었다. 계단을 지나자 트레킹 코스 양 옆으로 산죽이 마치 울타리처럼 이어졌다. 이 산죽이 초카이에 사는 곰들에게는 아주 좋은 먹이가 된다고 한다.

산죽길을 한참 오르자 만년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여름에 만나는 겨울의 풍경. 이 만년설 덕분에 산자락의 해안지대는 얼음보다 더 차가운 용출수가 끊임없이 쏟아진다고 한다. 만년설이 녹은 물이 땅속으로 흘러들어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 솟아나게 되고, 그로인해 한여름에도 일정한 온도의 차가운 물이 흘러 이 지역의 특산물인 자연산 석굴, 이와가키(岩がき)가 자생한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계가 미처 1m도 되지 않을 만큼 안개가 짙어졌다. 가랑비 또한 계속되었다. 산사면의 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자칫 눈길에 미끄러지는 사고가 일어날 우려가 있어보였다. 투어팀 전원에게 아이젠을 착용하게 했다. 여름 산행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 위를 걷는다는 이야기에 모두들 흥분하기 시작했다. 팀원들 대부분이 난생처음 경험하는 특이한 상황이었다. 온갖 야생화 만발한 초카이의 여름
만년설 지대와 초원지대가 반복되더니 푸른 초원이 융단처럼 깔린 능선이 나타났다. “우와~” 투어팀의 입에서 탄성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이곳은 야생화 천지였다. 마치 꽃밭 사이로 난 길을 걷는 듯 착각에 빠질 정도다.

초카이산에는 초카이후스마(鳥海フスマ)라는 야생화가 있다. 별 모양의 아주 작은 꽃인데,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에델바이스의 일종으로 오직 초카이산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라고 한다. 보라색 초롱꽃처럼 생긴 이와부쿠로(イワブクロ), 노란 나리꽃인 친구루마(チングルマ) 등 다양한 야생화가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 야생화 군락이 아름다운 초카이산의 능선.

하지만 이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야생화를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애정과 노력이었다. 산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이드는 “야생화를 보고 즐거워하되, 그것을 꺾거나 꽃밭으로 절대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반복했다. 실제로도 꽃밭에 들어가기 힘든 것이 등산코스에 있는 산길은 자연석으로 꾸며져 그 위로만 산행이 이루어지다보니 꽃밭으로 사람이 다닌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이 밟고 지나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샛길처럼 길이 생기기 마련인데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인간의 흔적이 없는 것이다.

야생화에 온통 정신이 팔려 걷다보니 어느덧 초카이호수에 다다랐다. 그러나 짙은 안개와  비 때문에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가이드가 가리키는 방향을 내려다보며 어림짐작으로 안개 너머에 호수가 있을 거라 상상해보았다. 화창한 날씨에는 호수주변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겠지만 투어팀은 점심을 먹기 해서는 오하마고야(御浜小屋)로 들어가야 했다.

오하마고야는 초카이호수가 보이는 능선 위에 위치한 작은 산장이다. 이곳은 본격적인 등산철인 6월말~8월까지는 주인이 상주하면서 유료로 운영되고, 그 외의 기간에는 무인산장으로 오픈되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단 이곳을 떠날 때 쓰레기를 남겨서는 안 된다.

때마침 일본인 등산 팀들이 먼저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며 “산장주인이 있을 때는 한 사람당 100엔의 사용료를 받는데 지금은 주인이 없는 기간이니 맘 놓고 쉬어가도 된다”고 귀띔을 해줬다.

악천후로 포기한 정상의 조망

▲ 만년설 밑에서 용출수가 솟아나왔다.
도시락을 먹고 쉬는 사이에 비가 점점 더 굵어졌다. 엎친데 겹쳐 바람까지 거세게 불기 시작해 우의를 입었지만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초카이의 정상인 신잔(新山)이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리는 듯했다. 가이드의 조언에 따라 모두의 안전을 위하여 아쉽지만 정상까지의 산행을 포기하기로 했다.

신잔 바로 밑에 있는 산장 휴게실에는 이런 글이 걸려 있다고 한다. ‘악천후일 때는 정상까지 올라가는 용기보다는 집으로 돌아가는 용기가 더 필요하다.’ 우리는 악천후를 만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용기를 택하기로 했다.

키사가타구치의 호코다테로 방향을 잡았다. 돌을 깔아 넓고 평탄한 길이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을 맞으며 내려가기에는 무척 미끄러운 길이었다.

하산 길 역시 만년설과 평원이 반복되는 코스를 지나야하는데, 시계가 좁아지는 탓에 자칫 앞사람과 간격이 벌어질 경우 길을 잃을 위험도 있고 심지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평원을 빠져나오면 협곡의 끝을 따라 이어진 길이 나오는데 평원에서 계곡으로 흐르는 독특한 폭포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짙은 안개로 시원스레 떨어지는 폭포의 위용을 100% 확인 할 수는 없었지만 자연이 선물한 폭포의 위용이 온 몸으로 느껴졌다.

주차장이 가까워질수록 포장도로와 다름없는 돌길이 계속되었다. 스틱이 없었다면 무릎에 상당한 부담이 가해졌을 구간을 한참 내려서니 드디어 주차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초카이의 품에서 조금씩 빠져나왔다.
 

초카이산 트레킹

▲ 만년설이 뒤덮인 초카이산은 한 여름 산행에도 아이젠이 필수다.
코스
오타이라 주차장~(1시간10분)~시미즈노오카미~(1시간20분)~오하마고야 산장~(30분)~사이노카와라~(1시간)~호코다테 주차장. 약 8km, 4시간 소요.

교통
야마가타→오타이라 : 야마가타현 쇼꼬(庄交)버스터미널에서 초카이산국정공원 오타이라까지 버스가 하루에 2번(08:03, 13:18) 운행한다. 1시간15분 소요.
호코다테→야마가타 : 호코다테에서 야마가타현까지 버스가 하루에 2번(09:50, 15:45) 운행한다. 1시간15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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